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세계화 역풍…빈국도 부국도 민생시위 확산 (한겨레)

곳간지기1 2008. 6. 17. 21:56
세계화 역풍…빈국도 부국도 민생시위 확산
 지구촌 ‘먹고사는 문제’ 쟁점화
 
 
조일준 기자 이정애 기자
 
 
 

 

» 지구촌 달구는 민생형 시위
 
 
 
지구촌 전역이 민생 시위로 들끓고 있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부유한 유럽까지 전세계에서 글로벌 민생시위라는 세계화의 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1980년대와 90년대를 달궜던 개도국의 민주화 시위와 동유럽 사회주의권을 몰락시켰던 시위와 비견되는 사태다. 정치와 이념이 중심표제였던 1980~90년대 시위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정치와 이념 대신에 먹고사는 민생 문제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유럽 낙농업계 ‘생산비 급등 항의’ 파업 번져
어민·트럭운전사 ‘경유·유류세 인하’ 집회
아프리카 ‘식량난 극심’ 과격 투쟁 잇달아


■ 선진국 유럽의 민생시위 = 지난주부터 유럽연합 낙농업자들은 유럽 전역에서 수만ℓ의 우유를 들판에 쏟아버리고 있다. 지난해 원유 1ℓ당 28~35유로센트이던 생산비가 최근 에너지 및 곡물값 폭등 탓에 지금은 43유로센트로 약 50%나 뛰자, 낙농업자들이 전면적 파업에 들어가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30일 보도했다. 네덜란드·오스트리아·스위스에 이어, 독일 낙농업협회도 지난 주부터 원유 가공회사에 원유 납품을 거부해, 독일 내 소매점의 우유, 요구르트, 크림치즈 등 유제품 공급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프랑스 우유생산자 조직의 장 루이 나보 회장은 “우리는 모두 분노와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와 비교적 무관했던 유럽 낙농업자들의 시위는 최근 급등한 유가가 선진국에서도 전방위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유럽 전역에선 유류세 인하를 촉구하는 시위가 일파만파로 확산 중이다. 그동안 유럽은 수입 연료에 대해 중과세 정책을 펼쳐 왔다. 영국의 경우, 갤런당 유류세 3.77달러(약 2파운드)가 붙는 데다, 소비세 17.5%를 추가로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 이상으로 치솟자, 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선박 연료로 쓰이는 디젤유 가격 인상에 항의해, 어민들이 원유 저장시설을 봉쇄하는 등 2주 넘게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파업은 유럽 전역으로 번져,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어민들도 30일부터 파업에 동참했다. 벨기에 어민들은 지난주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국 규모의 파업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어업 부문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영국과 불가리아에서는 27~28일 유류세 인하를 촉구하는 트럭 운전사들이 주요 도시의 고속도로 점거시위를 벌였다. 네덜란드 트럭 운전사들이 29일을 전국적 국민의 행동의 날로 선포한 데 이어, 스페인은 이달 8일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

■ 개도국의 생존요구 시위 = 유럽의 농민·노동자·어민들의 시위가 절정에 오르던 지난 31일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는 수백명의 군중이 곡물가 폭등에 항의하며 옥수수와 밀가루 같은 기본식품의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 케냐의 대통령 선거 시비로 촉발된 폭동 사태로 1500여명이 숨지고 60만명의 이주민이 발생한 여파로 동아프리카 지역의 곡물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벌어진 시위라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식량값 폭등은 이미 연초부터 전세계의 개도국의 거리를 시위로 채우고 있다. <가디언>은 “이집트에선 아무도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나, 최근 “하루 1파운드(약 2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연명하는 이집트 인구 절반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빵과 같은 생필품에도 상당한 보조금 지원 압박이 걸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케냐·소말리아·우간다·에티오피아 등 상당수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극심한 식량난에 주민들의 항의시위가 폭동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중남미 아이티에서는 식량값 항의 폭동으로 총리가 사임하는 등 내각이 붕괴됐다. 쌀 약탈 등 생계형 범죄가 빈발하자 파키스탄과 타이에서는 식량 강도를 막기 위해 군대를 배치했고, 필리핀은 마닐라 등 일부 지역의 쌀 공급을 아예 군대에 맡기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농민단체들은 지난주 정부의 수출세 인상에 항의하며 수출용 곡류 공급과 육류 판매를 일시 중단하는 파업을 단행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농부들의 이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기 위해선 수출세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으나,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과도한 세금 인상 조처가 농부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항의했다.
  지구촌 전역으로 번지는 민생시위는 국제유가와 곡물값의 폭등으로 촉발된 것이나, 최근 20여년 세계화의 불안정성이 초래한 부작용이라는 분석이 높다. 세계화된 경제가 초래한 수급 불균형과 채산성 악화가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릴 것 없이 가장 취약한 계층들을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민생시위가 세계적이면서도 계층적으로 중하류층 및 특정 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조일준 이정애 기자, 외신종합  iljun@hani.co.kr

 
기사등록 : 2008-06-01 오후 10:17:03 기사수정 : 2008-06-01 오후 11: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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