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부터 심양을 출발하여 연길 환인 집안으로 이어지는 역사기행 마지막날 27일 우리는 고구려 박작성으로 향했다. 우리는 미리 공부를 한대로 이곳이 박작성임을 알고 있었지만 가보니 호산장성이라 되어있었다.(박작성으로 쓰여 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음.. 내가 못 본걸까..)
천리장성의 마지막 보루 박작성
요동반도의 천산산맥을 따라 세운 이차방어선 그리고 요동반도 남단해안선을 따라 세운 삼차방어선이 그곳인데 고구려 천리장성의 마지막 보루가 바로 단동시 일대의 박작성이다 .
고조선과 고구려가 존재하던 시절 중국 세력이 압록강가에 성을 세웠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고구려가 압록강 가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호산촌은 압록강 하구에서 30㎞쯤 들어온 단동에서 차로 20분쯤 걸리는 곳에 있으니, 압록강 하구로부터는 대략 100리 안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사서에는 ‘648년 내주(萊州)를 출항한 3만여 명의 당나라 수군이 압록수를 100여 리 거슬러 올라가 박작성(泊灼城)이라는 고구려 산성에 이르렀다. 박작성에서는 성주인 소부손(所夫孫)이 기병을 이끌고 나와 대항하다 무너졌다. 박작성은 산을 의지해 요새를 구축했고 압록수가 가로막고 있어 견고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호산촌에서 발견된 산성 유적은 박작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동아 8월호 중에서 발췌 전문보기)
<고구려 천리장성이 표시된 지도 >
역사왜곡의 바로 그 현장으로 찾아가보자
중국명 '호산장성'
박작성 입구, 천혜의 요충인 박작성을 기어코 함락시키지 못한 당태종은 고구려를 다시 침공하지 말라(罷遼東之役)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한다. 지금 중국에서 부르는 데로 이곳의 간판은 호산장성이라고 걸려있다. . 호산산성도 아니고 호산장성 즉 만리장성의 일부분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성을 만리장성으로 둔갑시켜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산장성으로 인해 만리장성이 압록강가에 이르게 된다면 중국의 역사와 정치 무대는 갑자기 넓어지고, 만리장성 바깥에서 활동해온 대표적인 동이족인 한민족의 정치와 역사 무대는 현저히 오그라들게 된다.
호산장성 입구에서 뒤로 돌아보자.
저 멀리 동상이 보인다 . 가까이 가보면..
동상 아래쪽에 뭐라고 써 있나하면..
만리장성 동단기점 호산 ? 이라 되어있다.
만리장성은 감숙성 가욕관에서 시작하여 원래 산해관 에서 끝나는것이고 요동지역에는 원래 정교한 성책이 아니라 요새만 드문드문 있었을 뿐이다 . 이것을 마치 만리장성이 옛날 진나라 때부터 여기 이 모습대로 구축된 것처럼 왜곡한 것이다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 호산장성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호산장성 간판 바로 아래에서 가이드가 설명을 하고 있다. 곧 같이 올라가서 명때 지은 만리장성이라고 어떻게 지어놨는지 살펴보자
명대 성곽이라고 90년대 중반 지어놨다. 명대 성곽은 원래 벽돌로 쌓는 것이다 화포 공격을 막아내도록 벽돌로 쌓고 총구를 설치해놓았다 벽돌로 쌓는 이유는 화포공격을 받더라도 일부만 파괴되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형식은 조선 후기 때 도입되어 우리나라 수원성은 이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의 천제지군님이 여행사 가이드에게도 설명해주고 있다. 천제지군 : "여기는 호산산성이 아니라 박작성이니 앞으로 박작성으로 알려주어야 해요 . 만리장성이 아니고 고구려 천리장성이 있었던 곳이에요 아셨죠? " 가이드 : "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다음에 여행 오시는 분들에게 꼭 그렇게 얘기할께요 " 이런 저런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을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져본다 ^^
한편 성곽 한쪽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었다. 가이드가 열심히 중국어로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 이곳이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입니다!!' 아마도 자랑스럽게 왜곡하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 말을 알아들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한판 크게 붙었을 것 같다 .
성곽을 내려와서 아래쪽으로 성문을 통과해 들어가본다. 시멘트로 바른 성벽 균형이 맞지 않는 돌들을 쌓아놓고 중간중간 시멘트로 발라놓은 성곽 성문안쪽에는 장사하시는 분들이 여러가지 늘여놓았다.
중국에서 만든 장성이다 시멘트로 벽돌고 벽돌 사이를 발라놓은 것이 확연히 보인다.고구려성의 건축방식이 아니다 . 고구려 고유의 건축방법은 들여쌓기 , 퇴물림쌓기, 수평쌓기, 그랭이공법 등으로 고구려 석공의 솜씨가 대단하다. (요건 나중에 ..)
자 성안으로 조금 들어가서 오른쪽을 돌아보니 아래와 같이 고구려 성곽의 특징이었던 치가 나온다
<파란색 부분이 '치' 빨간색 부분은 '고구려 성벽의 잔해를 모아놓은것'>
고구려 성벽특유의 방어시설인 치(雉) 즉 사각형의 돌출부 성벽을 오르는 적병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방어시설이다 그런데 사진에 보이는 것은 명대의 건축양식으로 쌓은 치로 원래 박작성에서는 서북요동방면으로 되어있어야 할 것을 한반도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성벽이 바라보는 방향도 한반도 방향으로 고쳐놓은 것이다
그리고 아래 보이는 돌무더기(위 사진 빨간색 네모)는 고구려 성벽의 일부 잔해를 치워서 쌓아 놓은 것이다 .
실제 고구려 성벽 벽돌은 저렇게 대충 주변에다가 쌓아 놓았다. 실제 유적은 파헤쳐버리고 지네들 건축방식으로 지어놨다. 이게 현실이다 ㅠ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당태종을 구한 설인귀.. 그도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패한 패장임에도 불구하고 당의 대장군까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 이곳에서 크게 다루고 있다. 고구려를 어떻게 누르려 하는지 이 장군의 그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래는 중국이 만들어 놓은 만리장성의 끝... 북한과 맟다은 지점.
성곽을 여기까지 만들어 놓고선...이 성곽이 쭉 평양까지 이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물관 옥상에서 찍은 사진
사진 왼쪽 아래 박물관으로 가는 화살표를 따라 박물관으로 gogogo!
박물관 바로 왼쪽 건너편이 북한 영토...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바로 북한 땅
중국 명 만리장성 동단기점 ㅜ-
잘 살펴보면 영어도 거꾸로 붙여 놓은 간판
(고구려 유적 답사 내내 촬영금지라는 말을 밥 먹듯 들은 우리, 들어가기 전 물어봤다. ‘사진 찍어도 되나요?’ 그러자 가이드님의 말씀 ‘여기서는 사진 안 찍으면 벌금입니다.^^’ 순간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 중국 만리장성이고 중국 문화이니 찍으란다 .. 고구려 문화유적은 찍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더니.. 이곳은 만리장성 동단지점이란다.. 한국사람 보라고 한글로 적어 놓은 것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 아무튼 이 악물고 들어가서 다 찍어서 실상을 알려줄테다.- -;
이 박물관 외벽에는 한글로 ‘중국 명(明) 만리장성 동단(東端) 기점’ ‘만리장성에 이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 ‘기점(起點)에 가지 않으면 유감을 남긴다’는 등의 문구도 한글로 적혀 있다. 여러 가지로 만리장성의 일부라는 사기질은 계속되고 있다.
백보 양보해서 만리장성이 있었다고 치자. 그럼 그자리 유적을 고증을 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 성을 뜯어버리고서 세웠다는 것이 문제다.
자 그럼 어떻게 왜곡해놓았는지 박물관 안으로 gogogo !!
< 만리장성이 표시된 지도 : Sgabhai Pass라고 동단에 써있다 산해관이 동쪽 끝으로 되어있다. ~ ↑요거는 박물관 안에 있는 지도 아님>
중국에서 나오는 모든 사료는 '명대에 완성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하북성(河北省) 발해만 연안의 산해관(山海關)이고, 서쪽 끝은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감숙성(甘肅省)의 가욕관(嘉틾關)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산해관에 가면 노용두(老龍頭)라는 곳에서 바다(발해만)에 맞닿아 있는 만리장성을 볼 수 있다. 또 그곳에서는 ‘이곳이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아래쪽 이 박물관에 전시된 만리장성 지도를 보시라.. 산해관을 넘어넘어 구비치고 있지 않은가-_-
훌륭한 우리 선생님 : 중국 만리장성은 바로 펜이 가리키는 요 부분까지이고 나머지는 그냥 그린 겁니다.
좀더 확대해서 볼까요?
자 빨간 테두리 안의 부분은 만리장성과 상관없는 부분이다 왜 저리 구비구비 그림을 그려놨는지.. 참 알 수 없는 역사 콤플렉스인듯 ......
조금 더 옆으로 가보면 위 지도보다 더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주본 토인.. 진나라 시대였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워놨다. 티가 팍 나는 배열 -_-;;; 머가 티나는지 아시죠?
이 전시 배열의 핵심은 바로 오른쪽 아래의 지도에 있다. 아예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병마용 모형도 가져다 놓고 서는 지도를 합리화 하려하고 있다. 하여간 지도가 문제야 문제!
지도를 좀더 확대해보자
헉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TV에도 소개된 것처럼 만리장성은 평양까지 와 있다. 지도만 보면 그렇다.
위의 지도에서는 단동까지도 만리장성이 축조된 것처럼 하더니 그것보다 더 오래전인 진시황때 이미 평양까지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거다. 이런 개사기꾼들같으니라구../버럭/
진시황때 만리장성을 임의대로 대동강 하구 까지 그어놓고는 호산장성은 진시황의 만리장성 자리 위에 만들었다고 왜곡을 하고 있다.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대동강까지 왔다는 기록 자체가 전혀없다.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도 없다
"고구려 성벽이 보여요"
먼저 올라간 한 여성분이 헐레벌떡 내려온다. " 고구려 성벽이 보여요 " 우리 일행은 모두 박물관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리켜준 곳을 향해서 한참을 보니 멀리서 흔적이 보인다.
버려진 고구려 성곽.. 흔적.. 팽개쳐진 우리의 역사를 보는 것같아 눈시울이 .. ㅜㅜ
<박물관 3층 옥상에서 보면 멀리 수풀 속에서 고구려 성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사진 가운데 부분 ㅠ ㅠ >
TV에서 동북공정 관련 프로그램 등을 보고 책을 통해서 본 내용을 직접 와서 생생하게 접하고 나니 정말로 우리 역사의 허리를 잘라가고 왜곡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미래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앞서 우리는 우리의 옛 조상의 왕릉과 귀족들의 릉을 돌아보았다 우리 조상들이 일구어놓은 옛 땅에와서 우리는 조상들에게 절조차 하지 못하였다.(공안은 절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다)
궁극에 그들이 주장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당나라 시대 고구려와 발해는 모두 자신들의 식민지라는 것이다 . 아니 당나라 땅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지도를 구글(google.com)을 검색해보거나 캐나다,미국 교과서 등등을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단동의 만리장성은 가짜지만 10년 후면 그 가짜가 진실이 되고 백년후면 역사가 된다.
이제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면 그나마 주변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박작성터는 완전히 없어지고,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교과서에도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이어져 있다고 기술될 것이다
이는 일본이 행한 역사말살정책과 다르지 않다. 아니 일본이 한 것을 중국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이라고 하는 역사왜곡의 나라들에 둘러 쌓여서 하나하나 역사와 혼을 잃어가고 있는것이다.
이덕일 교수는 그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동북공정뿐만 아니라 아직도 살아 있는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와도 싸워야 하는 이중의 전선에 서 있다."
동북아 한중일 역사전쟁 그리고 현실의 위기상황
과연 ..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나더
만리장성의 동단지점으로 설명하는 한심한 대한민국 여행사 몇몇
< ㄱ 여행사의 여행일정에서 호산장성을 만리장성 최동단기점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고구려성의 만리장성 왜곡 편을 마치며 ..중국의 훼손과 왜곡 두번째 글을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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