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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청 폐지가 지혜롭지 못한 이유

곳간지기1 2008. 1. 31. 14:41

농촌진흥청 폐지가 지혜롭지 못한 이유

 

1.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농촌진흥청을 폐지하고 정부출연기관으로 하여 정부기관에서 민간기관으로 전환시켜 우리 농업연구의 활력을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 이 나라의 농업과 농촌문제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최소한의 식견이라도 있는 이는 이런 결정을 할 리가 없다고 우선 생각합니다.

 

2. 산업화한 사회에서 국민총생산액 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록 작을 지라도 농업은 국가의 기초산업이며, 농촌은 엄연히 이 나라의 소중한 땅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농업과 농촌 문제를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습니다.

 - 어떤 나라가 농업연구와 농업기술보급 기능을 민간인 기구에 맡깁니까? 미국이 그럽니까? 영국이 그럽니까?

 

3. 미국의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자신은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농학을 공부한 적도 없었지만 이런 지혜로운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경제에 있어서 오로지 농민만이 물건을 살 때에는 소매 값에 사고, 그가 생산한 걸 팔 때는 도매 값에 팔며, 물건을 살 때도 팔 때도 운임을 지불한다."

 

4. 이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농산물 그 자체의 생산액은 비록 국민총생산액의 적은 부분을 차지할지라도 농업이 파생시키는 효과는 매우 큼을 뜻합니다. 농사의 중요성이 그것에 그칩니까? 먹지 않고 사는 사람 있습니까? 먹는 것은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농업을 재화의 측면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5. 정부의 임무 중, 국민이 먹을거리를 언제 어디서나, 부담하기에 벅차지 않은 값에 구할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닙니까? (이게 미국 농무성이 임무로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수위에 이런 것 제대로 아는 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안다면 할 일 많은 시국에 어떻게 농촌진흥청을 폐지하고 그 산하 연구기관들을 정부출연기관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6. 이 지혜롭지 못한 생각, 일본 고이즈미 내각 때 농업연구기관을 출연기관으로 바꾸면서 공무원 수 줄였다고 생색낸 것에서 본떠온 겁니까? 고이즈미 같은 이는 케네디가 가졌던 지혜를 가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일본은 경제력이 우리보다 두어 단계 위에 있어 그런 실수를 범했음에도 당장은 그 피해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도 뒤늦게 후회하고 정부기관으로 돌릴 것을 검토하고 있답니다. 우리가 녹색혁명을 이뤘을 때 일본 사람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7. 실용적 농업기술의 개발과 보급에 관한 한 일본으로부터 배워올 게 없습니다. 일본에는 농촌진흥청과 같은 기관도 없었고, 그래서 우리의 사전에서 "보릿고개"라는 가난을 표현하는 말이 사라지게 한 "녹색혁명"도 없습니다. 또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공무를 수행하다가 순직한 농촌지도 공무원도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8. 쌀의 녹색혁명이란 말은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원조기관이 만든 말이고 이 말을 가지고 세계가 한 때 흥분한 적이 있었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녹색혁명이 성공한 기록이 없습니다. 오로지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만 성공을 기록했습니다. 

 - 그 성공신화를 만든 것은 우리의 억척스러운 농업인들과 독특한 체계(연구와 지도기능을 한 기관이 갖춘)와 임무수행을 천직으로 아는 이들이 뭉쳐진 농촌진흥청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9. 세계 어느나라를 살펴봐도 우리나라의 농촌진흥청 같은 체계와 Work spirit를 갖춘 농촌진흥기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나라들도 우리 농촌진흥청이 이룩한 업적을 따라올 나라가 없습니다.

 

10. 농촌진흥청은 일종의 방대한 Task Force 같은 기관입니다. 정부가 하라는 일을 성취하지 못한게 없습니다. 농촌진흥청은 학문을 연구하는 데에는 다소 덜 능할지 모르나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아내고 찾아낸 문제는 기필코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 그걸 농가의 포장에서 구현시키는 데에는 능합니다. 그들은 농민의 머슴입니다. 그것도 상머슴들입니다.

 

11. 농촌진흥청의 원조가 어떤 기관인지 아십니까? 이 나라가 과학농업을 개발 보급할 의지를 가지고 1906년에 만든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이 농촌진흥청의 뿌리입니다. 무슨 이유로 유서(遺緖) 깊은 이 기관을 그리 조급하게 폐지하겠다는 것입니까?

 

12. 우리 농업과 농촌이 당면할 도전이 그처럼 안이한 것입니까? 농촌진흥청을 폐지하고 그 산하기관들을 정부출연기관으로 전환하면 그 도전을 더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중대한 일을 졸속으로 처리하려 하십니까?

  - 100년의 뿌리를 가진 기관의 존폐를 진지하게 논의하려면 적어도 몇 년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널리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기관이 100년을 살아남아 왔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해보는 게 역사를 대하는 겸손함과 신중함 아니겠습니까? 인수위는 힘 있으니 겸손과 신중은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까?

 

13. 농사는 삶의 바탕이고 농촌은 우리가 머물러 살아야 할 우리 땅 아닙니까? 그런 중대한 대상을 다루는 일을 경쟁력도 없는데 국가 출연기관에게 맡기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나라 정치 바로 하자는 발상 맞습니까? 이 문제 생각의 방향을 바꿔 농촌진흥청이 더 성과 있게 일할 수 있도록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실 수는 없는 것입니까?


  글이 길어진 것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사안이 워낙 중요해서 그리되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양학박사 홍종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