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살돈 없는 21억명 ‘배곯이’ 무방비 노출 | |
지구촌 식량위기 농업을 다시 본다 | |
2008. 5. 28. | 홍용덕 기자, 류이근 기자 이종근 기자 |
수입 옥수수·밀 등 가격 폭등…장바구니 물가 직격탄
연구기관들 “2016년까지곡물값 상승세 꺾이지 않아”
전세계 21억명의 인구가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수실 박사는 지난 8일 “부자는 돈이 있다. 식량가격이 오르건 말건 상관없다. 하지만 식량가격이 오르면 쌀을 적게 사거나 의약품 등 다른 생활에 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와 농부 등 가난한 이들은 쌀 수출국에서도 굶주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배고픔은 멈춰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곧 발간될 ‘농업전망: 2008-2017’ 보고서에서 지난 해에 이어 “식량값이 1985~2007년의 안정적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최소한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측 결과를 내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 등 국내 연구기관들도 앞다퉈 “2009~10년 약간 가격이 내리겠지만 2016년까지 30% 이상 상승하는 장기 추세는 꺾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인정한 전세계 식량위기 국가 37개국 중 31개국이 몰려있는 아시인들과 아프리카인들의 고통의 장기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지난 2006년 오르기 시작한 국제곡물가격은 지난해 가뭄 등으로 호주 등 주요 생산국에서의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올초 ‘폭등’으로 바뀌었다. 국제원자재가격 조사기관인 ‘코리아 피디에스’(PDS)는 “국제 유가 상승과 정부의 고환율 정책까지 겹쳐 올해(3월 기준) 국내에 수입된 옥수수 가격(CFR:해상운임 포함)은 t당 355달러로 지난 해 같은 시기의 230달러에 비해 125달러가 올랐다”고 밝혔다. 콩은 t당 627달러로 278달러가 올랐고, 밀은 t당 272.68달러에서 529.85달러로 2배 안팎으로 치솟았다.
곡물가격의 상승은 가공식품은 물론 외식업계와 축산농가의 비용증가로 확산됐다. 옥수수 등 지난 해 주요 곡물의 국내 전체 공급량은 2243만t. 이 중 옥수수(932만t), 밀(323만t), 콩(154만t) 등 전체 수입량의 66%인 1483만t의 수입곡물가격이 폭등하면서 이들을 원료로한 식품가격도 폭등했다. 밀가루의 올해(3월기준) 가격은 전년 대비 64.1%, 국수는 52.4%, 라면은 21.1%, 빵은 11%, 스낵과자는 28.4%가 뛰었다. 특히 수입 콩과 옥수수가 주원료인 사료를 쓰는 축산농가들은 불과 1년 사이 34% 인상이라는 ‘사료값 폭탄’을 맞았다.
농촌진흥청 박평식 연구관은 “곡물가격의 폭등은 곧바로 전세계 곡물 수입 국가의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애그플레이션’은 서민들에게는 장바구니 물가 고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현재 15%인 전세계 곡물재고량은 사상 최저치로, 카자흐스탄 등 주요 곡물생산국의 곡물 수출규제를 불러왔고 국제선물시장은 차익을 노린 투기자본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특히 미국의 식물성 연료정책에 따라 가솔린을 대체할 에탄올 생산에 쓰인 옥수수는 지난 1990년 8900만t에서 지난 해 8억1300만t으로 늘어났다.
건국대 윤병선 교수는 “쇠고기 1㎏을 생산하려면 8∼11㎏의 옥수수가 필요하다”며 “과거에는 똑같은 식량을 놓고 인간과 동물이 경쟁했다면 지금은 가난한 21억명의 인간이 동물에 이어 8억대의 자동차와 똑같은 곡물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량위기는 한편으론 값싼 식량 시대의 종언이기도 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성명환 박사는 “식량재고율이 34.8%로 최고였던 1986년을 정점으로 매년 1%씩 재고율이 떨어졌다”며 “앞으로 매년 1%씩 높여도 10년 뒤 재고율은 25%로, 곡물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2006년과 같은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홍용덕, 마닐라/류이근 기자 ydhong@hani.co.kr
35년만의 식량위기 생산량 늘었지만 수요량 못따라가
지난해 말부터 올 초 사이의 국제곡물가격 급등 현상은 1973년 식량위기 이후 35년만의 일이다. 당시 자급자족체제였던 옛소련의 흉작 등 곡물 감산으로 전세계 식량시장이 출렁였다. 식량위기 직후인 1975년 세계 식량재고율은 18%였지만 식량위기를 겪으면서 중국 인도 한국을 중심으로 ‘녹색혁명’이 이뤄졌고 생산량이 다시 늘기 시작해 10년 뒤인 1983년 식량재고율은 22.6%를 기록했다. 정상적인 곡물 재고율 회복에 10년이 걸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곡물 재고율은 18%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1970년대 식량위기 직후 가격이 예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했으나 현재의 식량위기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올해 사상 최대 풍작이 예상되지만 폭증하는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또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 이후 농산물 생산을 위한 정부 지원도 규제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와 식량농업기구는 “현재 식량위기는 높은 곡물가격을 유지하면서 또다시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성명환 박사는 “무역자유화로 곡물가격의 결정권이 국제시장으로 옮겨지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소득격차에 따라 (부자들과 달리) 불이익을 받는 층이 나타나는 게 이번 식량위기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사료·식물성 에너지로…식량위기 장기화”
농촌경제연구원 김명환 박사
“다른 나라가 굶어도 미국은 (식물성 연료정책으로) 계속 가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김명환(54) 박사는 세계식량위기의 장기화 이유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가 중국 인도 등 이머징 마켓의 곡물 수요, 특히 중국의 늘어나는 사료 수요가 10년 정도 더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기름값이 오르는 한 식물성 에너지의 수요가 더 늘어난다. 원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로 치솟았지만, 바이오에너지를 제외한 수소 등 대체에너지 개발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바이오에너지 수요 상승으로 인한 식량위기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지난해 통과시킨 에너지법에는 2020년까지 350억 갤런의 식물성 연료(에탄올)를 써야 하는데 2016년까지는 세계 옥수수의 30∼40%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1970년대의 녹색혁명처럼 공급을 늘려 식량위기를 넘기는 것도 어렵다는 게 김 박사의 설명이다.
또 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는 비교 우위가 없는 국가의 농산물 생산이 어렵다. 수입국이 곡물을 증산하도록 하는 정부의 보조에 제약을 두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최근 달러화 안정 등으로 곡물시장에서 투기자본이 빠졌지만 앞으로 식량위기는 공급 증가보다 수요 증가 요인이 더 클 것”이라며 “투기자본의 유입에 따라 식량가격의 변동 폭도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글·사진 홍용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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