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한겨레] 지구촌 식량위기 농업을 다시 본다

곳간지기1 2008. 5. 27. 10:59
“번 돈 먹는데 다 써…아이도 학교 관뒀어요”

[한겨레 창간 20돌] 지구촌 식량위기 농업을 다시 본다

 

한겨레2008. 5. 15.  김기성 기자 홍용덕 기자
» 파키스탄 남쪽 최대 도시 카라치의 대표적 빈민촌 굴샤네자울에 사는 나지마(오른쪽)가 지난 4일 딸 유스라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식량난을 토로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1973년 옛 소련의 흉작으로 비롯된 제1차 곡물 파동에 이어 2008년 또다시 곡물값 폭등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이제 값싼 식량 시대는 끝났다.
 
이는 세계 25억에 이르는 빈곤계층에 재앙적 결과를 의미한다. 지난 20여년 농업을 생산자인 농부가 아닌 거대한 국제 곡물상 등에 맡겨온 세계화가 이제 세계 식량위기라는 시험대 앞에 섰다.
 
 ‘풍요 속의 빈곤’ ‘조용한 해일’로도 불리는 세계 식량위기에서 한반도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앞으로 일곱 차례 걸쳐 세계 식량위기의 현상과 원인을 진단하고, 한국 농업의 대안을 찾아본다.
 

빵에 소금 먹으며 연명
인구절반이 식량불안

 

지난 4일 오후 아라비아해를 끼고 있는 파키스탄 남쪽 최대 도시 카라치의 대표적 빈민촌 굴샤네자울. 이곳에서 만난 파잘라만(11)은 학교에 있을 시간이지만 하루 내내 집에서 놀고 있었다. 파잘라만은 엄마와 누나 셋, 형 하나 등 모두 여섯 식구가 좁다란 월세 단칸방에 서 가장인 홀어머니 나지마(42)와 함께 산다.

 

» 필리핀 수도 마닐라 10번가 바랑가이에서 지난 1일 아날리사(왼쪽)가 한살배기 딸 아르셀에게 손으로 밥을 먹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파잘라만네 가족의 월수입은 엄마가 병원 허드렛일로 버는 3천루피와 가정부인 큰누나가 받는 2천루피를 더해 5천루피(약 7만5천원)다. 이 가운데 2500루피를 월세로 내면 구호단체 보조금 등을 합해도 생활비와 초·중·고교에 다니는 누나들과 형의 학비 대기에도 빠듯하다.

 

그러나 지난 1월부터 밀가루와 식용 기름값이 두 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2천루피였던 식비가 전체 수입의 80%인 4천루피를 넘었다. 나지마는 “10㎏에 100루피였던 밀가루값이 280루피까지 올랐고 기름값도 세 배 올랐다”며 “번 돈이 모두 먹는 데 들어간다”고 말했다. 결국 월 450루피인 학비를 넉 달째 못 낸 막내 파잘라만은 최근 학교를 그만뒀다.

 

나지마는 “학교도 못 가는 아이에게 반찬은커녕 간신히 구워 낸 로티에 소금을 찍어 먹이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섭씨 40도를 넘는 더위에 어두컴컴한 단칸방에서 지내는 파잘라만이 언제 다시 학교에 갈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4월 2007년 이후 주곡인 밀값이 66%나 뛴 파키스탄을 북한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식량 위기국으로 꼽았다. 잡지는 “1억6천만명의 파키스탄 인구 중 절반이 식량 불안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파잘라만 가족도 식량 불안을 겪는 파키스탄 인구 ‘절반’에 들어간다.

 

홍수와 가뭄으로 빈부의 구별 없이 굶주림을 겪던 과거의 식량위기와 달리 가격 위기에서 시작된 이번 세계 식량위기는 ‘풍요 속의 빈곤’으로 불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식량값이 3분의 1 상승하면 부국의 생활수준은 3% 떨어지지만, 가난한 나라는 20% 하락한다”고 지적했다. 주식 가격의 급상승은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하기 때문이다.

 

알그하심 우리에 세계식량계획(WFP) 필리핀 소장은 “식료품비가 많게는 수입의 70~80%를 차지하는 계층에게 식량값의 상승은 충분한 음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서 동쪽으로 6천㎞ 떨어진 인구 9천만명의 필리핀도 파키스탄과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 1일 마닐라 톤도 10번가 바랑가이(동)에서 만난 엔리케 에스파뇰라(39)는 마늘 까는 일로 생계를 잇는다. 온 가족이 하루 최대 37㎏의 마늘을 까 150~200페소(3천~4천원)를 벌어 여덟 식구의 생계를 이어간다.

 

» 파키스탄 나지마 가족/ 필리핀 엔리케 가족


세끼서 두끼로 줄이고
고기는 구경한지 오래

 

하지만 올해 들어 생활이 팍팍해졌다. 22페소였던 쌀 1㎏이 지금은 31~34페소로 껑충 뛰었다. 하루 세 끼에서 두 끼로 줄였고 아침은 꽈배기 같은 빵으로 때운다. 고기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엔리케의 부인 아날리사(37)는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식구들의 식량인 쌀 3kg을 사놓고, 밑반찬용으로 붕어새끼를 말린 ‘토요’를 산다”며 “식료품에만 수입의 70~80%를 쓰고, 나머지는 치약·비누·커피 등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엔리케 가족을 포함해 필리핀 전체 인구 가운데 약 3천만명이 최근 주식인 쌀값 인상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즈유키 쓰루미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 소장은 “지난해 필리핀에서 쌀을 제대로 구입하기 어려운 월 5천페소 미만의 수입을 지닌 계층이 전체 인구의 25~30% 미만이었는데, 최근 쌀값 상승으로 그 비중이 35%안팎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세계은행(WB)은 ‘2008년 세계 경제 전망’에서, 2004년 기준으로 전세계 25억명이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사는 극빈층이며, 이 중 18억명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 있다고 밝혔다. 쌀과 빵을 사는 데 수입의 절반 정도를 써야 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값 상승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앙’이다.

 

수바 라오 인도 재무장관은 지난 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에서 “식량값이 20% 오르면 아시아의 절대빈곤 인구는 1억명씩 늘어난다”고 말해, 식량값 상승이 신빈곤층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도 최근 곡물값 상승으로 전세계 1억명의 인구가 추가로 굶주림과 영양실조의 위험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마닐라 카라치/ 류이근 김기성 기자  ryuyigeun@hani.co.kr

 

 


‘위기국가’ 21억명 중 아시아 16억명,

 2년간 밀 183%·옥수수 133% 올라

 

세계 식량 위기는 2006년 밀·옥수수·콩·쌀 등 국제곡물가 급등으로 시작돼 전지구적 비상사태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밀의 국제선물가격은 2년 전보다 182.9%, 옥수수는 지난 2년간 132.9%가 급등했다. 대부분 아시아에서 거래되는 쌀값도 폭등했다. 타이산 쌀의 국제거래가는 2003∼2005년 t당 201∼291달러의 안정세에서 지난 1월 380달러, 그리고 지난달 853달러로 치솟았다. 최근 석 달 사이에만 122%가 올랐다.

 

최근 2년간 곡물가 폭등에 대해 제임스 모리스 조셋 시런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모든 대륙에 영향을 미치는 ‘조용한 쓰나미’”라고 말했다. 그는 15일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서 열린 세계 식량 위기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식량 위기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인도적 비상사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식량값 폭등의 여파는 저개발국가로 집중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아시아와 아프리카 31개국 등 전세계 37개국(인구 21억명)을 ‘위기국가’로 지정했다. 아시아에서는 북한 등 10개국 16억명이 식량 위기에 부닥쳐 있다. 이는 아시아 전체 인구 37억 중 46%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밀가루 배급 행렬 길어져 불안”

 ‘월드비전 파키스탄’ 그레이엄 스트롱 회장

 

» 그라함 스트롱(39·사진)
“파키스탄에서만 식량 고통을 겪는 인구가 6천만명에서 7,700만명으로 28% 늘었어요.”

 

2005년 10월 대지진을 겪은 파키스탄 북동부 만쉐르 지역에서 활동 중인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파키스탄’의 그라함 스트롱(39·사진) 회장은 지난 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만쉐르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 거리에 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밀은 연간 2200만t이 소비되고, 사람들 1일 칼로리 섭취량에서 50%가 넘는 주요 곡물이지만 대지진과 최대 곡창지대인 펀자브에서의 홍수 등으로 식량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지난 해 밀 풍작으로 160만t이 남을 것으로 보고 인근 국경 지역 나라들에 밀을 과잉 수출해 밀값 폭등을 낳았다”며 “최근 테러와의 전쟁에 강수량과 전력 부족도 겹쳐 수확량이 최대 30%까지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선 밀가루 배급 행렬이 흔한 일이 됐다”는 그는 “식량값 상승으로 소비자 물가지수는 일년 전 보다 11.25%가 늘면서 피해가 고스란히 빈곤층에 돌아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스트롱 회장은 “식량값 폭등으로 빈곤층 구매력이 50% 이상 떨어질 것”이라며 “사회적 불안감의 확산으로 파키스탄은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카라치/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