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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 확립’ 절실하다 (양승룡)

곳간지기1 2008. 8. 29. 19:50

 ‘식량주권 확립’ 절실하다 (농민신문 2008.8.27)

 양승룡(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

 

 2007년 봄부터 1년 넘게 천정부지로 오르던 국제곡물가격이 최근 하향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 기대 이상의 수익을 실현한 국제투기자본이 상품시장을 빠져나간 것이 주요인이라고 분석된다. 곡물가격 급등에 의한 수요 감소도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곡물시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수확기를 앞둔 대규모 수출국의 작황은 불투명하며, 기상악화나 병충해 소식은 언제라도 가격 상승의 불길을 당길 수 있다. 가격 폭등을 촉발시킨 미국과 유럽의 바이오에너지정책도 여전히 유효하다. 주요 수출국의 식량 확보를 위한 무역제한정책도 복병이 될 수 있다.

 

최근의 곡물가격 폭등은 식량문제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경제성장이 식량안보를 온전히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과 자유무역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허구임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휴대전화와 자동차 수출을 위해 농산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던 경제관료와 경제학자들도 식량문제가 더 이상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식량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본은 법으로 정해진 식량자급률 목표를 최근 상향 조정해 50%로 수정했다. 세계 식량문제의 진원지인 중국도 7월 95%의 식량자급률 목표를 천명했다.

 

2002년부터 7년간의 우여곡절을 거친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타결 직전 결렬되고 말았다. 개발도상국에 부여할 특별수입제한(SSM) 조치의 발동 요건이 핵심 쟁점이었다. 미국은 과거 3개년 대비 수입이 40% 이상 증가할 경우 수입을 제한하기 위한 긴급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자는데 반해, 인도와 중국 등 개도국은 10%를 발동 요건으로 요구했다. 얼핏 과도해 보이는 인도와 중국의 요구는 작금의 식량사태를 겪으면서 식량안보가 정권의 유지와 국가의 지속적 성장에 직결된다는 교훈에 기인했을 것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주요 밀 수출국들이 석유 수출을 통제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조직 결성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세계 인구 절반의 주식인 밀의 수출을 조직적으로 통제한다면 지구촌에 미치는 충격이 석유 카르텔보다 훨씬 파괴적이고 위험하다. 문제는 이 같은 구상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곡물수출국인 미국·캐나다에서도 이러한 제안이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만약 러시아의 구상이 가시화된다면 식량무기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이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사태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방안은 단지 식량안보를 확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량주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식량주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함께 식량생산정책과 무역정책이 무장해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와 전략에 의한 식량안보 유지는 불가능한 상태다. 최근의 식량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식량문제 해결에 있어서 WTO의 한계와 무력함을 똑똑히 목격했다. WTO가 지향하는 자유무역체제는 인간의 생존과 존엄성의 근간인 식량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함도 확인했다. ‘식량수출국기구’가 논의되는 상황 하에서 국가존립과 국가경영에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식량안보를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식량주권의 회복에서 비롯돼야 한다. 최근 식량파동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