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시장 ‘투기 괴물’ 21억명 숨통 ‘쥐락펴락’ | |
핫머니 7년새 35배 급증…다국적기업과 ‘검은 결탁’ 밀값폭등 원인의 절반…“국제무역체계 전면개혁해야” | |
2008. 6. 29(일) | 홍용덕 기자 류이근 기자 박종식 기자 |
‘우리는 당신의 빵과 국수에 있는 밀가루이며, … 당신이 먹는 쇠고기다.’ (초국적 농식품업체인 미국 카길의 안내서)
최근 세계 식량가격 폭등으로 전세계 21억명이 고통받는 가운데 카길은 지난해 23억4천만달러의 순익을 냈다. 이는 전년에 비해 52.4% 늘어난 액수다. 건국대 윤병선 교수(경제학)는 “한쪽의 불행이 다른 쪽에서는 행복이 되는 것은 태생적으로 불안한 국제 곡물시장의 구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카길(Cargill)이나 에이디엠(ADM), 콘아그라(ConAgra) 같은 소수의 초국적 농식품업체가 곡물시장을 지배하는 과점 체제에서는 투기자본이 기승을 부리기가 쉽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를 ‘보이지 않는 괴물’로 표현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국제 밀 가격 급등 요인을 분석한 결과, 밀 가격 상승 기여율(100%)에서 투기 요인은 48.1%였다. 곡물 수출국들의 수출 제한 등 정책 요인은 16.8%, 달러화 약세 요인은 15.6%, 전세계 곡물의 수급요인은 1.4%였다. ‘핫머니’의 표적인 국제 원유가의 지난해 상승분 중 투기요인 기여율이 40.3%인 점을 감안할 때 국제 곡물의 투기적 요소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인도, 중국 등 ‘이머징 마켓’의 곡물 수요가 늘어난 반면 생산량은 이에 못 미치고 전세계 곡물 재고량이 감소하면서 곡물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투기 자본의 국제 곡물시장 유입에 불을 질렀다.
국제 곡물시장의 ‘노름판화’는 ‘비상업거래 매수 포지션’(noncommercial long position)의 증가에서 더욱 뚜렷하다. 비상업거래 매수 포지션은 현물을 사고 파는 것 없이 오직 가격의 움직임에 돈을 거는 투기자본을 말한다. 전세계 곡물이 거래되는 미국 시카고 선물시장(CBOT)에서 비상업거래 매수 포지션(2005∼2008년)을 <한겨레>가 분석해보니, 밀은 2005년 2월 3만4759계약에서 지난 2월 10만1324계약으로 약 3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콩은 3만5716계약에서 16만8343계약, 옥수수는 7만1988계약에서 38만4896계약으로 약 5배로 증가했다. 투기자본의 규모는 2000년 50억달러에서 지난해 1750억달러로 35배 증가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화년 수석연구원은 “밀 값 폭등은 수급 요인 때문이라는 견해와 달리 투기적 요인이 결정적이었다”며 “최근 3년 동안 국제 선물시장에 유입된 투기자본의 꾸준한 증가세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지난 3~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유엔 식량정상회의’가 식량위기 국가에 65억달러를 지원하는 등 14개항의 선언문을 채택했지만 ‘말뿐인 회의’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도 국제 곡물시장의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옥스팸 인터내셔널 등 전세계 50개국 237개의 시민단체와 농민단체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에게 “식량가격 폭등으로 재미를 보는 쪽은 식량과 농업 부문의 교역을 통제하는 다국적 농업기업들과 원자재 카르텔”이라고 밝혔다. 카길 한 곳에서만 23억달러의 순익을 챙기는 선진국들의 자유무역주의와 국제투기자본에 의한 식량가격 폭등의 폐해는 외면됐다는 것이다.
옥스팸 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 바버라 스토킹은 “선진국들은 현재의 세계무역협정(WTO)을 마무리하는 것이 식량위기 해결의 열쇠라고 주장하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전세계 가난한 농민들과 소비자들만 더욱 위기로 내몰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신 식량가격의 등락과 상관없이 전세계 빈국과 빈민을 보호할 수 있는 국제 무역체계의 심층적 개혁이 필요하며 이 점이 이번 세계 식량위기가 주는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소작농 갈수록 끼니 걱정
‘지난 1년 사이 곡물가격의 폭등으로 이득을 보지 않았나?’
이 질문에 전세계 ‘대부분의’ 농민들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는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세계 기아 인구 중)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75%는 농촌지역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일 필리핀 마닐라 외곽에서 1.5㏊(㏊=1만㎡)를 경작하는 호세 캄베(49)는 이모작을 하지만 치솟는 비료와 농약, 연료 값 등을 빼면 연간 손에 쥐는 건 5만페소(115만원)라고 했다. 그는 “쌀이 떨어지면 시장에 나가 쌀을 사야 한다”며 “식량위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마을 마사팡엔 100㏊ 이상 농지를 가진 지주가 몇 명 있지만, 어느 정도 수지가 맞는 5㏊ 이상 논을 경작하는 농부는 거의 없다. 필리핀은 8900만명의 인구 중 약 40%가 농촌 인구이며 이 중 최대 90%(약 3천만명, 5인 기준으로 약 600만 농가)가 소작농으로 추산된다. 식량위기를 겪는 많은 나라의 사정도 다르지는 않다.
반면 식량 수출국인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부농은 식량위기가 즐겁다. 미국 전업 농업인구 약 96만명의 비용을 뺀 올해 농가순소득 총액은 전년보다 4% 증가한 약 923억달러(92조원), 1인당 9만6천달러(9600만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미 농무부는 “2008년은 또 하나의 번영과 성장의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빅토리아(필리핀)/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그들만의 바이오연료, 식량위기 ‘나몰라라’
미·유럽 등 생산·개발 대량투자
‘식탁 위 옥수수냐, 자동차 연료냐?’ <에이피>(AP) 통신이 지난 3~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유엔식량 정상회의에서 180개국 대표들이 ‘식량 위기’와 관련해 바이오 연료 문제에 대한 ‘합의’에 실패하자 내놓은 기사의 제목이다. 각국 정상은 합의문에 “바이오 연료의 생산과 사용이 (식량의) 고갈 없이 지속될 수 있는지 확실히 하기 위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바이오 연료는 ‘도전’이자, ‘기회’”라고 절충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식량위기 뒤 곡물가 급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의심받아온 바이오 연료 논쟁이 뜨겁다. 옥수수·사탕수수·씨 오일 등에서 바이오 연료를 빼내는 미국과 브라질은 바이오 연료가 식량위기를 악화시킨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브라질은 주로 사탕수수에 기반한 자국의 바이오 연료는 식량과 상관없다고 주장하고, 옥수수에서 에탄올을 뽑아내는 미국은 바이오 연료로 인한 곡물가 상승 영향은 2~3% 정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투기, 수출 제한, 신흥 개발국의 곡물·육류 소비 증가, 고유가와 함께 바이오 연료를 식량가격 급등의 주 원인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만약 당신이 가난해 옥수수를 주식으로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며 “바이오 연료는 우리가 희망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브라질에서 바이오 연료의 비중은 전체 에너지의 16%로, 석유 다음으로 높다. 바이오 연료 생산량은 1995년 약 30억배럴(약 159ℓ)에서 2007년 말 약 350억배럴로 10배 이상 늘었다. 전체 액체 연료의 약 3%다. 옥수수만을 예로 들면 전세계 생산량의 약 6% 이상이 바이오 연료에 사용되는 현실이다.
미국, 유럽연합,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농업 강국들은 바이오 연료에 1ℓ당 최대 1달러의 보조금을 쏟아넣고 있다. 미 정부는 지난해 바이오 연료 생산 및 개발과 관련해 10억달러를 투자했다. 미 의회는 2022년까지 바이오연료 생산량 목표치를 360억갤런(약 3.8ℓ)으로 제시한 상태다.
류이근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609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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