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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고 일어나면 쌀, 콩, 옥수수, 밀 등 국제곡물가격이 치솟고, 세계 곳곳에서 전쟁에 버금가는 식량파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렇게 곡물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알려진 대로 중국이나 인도 등과 같은 신흥공업국의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는데 따른 곡물수요의 증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인한 곡물생산량의 감소와 재고 부족, 곡물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 에너지 생산, 유가의 폭등 등이 그 요인이다.
그런데 식량파동으로 소요가 일어나 국가 전체가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아프리카 대륙의 이집트, 수단, 카메룬, 세네갈, 모리타니 등과 아시아 대륙의 필리핀,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예멘, 중국, 홍콩, 인도, 그리고 남미대륙의 아르헨티나, 페루, 멕시코 등 대부분 개발도상국이거나 제3세계 국가들이다.
왜 이런 일이 유독 후진국이나 개도국 등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농업이라는 산업이 특성상 정부의 지원이나 투자 없이는 근본적으로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들 대부분은 재정상태가 열악하여 농업부문에 투자하거나 지원할 여력이 없다. 그렇다 보니 농업부문은 아예 사라졌거나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국이나 유럽, 캐나다, 호주와 같은 소위 선진국들은 식량파동을 겪지 않고 있다. 이들은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와 보조정책으로 농업이라는 산업을 유지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쌀 농가소득의 약 70%가 보조금이고 EU농가 소득의 약 절반 이상이 각종 명목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 선진국의 농업·농촌 부문 경쟁력이라는 것은 사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의 산물이다. 따라서 식량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대부분 이들 선진국들뿐이다. 그들은 자국의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확보함은 물론 세계 식량 공급의 패권을 꿈꾸는 원대한 계획을 자국의 거대한 다국적 곡물메이저들과 함께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세계적인 식량위기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나라가 사회·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것은 주식인 쌀만큼은 거의 자급을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된 이후 우리 농산물 시장은 모두 개방되었다.
그러나 쌀만큼은 2014년까지 개방하지 않기로 국제사회에 두 차례(1993년과 2004년)나 약속하고, 그 대신 매년 소비량의 약 2~8%씩 의무적으로 수입해 주기로 했다. 지금과 같은 개방화 시대에서 쌀 시장을 20여 년이나 개방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우리 말고는 없다.
그래서 국제사회로부터 물론 국내적으로도 상당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개방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식량안보 또는 식량주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쌀을 제외한 사료용 곡물자급률은 5%도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축산농가들과 서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식량위기의 강풍을 그나마 견뎌 내고 있는 중이다.
개방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모든 먹을거리를 자급할 수야 없겠지만 농업이라는 산업을 꼭 경쟁력과 효율성이라는 경제논리만으로 접근할 수는 없고, 그렇게 하는 선진국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농업부문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경쟁력 제고만으로 농업이 존립하는 나라는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국내 농업생산기반을 유지하면서 농민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민족의 자산인 쌀, 농업, 농촌을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이 식량안보와 식량주권,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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