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없는 농정’이 무슨 소용인가 | |
[농어민신문] 2008년3월24일자 (제2035호) 김성훈 상지대 총장 / 전 농림부 장관 | |
이 말은 청와대 수석들도 참석한 새정부 첫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경제총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힘주어 한 발언이다. “농민문제는 복지로 풀고, 농기업ㆍ농산업 육성으로 우리 정책이 가야한다”며 강조한 말이다. 농업인의 활동영역을 식품 가공 및 유통분야까지 확대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과 발언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하여 너무 나아간 듯하다. 농업은 본래 가공·유통까지 포함 원래 교과서에서는 농(축산)업의 정의를 농산물의 생산, 가공, 유통 전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박정권 때 잘못된 정부조직 개편으로 농림부에서 식품 가공 유통업무가 타부처로 이관되는 바람에 농정의 초점이 농업생산에만 국한되어 실제 농산물 가공ㆍ유통업무는 타부처 타산업의 몫처럼 여겨왔다. 그래서인지 ‘농업은 말고 산업만 하자’는 말이 자칫 경제정책 대상에서 아예 농민은 빼고, 식량위기문제도 생각하지 말고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과 농촌의 환경ㆍ경관ㆍ역사ㆍ문화적 가치일랑 잊어버리자는 소리로 들린다. 오로지 기업과 산업 차원의 접근만을 능사로 삼는 기업가나 흔히 하는 말이다. 전국의 논밭을 갈아엎고 그 위에 반도체 공장을 수십개 세워 수출해서 번 돈으로 값싼 식량을 사들여 오자고 주장했던 어느 작고한 재벌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할지, 신임 농림수산식품부장관도 “농어촌에 밀물의 시대를 열자!”라는 취임연설에서 대통령께 보고할 농정의 핵심과제로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외국 농산물과 식품 홍수 사태에 임하여 농협과 농민이 빠진 고작해야 초록이 동색인, 1시군 1유통회사 설립, 품목별 대표조직 육성, 카길 같은 대규모 농업회사 설립, 1시군 1뉴타운 건설, 농식품유통 고속도로 구축 등을 역설하고 있다. 한 5년쯤 지나면 천문학적인 빚더미를 누가 감당할지 암울하다. 이 정권의 안중에는 구조적 복합적 요인들에 의해 심각해지고 있는 국제식량위기 상황이 보이지 않고, WTO FTA등 급속도로 진행된 시장개방으로 사회양극화의 맨 밑바닥에서 호당 3천만원씩 빚을 안고 신음하고 있는 수백만 농업인들 그리고 식량주권과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대다수 서민 소비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듯 하다. 조직 와해위기와 설립목적 상실의 위기에 직면한 기존의 농업관련 단체와 기관들의 조직 재정비와 기능 활성화 문제 역시 대통령 보고 안건에서 빠져있다. 사람이 빠진, 사람을 놓친 농정은 무의미하다. 쾌적한 환경과 아름다운 경관, 전통ㆍ문화유산을 고려하지 않는 농정도 무가치하다. 기존의 농업관련 조직과 기관의 혁신을 도외시한 어떠한 현란한 정책의제도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21세기 세계는 바야흐로 친인간, 친환경, 친문화의 정책사조(思潮)를 지향하며 급속한 지구환경 붕괴와 기후변화에 대응한 지속가능한 생산ㆍ소비ㆍ발전체제로 농정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이정권은 아예 외면하고 있다. 농경지마저 투기 상품화 ‘통탄’ 농산물 유통ㆍ가공분야 개발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것이 어떻게 농민의 소득이 되고 국민 소비자의 이익이 되며 환경과 문화와 조화를 이루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왕에 세계 최대 농민조직인 농협과 농촌공사, 유통공사, 농진청 등 오래된 농업관련 조직을 여하히 새시대 새정권의 지향과 목표에 부응하게끔 재편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농업ㆍ농촌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올바로 발휘토록 할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앞으로 돈을 주고도 제대로 식량을 사올 수 없을지도 모를 구조적 만성적 국제식량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기껏 4.6% 밖에 되지 않은 우리나라가 새정부 들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미명아래 농지전용을 떡 주무르듯 마음대로 하려든다. 세계 최대 단일 농장 후보지 새만금 벌판과 영산강 대단위 간척농지 들판에 관광시설 카지노 골프장 신공항 자동차 경주장 등을 다투어 짓겠다고 야단들이다. 한술 더 떠 농림부만 반대할 뿐 농민들이 농지전용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한다고 짐짓 농민과 농림부를 이간시키려 든다. 농민들이야 세계 모든 선진국들처럼 국민의 식량주권과 생존권 그리고 농업의 공익적인 다원기능을 보전하기 위해 토지사유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 대신, 국가와 국민이 적극 나서 그 대가로 농가소득과 농촌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내 땅을 내 마음대로 팔고 사고 전용하게 해달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절대 농지(농업진흥지역) 값이 제일 싸고 상대 농지 가격이 그보다 조금 높고 임야지나 잡종땅 값이 제일 비싼 모순을 선진국처럼 국가가 소득보상으로 해결해주지 않으니 딴청을 부릴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전국의 농경지와 임야를 지역에 따라 40~80%까지 비합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 각계 지도층과 기득권 부유층들이 총출동해서 자기들의 투기적 토지소유 행태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해 이를 호재로 삼아 거짓 여론을 만들고 있다. ‘땅투기 안한 사람이 바보’라는 이른바 ‘강부자’들의 행태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서고금을 통털어 이 지구상에 어느 나라가 농경지의 투기상품화를 부추키고 정책으로 미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농정의 근본부터 다시 고민해야 이제 이정권은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농업문제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두 번 다시 요리하게 해서는 아니된다. 우리 후손과 역사에 두고두고 후회할 죄를 지을게 뻔하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냉정히 무엇이 농정의 근본이 되고 지엽말단인지부터 새로 고민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제 농업 본래의 생산 가공 유통업무를 농업인에게 되돌려주자고 바꿔 발언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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