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경제] 잡초처럼 살순 없을까 / 강수돌(고려대 교수) | |
2008. 8. 13.(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04178.html |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아내와 함께 풀섶에 숨은 작물을 조심조심 가려내긴 했는데, 아, 이것이 풀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키만 컸지 너무나 허약하지 않은가. 아하, 풀과 작물이 서로 햇볕을 많이 받고자 생존경쟁을 하느라 키만 뻘쭘하게 커버린 게다. 더구나 풀은 오랜 세월 아무도 돌보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원수진 듯 틈만 나면 뽑아 버리니 그 자생력이야 엄청나다. 반면에 작물은 사람이 거름도 주고 지주도 세워주며 사랑으로 돌보니 어리광만 늘어간다. 이런 배경을 가진 두 생명체가 ‘자유 경쟁’을 하니 처음에 작물 모종을 심었을 때만 해도 풀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새 풀이 작물을 이기고 더 많이 커 버렸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작물이란 이처럼 자연의 힘 앞에 너무나 허약한 게 아닌가. 바로 이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가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기나긴 땅의 역사 중 불과 1만년 안팎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곡식, 채소, 과일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작물로 재배해 왔다. 그러나 최근 100년 사이에 이 작물들은 사람의 자연스런 사랑을 넘어 온갖 인위적 사랑에 길들여졌다. 기계로 땅을 갈거나 화학비료를 주는 것은 차라리 소박하다. 온갖 농약과 제초제로 범벅을 해야지만 ‘상품성’이 있다. 점점 사람들은 작물을 ‘약물중독’으로 몰아간다. 이제는 달고 맛있는 과일을 만드느라 영양제, 호르몬제, 방향제, 색료제는 물론, 심지어 수입산 꽃가루로 인공 수분까지 시킨다. 사태가 이러니 광우병을 넘어 광과병, 광채병, 광곡병까지 생길까 두렵다. 이 모든 걸 사람들은 효율성 또는 생산성이란 이름 아래 자연스레 해치운다. 광우병이 상징하듯, 우리가 제 아무리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자연의 순리, 생명의 힘을 이길 순 없다.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인위적 돈벌이 논리에 빠지는 순간, 우리 인간은 ‘광인병’에 걸리고 만다. 광인병에 걸린 사람들이 광우병을 비롯한 온갖 질병을 만드는 건 시간문제다.
작물의 세계를 넘어 사람의 세계를 더 들여다보자. 사람들이 자연스런 부락을 만들고 상부상조하며 오순도순 살던 마을이 갈수록 사라지고 이젠 모래알처럼 흩어져 산다. 몸도 마음도 모래알이다. 이제 사람들의 생존전략은 알콩달콩 더불어 사는 게 아니다. 올림픽 구호처럼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성취해야 무한 경쟁에 살아남을 듯이 보인다. 오죽하면 방학 때 아이들을 한 달 동안 영어 캠프에 보내면서도 그 사이에 수학을 하지 않으면 뒤처질까 불안해서 그동안 틈틈이 수학 과외도 시키는 이상한 영어 캠프까지 나오겠는가. 그러나 인위적 사랑이 지나치면 작물도 사람도 허약해진다. 이게 핵심이다. 아이들도 ‘책임성 있는 방목’을 하면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란다. 사람 사는 데 인위적인 걸 완전 배제할 순 없지만, 가능한 한 잡초를 닮도록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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