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700만명 ‘굶기를 밥먹듯’…하반기 최대위기 | |
지구촌 식량위기 농업을 다시 본다 6. 북한 식량위기, 제2의 고난의 행군? | |
2008. 7. 6. | 홍용덕 기자 류이근 기자 김정효 기자 |
하층민·어린이·부녀자 이미 ‘고난의 행군’
“량강도와 자강도에서 드디어 햇감자가 나기 시작했다.”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은 지난 4일 극심한 식량난을 겪는 북한 주민들이 이모작으로 심은 햇감자로 배고픔을 덜게 돼 기뻐하면서도 극성을 부리는 (군인 등) 도적떼를 근심하고 있다는 북한 소식을 전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국내외 기관들이 추정한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량은 140만∼160만t. 북한 주민의 4분의 1인 650여만명이 식량위기를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은 한해 평균 880만명분 147만t의 식량이 부족했으나, 올해는 713만명분 119만t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수치상으로는 수해 등으로 20만∼3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때보다 올해가 다소 낫다는 평가이지만, 실제로는 ‘고난의 행군’ 때보다 올해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조호정 연구원은 “95년에 국제사회 지원으로 실제 부족분이 25만t(150만명분)으로 줄어드는 등 매년 123만t을 대외에서 조달해 온 북한으로서는 외부지원이 끊기고 달러 부족 등으로 식량의 대외조달 능력이 제한돼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두 차례 수해로 북한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이 10.5∼23.2% 줄었고, 국제 곡물가 폭등으로 옥수수와 밀의 가격이 3배 이상 뛰면서 대북지원 활동을 펴 온 국제기구들도 대북 지원식량 규모를 줄이거나 금액으로 더 편성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좋은 벗들’은 올 들어 이미 북한 내 40여곳에서 굶어 죽은 이들이 발생했고 만성적 영양실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량강도에서는 배가 고파 두꺼비를 잡아먹거나 진달래꽃을 먹던 아이들이 중독돼 숨지거나 식량난으로 비롯된 가족 해체와 꽃제비 증가, 자살 등 사회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식량위기에도 사회주의를 고수해 온 북한이 이달부터는 평양시 배급도 중단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식량부족만큼 심각한 것은 취약계층 식량 지원과 지원 시기다. 이승용 ‘좋은벗들’ 사무국장은 “미국의 지원식량은 한달에 3만∼4만t씩 들어오는데 북한에서 하루에 먹는 게 1만t이라 어차피 3~4일치 분량에 불과하다”며 “항구 근처에서 분배되면 지방과 하층민에게 돌아갈 양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95년 이후 암시장인 ‘장마당’이 설치됐지만 식량 가격 폭등에 그나마 돈 없는 아이와 부녀자, 지방 하층민 등의 취약계층에서는 이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북한 내 암시장 쌀값은 지난해 4월 1㎏당 700∼900원에서 올해 4월 2000원으로 올랐다. 북한 노동자 한달 평균임금은 6000원(2000년 기준 북한 화폐가치는 공식적으로는 달러당 8.4원이지만 실제로는 183원대를 오르내린다)이다. 장 피에르 드 마저리 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 대표는 “월급의 3분의 1을 써도 단 며칠치 식량밖에 살 수 없을 정도로 폭등한 식량가격은 북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식량위기로 대량 아사자가 생길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내년도 북한 식량위기는 더 심화할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선임연구위원은 “7월 초 감자 등 이모작 작물이 수확되면 1∼1.5개월 정도 버틸 수 있지만 본격적 식량위기는 8월 중순 이후”라며 “외부지원이 없으면 하반기에 아사자가 많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올 들어 남한은 대북 식량지원 중단에 이어 매년 북한 전체 사용량의 60∼70%인 30만∼35만t의 비료 지원도 중단했다. 박효근 월드비전 북한농업연구소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비료 1t은 2t의 생산효과를 낳으므로 지원이 중단된 비료 35만t은 수해가 없더라도 올해 70만t의 쌀 감산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북 올해 식량위기 왜? “시장통제 등 정책실패” 분석도
올해 북한의 식량위기 원인을 놓고, 대다수 전문가들이 수해와 국제 곡물가 폭등 등의 요인을 꼽고 있으나, 북한의 정책적 실패도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5년 이후 북한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생산기반 확충 등 식량난 극복에 힘썼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상임연구위원은 “이모작 확대와 자연흐름식 물길 공사 등 생산기반 확충과 남한의 비료지원 등으로 생산 능력이 다소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5∼2000년 381만t인 북한의 연평균 곡물 생산량은 2001∼2007년에는 418만t으로 37만t이 늘었지만, 이 기간에도 북한은 매년 평균 127만t의 식량 부족을 겪었고 이 가운데 123만t을 국외에서 조달해야 했다.
지난달 4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열린 북한 식량평가 토론회에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교수는 “올해 식량위기는 홍수 피해와 국제 곡물가 급등, 외부의 식량 지원 감소 등을 모두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긴급 구호가 필요하다면 조건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 이석 연구위원은 “북한 기근은 식량의 절대 부족이 아니라, 2005년 이후 식량배급이나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과도한 통제 등 정책실패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적 지원보다는 북한 당국의 정책 변화가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이승용 ‘좋은 벗들’ 사무국장은 “북한은 식량 정책 실패로 식량 생산 절대량 부족을 초래했고 최근 식량가격 상승 역시 공급 부족에서 왔다”며 “현재 북한은 대기근을 막을 정책적 수단이나 가용 자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이 굶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이 시급하다고 공감한다. 통일연구원 김영윤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서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뒤에 식량 지원을 결정하면 이미 때는 늦는다”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대북지원 나선 국제사회
지난 6월29일, 미국산 밀 3만7천t을 실은 볼티모어호가 성조기를 펄럭이며 북한의 최대 항만도시 남포항에 입항했다. 북한이 2006년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을 벌인 뒤 중단된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재개의 신호탄이었다. 미국은 앞으로 1년 동안 식량 50만t을 지원할 계획이다. 북한의 한해 식량 부족분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미국뿐 아니라 독일·이탈리아 등 국제사회가 최근 북핵 해빙 무드를 타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레고리 배로 세계식량계획 아시아 담당 공보관은 “지난 5월까지만 해도 대북 식량지원 사업에 필요한 1억1800만달러의 절반 정도만 모금됐지만, 최근 한달 사이 목표액의 86%인 약 1억달러가 모였다”고 2일 밝혔다. 독일 정부는 5월 대북 식량지원을 위해 약 120만달러를 세계식량계획에 기부했으며, 이탈리아는 4월 100만유로어치의 곡물 2650t을 중국을 통해 북한에 지원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매년 40만~50만t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해 온 남한은 이명박 정부 들어 식량·비료 지원을 중단했다. 북쪽의 요청이 먼저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고 고자세로 버티던 이명박 정부는 북핵 6자 회담이 급진전되면서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결정하자, 지난 5월 중순에서야 지원 의사를 북쪽에 전했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뒤늦은’ 남한의 제한을 거부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한겨레신문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ERIES/188/2973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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