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지역안 곡물 자급자족을”…식량주권 운동 싹터

곳간지기1 2008. 7. 13. 23:10
“지역안 곡물 자급자족을”…‘식량주권’ 운동 싹터
지구촌 식량위기 농업을 다시 본다
7. 위기는 기회-한국농업의선택
한겨레2008. 7. 13(일) 홍용덕 기자
? 충북 청원군 농민회원 20여명이 지난 9일 오전 청주시 상당구 청원군청 앞에서 ‘비료·사료값 인상 대책 촉구 결의대회’를 연 뒤 배추를 마당에 던지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청주/ 연합뉴스
미국·호주 재배지 줄여 쌀도 안심못해
충남·경북 ‘지산지소’ ‘로컬푸드’ 등
생산자-소비자 조직적 연결 움직임
 

국제 곡물가격 폭등 여파로 비료값 사료값이 폭등하자,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축산농민 전기환(47·강원도 춘천시)씨는 “사료를 먹이면 먹일수록 손해가 난다. 감당이 안 된다. 사료값은 둘째치고 생활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가축 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국내 수입 조사료값은 지난 2005년 t당 184달러에서 올해 243달러로 32%, 옥수수는 t당 140달러에서 357달러로 155%가 폭등했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이어 축산농민은 국제 곡물가 상승의 ‘폭탄’을 맞았다.

 

국제곡물가격이 오르면서 자국내 전업 농민 1인당 소득액이 1억원에 이르자, 미 상무부는 “올해는 번영과 성장의 해”라고 말했다. 국내 농가는 어떨까? 국내 농가 1가구당 가처분 가능소득은 지난 1995년 2162만원에서 지난해 2442만원으로 12년 동안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한 반면, 1가구당 부채는 916만원에서 2994만원으로 3배 이상으로 늘면서 농민들 속은 ‘숯검댕’이가 됐다.

 

‘장바구니’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쌀(77㎏)의 절반인 35㎏. 매년 전체 수요량의 99%인 357만t을 수입하는 밀의 국제 선물가격이 지난 2006년 t당 142달러에서 올해 367달러로 258%가 뛰었다. 밀 수입가격 폭등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3월까지 국수 57.9%, 라면 23.6%, 빵 16.0%, 두부 22% 등 수입밀과 콩을 쓰는 식품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같은 기간 일반물가는 7.5% 올랐다. 높은 쌀 자급률이 식품 가격의 완충 역할을 했지만 안심할 상태는 아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10년 간격의 흉작에 기상이변으로 쌀 부족 위기는 상시적이지만 우리의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미국과 호주는 되레 재배지를 줄였다”며 “쌀 공급량이 30% 줄면 쌀 가격은 최대 146%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 가격으로 현재 20㎏당 4만6천원인 쌀값이 6만6천∼11만3천원으로 오르고 저소득층 식료품비는 9% 늘 것이라는 분석이다. 농협경제연구소 김영섭 수석연구원은 “1981년 병충해와 이상저온으로 쌀 생산량이 36% 줄자 4년에 걸쳐 273만t을 수입했는데 당시 쌀값이 28% 뛰고 그나마 수입할 쌀이 부족해 잘 안 먹는 ‘안남미’(베트남·타이 등 동남아시아쌀)까지 수입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세계 식량위기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농림수산식품부 박선우 식량정책팀장은 “저개발 국가는 수급 위기이지만 우리는 가격위기”라고 말했다. 곡물 자급률 증대와 해외 곡물자원의 확보, 국제 선물시장 참여 등의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는 가운데 식량자급률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영미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자국 국민이 굶어죽는데 식량을 수출할 나라는 없다”며 “생산자인 농민과 실제 식량을 먹는 소비자가 스스로 지역 안에서 식량을 책임질 수 있도록 자체단체가 협력해 ‘식량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시가 2년전부터 지역 생산자와 지역 소비자를 잇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을 벌여 지난해에만 150억여원의 지역 안 농산물 유통 효과를 거뒀다. 충남 서천군과 경북도도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로컬 푸드(local food)’ 운동 착수를 준비하는 등 다양한 식량주권 회복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경남대 김종덕 교수(사회학)는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를 격리시키고 소비자를 먹거리의 생산으로부터 무력화시키는 세계식량 체제야말로 식량위기의 원인”이라며 “지역 농산물에 대한 의무적 구매 확대,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적 연결, 제도와 조례 정비,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 지원 등을 통해 지역 생산자와 지역 소비자가 지역 식량 자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범정부적 노력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도움주신 분들>

 

박평식/ 농촌진흥청 연구관

서세정/ 농촌진흥청 품질관리과장

김명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

윤병선/ 건국대 교수

김종덕/ 경남대 교수

박효근/ 월드비전 북한농업연구소장(서울대 명예교수)

한영미/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승용/ 좋은벗들 사무국장

이규성/ 국제미작연구소(IRRI) 선임 연구자(한국농진청 소속)

김상국/ 한인일보 대표(카자흐스탄 알마티시 소재)

유가이 유리/ 보리쏘비치 우슈토베 밀가루 공장 대표

가즈유키 쓰루미/ 세계 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 대표

레오카디오 세바스챤/ 필리핀미작연구소 소장

알그하씸 우리에/ 세계식량계획(WFP) 필리핀 대표

도씀베꼬브 뜨느쉬바이 도슴베꼬비치/ 카자흐스탄 알마티주 농업담당 부지사

그레이엄 스트롱/ 월드비전 파키스탄 회장

 

해외농업개발 강조…해당국 수출규제땐 속수무책
한겨레 홍용덕 기자
? 해외농업개발(작물) 민간업체 진출 현황
정부 식량위기 대책은
 

국제 곡물가격 폭등으로 30개국 21억명이 식량위기를 겪는 소용돌이 속에 국내 곡물 자급률은 27.7%(2006년 기준)를 기록했다. 쌀을 빼면 자급률은 5%로 뚝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3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반면 주요 곡물수출국인 호주(280%), 프랑스(191%), 캐나다(164%)는 물론 주요 공업국인 독일(125%)도 10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농업 농촌발전 기본계획’을 세우면서 오는 2015년 곡물 자급률 목표치를 25%로 제시했다. 2006년 수주보다 더 후퇴한 목표치다. 자급률 달성 대책으로 식생활 교육과 밀생산 확대 등이 제시됐지만 내용도 막연하고 집행예산도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곡물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예산과 정책 수단은 없지만, 큰 틀에서 농가 직불제와 같은 사업이 자급률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량위기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농업개발을 강조하자, 지난 5월 지식경제부 외교통상부 농촌진흥청 농림식품부가 ‘해외농업 개발협력단’을 구성했다. 이 곳의 한 관계자는 “해외 농업개발을 지원하고 올해 안에 사업 확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외 농업개발에 나선 기업 등은 22곳. 그러나 밀을 재배한 대륙종합개발(중국 헤이룽장성, 3만8천ha)과 옥수수를 재배한 한국남방개발㈜(인도네시아 칼리만탄, 9만6천ha) 등 11개 업체가 철수할 만큼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명환 선임연구위원은 “연해주나 만주 등의 해외 농업개발은 대부분 망했다”고 말했다. 해당 국가가 식량위기를 내세워 곡물 수출을 규제하면 꼼짝할 수 없고, 대규모 유통 기반시설 없는 생산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한겨레신문]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ERIES/188/298592.html#


기획연재 : 지구촌 식량위기 - 농업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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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8-07-13 오후 09:4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