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코로나가 초래할 또 다른 치명적 위기 식량문제

곳간지기1 2020. 5. 12. 07:00

코로나로 인한 세계질서의 재편이 당면과제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식량위기'가 거론되고 있네요.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의 전망과 외신기사에서도 '세계 식량위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지요.

농촌진흥청장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한 김재수 경북대 초빙교수의 칼럼과 외신기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주곡인 쌀을 자급하고 있어 2008년 세계 식량위기를 비교적 잘 넘겼는데, '식량안보는 유비무환'이니

곡물자급률 22% 내외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하고 체계적으로 잘 대비해야겠습니다.

 

코로나가 초래할 또 다른 치명적 위기 '식량문제' 

유엔식량농업기구 5월 중 전세계 '식량 위기' 발생 가능성 우려
- 베트남·캄보디아는 쌀 수출 중단·축소, 러시아는 밀 수출 줄여
- 국내 곡물자급률 22%에 불과… 위기 대비 비상체제 마련해야
    
김재수 경북대 초빙교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전 농촌진흥청장

 

국내에서 코로나 종식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 자체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위기가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특히, 가장 우려되는 것이 식량문제다. 전 세계 전문가들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곡물 생산 부족이나 유통망 봉쇄가 가져오는 위기는 국가안보 차원으로 인식된다. 곡물 공급 부족으로 붕괴된 구소련이 대표적이다. 1979년 미국이 취한 1,700만 톤의 밀·옥수수 소련 수출금지 조치가 소련 붕괴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수년 전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의 붕괴도 곡물 부족으로 인한 식료품 가격 폭등에서 시작됐다.

들썩이는 국제 곡물 시장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5월 중에 '식량 위기'가 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위기 원인은 식량생산 부족과 가격 폭등, 비축과 유통망 위기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아프리카가 기후변화에 따른 사막 메뚜기떼 출현으로 식량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국제 곡물 시장에는 충격파가 전달되고 있다. 국제 쌀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고, 공급망도 흔들린다. 미국산 중립종 쌀 가격은 전년 대비 11.2% 상승했다.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지난달 쌀 수출을 중단했다가 최근 물량을 대폭 줄여 재개했다. 베트남의 쌀 수출 감소가 계속되면 세계 쌀 시장 공급량이 10~15%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캄보디아의 쌀 수출 금지, 러시아의 밀 수출 축소, 중국의 쌀·밀 비축 증가는 곡물시장 위기를 증폭한다.


축산물·수산물 파동도 우려된다. 베트남·인도·러시아·프랑스 등에서 먹을거리 수출 중단이나 수출 제한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곡물 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하거나 식료품 사재기가 일어나 수급 상황이 더 악화되면 강력한 수출 금지를 단행할 것이다. 국경 이동 제한으로 농사를 지을 사람도 부족하다. 노동자들의 이동 제한으로 미국·유럽에서 과일과 채소 수확이 어려울 전망이다. 노동력 부족이나 공항·항만 등 수송망 차질과 심리적 요인도 식량 파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식량 위기는 자연재해나 질병 위기보다 더 심각하다. 곡물 수출 시장이 문을 닫으면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쌀을 비롯한 국제 곡물 시장은 '얇은 시장(thin market)'이라 불린다. 수요·공급이 약간만 변해도 가격이 하늘과 땅을 오갈 정도로 요동친다. 빈곤한 국가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 유엔식량계획(WFP)은 아시아·아프리카·중동의 빈곤한 49국 2억7000만 명이 심각한 고통을 받는 것으로 추정한다. 식량위기가 장기화되거나 바이러스 등 다른 위기와 겹쳐 일어나면 속수무책이다. 국가 간 전쟁에 버금가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취약한 식량 수급 구조

'보릿고개'라는 말이 보여주듯 우리 민족은 5000년 동안 배고픔으로 고통을 당했다. 먹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된 것은 불과 30년 전 통일벼 개발 이후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량 수급은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너무 부족하다. 연간 곡물 수요량은 약 2100만톤이나 생산량은 450만톤 수준이다. 자급률은 22%에 불과하다. 부족분 1600만톤 정도를 매년 수입해야 한다. 이 중 1100만t톤 정도가 사료용이다. 축산물 소비가 많아 사료용 곡물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급률은 보리 31.4%, 콩 6.3%, 밀 0.7%, 옥수수 0.7% 수준이다.

쌀은 그나마 자급률이 높은 편이지만 이마저 안심할 수는 없다. 해마다 농지가 도로나 주택, 공장이나 창고 용지로 전환돼 2만㏊ 정도가 줄어든다. 식량 수출 국가가 문을 닫으면 우리 국민의 먹을거리가 당장 위협받는 구조다. '현재 곡물 수급 상황이 안정적이다' '비상시에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 위기 대비한 비상 대책

식량위기가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식품 수급 상황과 비축 물자 공급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주식인 쌀 비축 규모는 전체 소비량의 17~18%인 72만톤 정도다. FAO 권장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평시 상황을 전제로 설정한 물량이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 비용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나 감수해야 한다. 또 품목별 수급 상황을 장관이 직접 챙기고, 대통령 주재 점검회의를 통해 부처별 협조 체제를 살펴야 한다.

 

매점매석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통망을 점검하고 비상 대비 훈련도 필요하다. 복합적으로 닥쳐올 위기에 대비해 독립적인 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식량의 공공 비축과 수입 관리, 해외 곡물 수입망 확충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단된 '국가 곡물 조달 시스템'을 재추진해야 한다. 중장기 식량 안정 공급을 위해 농업 생산 기반을 확충, 우량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 농업 기술 개발과 품종 혁신, 비료, 농약, 농기계 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코로나 19' 사태는 세계 질서를 바꿀 기세다. 정부 차원의 '태스크 포스' 구성으로 대처하기에는 미흡할 수 있다. 수많은 인종과 국가, 기관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한 개별 국가의 힘만으로 대처하기도 어렵다. 국제적 협력 체제 구축, 국내 대책 마련, 국민의 협조가 조직 플레이 하듯 이뤄져야 한다. 위기가 심각하고 복합적일수록 정부의 대응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기다.  [조선일보, 2020년 4월 29일 33면]

 

* 원문보기 :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527272

 

 

[참고] "세계 곡물운송망 끊기면 한국 당장 해법이 없다"

         - 정부, 자주율 높이기 ‘휴면 상태’, 팬오션 “곡물사업 50년 계획” -

 

코로나19로 세계 식량공급망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의 취약한 실상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4월 13일 농림축산식품부, 농협경제지주, 사료협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11년 식량 자주율을 높여 식량위기에 대응하겠다며 독자적인 식량공급망 확보를 추진했지만 2014년 이후 휴면상태다. 자주율은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지 못해도 국내기업 등의 유통망을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한국은 쌀을 포함 연평균 2300만톤에 달하는 곡물 수요량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1600만톤 이상을 수입하고 있지만, 국내로 들여오는 공급망은 에이디엠(ADM), 벙기(Bunge), 카길(Cargill), 드레퓌스(Dreyfus) 등 ‘ABCD’라 불리는 글로벌 곡물메이저들에 10년 전과 다름없이 의존하고 있다.

2011년 당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삼성물산, 한진, STX 등이 공동출자한 곡물유통회사 'aT 그레인컴퍼니'는 곡물메이저와 합작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그 뒤 aT그레인컴퍼니는 2014년 청산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2018년에도 과거 추진한 정책을 정리해 발표했지만 이후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춤한 사이 곡물수요자인 민간기업이 직접 나서고 있지만 속도는 느리다. 하림 그룹은 2015년 해운기업 팬오션을 인수해서 곡물사업실을 신설하고 곡물유통사업을 시작했지만 규모는 적다. 팬오션은 한국으로 들어오는 곡물 중 500만톤 가량만 운송하고 있다. 팬오션이 확보해 수요자에게 판매하는 양은 그보다 적은 130만톤 수준이다.

팬오션은 세계 곡물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곡물메이저들의 견제도 극복해야 한다. 팬오션 고위 관계자는 “곡물사업은 50년 계획을 짜서 하고 있다”며 “곡물메이저들과도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 거래하고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도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에 곡물 수출터미널 준공식을 갖고 유럽연합과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으로 밀 옥수수 판매를 시작했다. 한국으로 수송하는 물동량은 아직 없지만 장차 확대할 계획이다.

 

식량 관련 관계자는 "유럽연합(EU)과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은 곡물인프라를 다량 보유한 메이저 회사들이 점유했던 지역으로 그동안 진출하기 어려운 곳이었다"며 "향후 곡물터미널을 통해 국내 비상상황시 국내로의 수입 물동량도 확보해 나갈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4월 11일 블룸버그 통신을 통해 세계 최대 육가공기업 카길, 스미스필드, 제이비에스 에스에이(JBS SA) 등의 일부 공장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았고, 가동중단 압력에 놓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식량공급망 혼란이 다시 확인됐다. 이에 앞서 베트남, 러시아 등 쌀과 곡물을 수출하는 일부 국가들이 수출 중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홍순찬 한국사료협회 이사는 “해외에 의존한 식량공급망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독자적인 곡물조달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내일신문 2020. 4. 14(화)]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 원문보기 : http://m.naeil.com//m_news_view.php?id_art=346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