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비하는 식량안보 강화
박평식 박사 (한국농업개발원 연구위원)
□ 기후변화와 식량위기
최근 폭염과 한발, 게릴라성 호우 등 기후변화가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여년 동안 1.8℃ 상승하였고, 앞으로 계속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극지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의 상승으로 농경지 면적도 줄어든다. 우리나라는 쌀은 자급하지만 밀·옥수수 등 다른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식량자급률이 22%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땅은 한정되어 있고 토지의 사막화, 극심한 가뭄과 홍수 등 환경재난으로 식량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인구학자 맬더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맬더스의 인구론은 지난 200여 년 동안 이상주의자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008년 곡물가격 급등이 전반적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애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21세기 식량위기와 맞닿으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지구촌의 기후변화, 자연재해, 메뚜기떼의 습격, 물 부족 등이 심화되면서 식량난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다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질서 재편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베트남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의 수출제한을 계기로 식량위기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UN 식량농업기구(FAO) 전망과 외신기사에서도 세계 식량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국가적인 총력을 기울인 결과 주곡인 쌀을 자급하고 있어 2008년 세계 식량위기를 비교적 잘 넘겼는데, 식량안보는 유비무환이니 78%의 식량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체계적으로 잘 대비해야겠다.
□ 세계 식량수급에 대한 예측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주기적으로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발표하고 있다. 한 보고서에 점점 빨라지고 있는 기후변화와 함께 인구 및 소득증가, 식량안보의 위협과 같은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앞으로 수십년간 심각한 식량부족과 유래없는 농산물 가격폭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농업분야는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해 기온이 높아지면 곡물 생산량은 급격히 감소하고, 해충과 잡초의 번식만 왕성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식량문제는 보다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칼럼에서 그가 준비하고 있는 다음 저서에 대한 구상이 흥미롭다. 식량(Food), 에너지(Energy), 물(Water)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하는데, 영어 첫 글자들을 묶으니 FEW, 즉 많지 않다는 뜻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물 걱정부터 했다. 지구는 특별히 물이 풍부한 행성이지만 97%가 짠물이며, 나머지 3%에서도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은 기껏해야 1% 정도라고 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석유와 천연가스는 50년, 그리고 석탄은 100년 남짓이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 교수가 식량을 에너지와 물보다 앞에 두는 것은 단지 제목을 멋있게 만들려는 의도 때문만은 아니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촌의 물과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지만, 그는 식량문제가 훨씬 더 시급하고 충격적일 것이라고 한다. 석유나 석탄을 구할 수 없으면 급한 대로 장작을 땔 수도 있고, 경제성이 문제일 뿐 담수화 기술은 이미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식량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식량공급 불안정이 일어나면, 식량을 살(purchase) 수 없어서 살기(live) 어려운 위기상황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
국내외 미래학자들은 한결같이 조만간 세계적 식량 대란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세계적 식량 대란이 닥쳤을 때 가장 곤혹스러워할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서 시장개방과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우리는 쌀과 생우유, 달걀 등을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을 해외에서 사다 먹는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곡물의 수출을 금지하거나 감축하는 나라가 속출하고 있다. K-방역도 중요하지만 우리 정부가 식량 수급에 대한 계획도 철저히 세웠으면 좋겠다. 총체적 방역 시스템과 백신 및 치료법 개발은 물론, 바이러스 진단 키트와 방역기술을 지원해 주고서라도 우리에게 부족한 식량 수입의 우선권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가족은 멀뚱거려도 엄마는 최소한의 사재기를 해둔다. 국민은 멀뚱거려도 국가는 적절한 식량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 우리나라 식량주권 확보
식량자급이 안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를 굳건히 하고 식량주권을 스스로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부존자원을 활용한 식량자급 역량을 강화하고, 세계시장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여 중장기적 대비책이 시급하다. 국민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자급하지 못하고 식량주권을 외부에 의존하는 것은 안보적 차원에서 극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 전 국민의 관심과 합심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식량 자급을 위한 연구개발(R&D)을 강화해야 한다. 쌀 자급기반을 유지·보전하는 것은 물론, 개방 시대 외국 쌀과의 경쟁을 위해 고품질을 지향하면서, 비상시 대비 다수확 품종개발과 가공식품 개발로 밀·옥수수 등 수입 곡물 수요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건이 불리한 한계지는 콩·옥수수·사료작물 등 타작물 생산을 유도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동계작물인 밀은 숙기를 앞당기고 수량성을 최대한 높여나가야 한다. 식량의 국내 공급능력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식량 수급 안정화 방안으로 수입선 다변화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수입 곡물이 미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 편중되고, 다국적 기업인 곡물 메이저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 비상시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식량 수입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곡물 메이저와 같은 유통망의 확보가 시급하다. 국영과 민간기업이 협력해 시도하다 중단된 곡물조달 시스템을 재추진해야 할 것이다. 국제 곡물 생산과 관련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식량의 가용성, 접근성,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경지면적 등 국내 부존자원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식량기지 개발도 중요하다. 개발도상국 농업개발 프로젝트에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은 물론 민간기업의 진출을 확대함으로써 위급 시 식량 공급선의 다양화를 꾀하고, 기술협력 및 공여를 통해 우리의 식량문제 해결뿐 아니라 세계의 식량문제 해결에도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실패사례를 거울삼아 보다 철저한 타당성 조사와 더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상 지역과 작물 선택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국방과 경제안정도 중요하지만,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식량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자력으로 식량안보를 지키는 식량주권 확보를 위해 국민적 공감대 확산이 필요하다. 주요 식량 수출국들의 비상시 수출제한 등 자원민족주의가 날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식량주권을 외국에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식량주권 확보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 참고 : 박평식, 「식량안보와 쌀 이야기」, 북셀프, 2016.
* [환경미디어] 2020년 11월호 ‘식량위기 대책' 특집
* 기사 원문보기 : www.ecomedia.co.kr/news/newsview.php?ncode=106557731342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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