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나이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계수하라

곳간지기1 2008. 2. 2. 17:37

 

* 제가 아는 직장선교 동역자에게 보내주시는 '하늘목장' 목사님의

   신앙칼럼이 좋아 은혜를 사모하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나이를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계수하라"


하나님은..

하늘에 떠있는, 수천억개의 별들을.. 끈 하나 없이도, 공중에 매달아 놓으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100% 믿을 수 있다면..

우리의 걱정과, 고민과, 절망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계수하고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인본적이며.. 내 안에서 만들어진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의 제목과 ,문제가 태산 같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여전히 기도하지 않으며, 여전히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려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믿습니다' 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믿지 못한다.

 

아니, 안 믿어진다.

문제와 역경때문에, 내가 망하고 고생할 것은 믿지만..

그 문제와 역경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리라고는.. 기대하거나 믿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불안하고..

예배드리면서도 갈등하고, 기도하면서도 걱정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자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24년이 지나도록, 아무일이 나타나지 않앗다.

그러는 사이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 아내 사라의 나이는, 89세가 되었다.

이제는, 두 부부가.. 호호백발이 된 것이다.

 

이 말은..

이제는,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아이를 잉태하거나, 출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에,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다.


우리는 종종..

기도하고도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신다.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약속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지 못했다.

믿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웃었다.


믿음은, 나이와 상관없다.

믿음은, 세월과도 무관하다.

24년동안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연단을 받았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이다.

이 모습이, 연약한 우리의 모습이다.


'아브라함이 웃었다'는 말은, 이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 제 나이도 모르십니까?'

'제 나이가 이제 백살이 다 되어 갑니다'

'아이를 주시려면, 진직 주시던지, 이제 힘빠지고 희망도 사자리고 ..

'기대도 수그러든 이 시간에 오셔서, 어떡해 아이를 주신다고 하십니까?'

'그건, 말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삶에 오셔서, '말도 안되는' 제안들을 하신다.

그럴때 우리의 태도는, '아멘, 하는 것이 아니라 웃는다'

여기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시각차이를 볼수 잇다.

지금 아브라함은, 자신의 나이를 계산하고 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이를 계산하거나 과학과 의학을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계수하라고, 아브라함을 권고하신다.


우리는 기도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시면, 반드시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 이제 틀렸습니다'

'하나님 제 문제는 이미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그 사람은 안됩니다'

그 문제는 돈으로도 사람의 힘으로도 해결이 불능합니다.


예를 들어..

노총각 이나 노처녀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이제 네 소원대로 결혼할 배우자를 내가 주겠노라'

이러면, '아멘 하나님은 이제라도 하실수 있습니다' 해야 하는데

'하나님 안됩니다'

'제 나이가 벌써 30대를 지나 4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반응한다.

내가 안 된다고 우기는데, 하나님이 어찌 개입하시겠는가?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홍해 바다속에 길을 만드신 분이시라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우리의 빌립같은 '계산적인 믿음'이다.

빌립은, 주님께서 이 사람들을 어찌 다 먹이랴 할때..

군중의 숫자와, 저들을 먹일 상식적인 돈을 계산했다.

그리고는,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안드레는, 계산하지 않앗다.

안드레의 눈에는, 수천명의 군중들이 보인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만을 바라본 결과이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안드레의 믿음을 통해 이루셨다.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때, 예수님이 무덤 앞에 오셔서..

'마르다야 나를 믿느냐'

'예 믿습니다'

'이제라도 주님이 내 오라비를 살릴줄을 믿습니다'

'그러면 돌을 옳겨 놓으라'

'주님 그건 아닙니다'

'내 오라비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이 말은..

주님의 마음은 알겠으나, 오라비는 이미, 의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살려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식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의학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과학도 초월하시고, 수학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문제는, 우리가 계산만 하지 않는다면..

지금도 역사는 일어나고, 응답과 기적은.. 내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을 때.. 약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과 자격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일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약하고, 부족해도.. 낙심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홀로 일하시며, 홀로 영광을 거두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일은, 나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몸무게를, 잊어 버리는 것이다.

세월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 계산에 민감하면, 못산다.

문제의 경중을 계산해도 안된다.

하나님에게는, 천원이나 천만원이나 한가지이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이, 어떠한지를 계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지금도 별의 별 기적과 능력과 응답은. 쏟아질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