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폐지는 선진국 포기 정책
김 진 표 (통합민주신당 정책위의장)
최근 국가기관인 농촌진흥청을 폐지하고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전환한다는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사실상 민영화 조치다. 명분은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하지만, 이제 농업연구소는 농업과 농민들보다는 연구비를 대주는 행정부서나 기업을 위해 일하라는 얘기와 같다. 현장농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려는 것을 보면, 인수위가 농업과 농민에 대한 배려와 숙고가 있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번 농촌진흥청 폐지안은 우리나라 농업발전의 역사와 농업의 특성, 그리고 출연연구기관 운영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전형이거나, 골치 아픈 분야는 이제 버리겠다는 경쟁만능의 사고가 낳은 농업․농촌 포기 정책이다. 아니면 이제 농업은 2, 3차 산업으로 전환하여 대농이나 산업체하고만 끌고 가고, 영세농들은 정리하여 농업도 자본가들의 손에 맡기자는 발상이다.
선진국에서는 농산물 수출을 위한 우수 품종개발, 고품질 안전농산물 생산에 혈안이 되고 있어 우리도 이에 대한 대책의 강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기술개발과 보급에 있어서 FAO나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농촌진흥청을 폐지한다는 것은 우리 농업의 무장해제와 같은 의미이다.
굳이 녹색혁명, 백색혁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농촌진흥청은 농업 현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기술센터와 더불어 언제라도 달려와 고민을 해결해주는 농업인의 벗과 같은 기관이다. 만약 이들 기관이 민영화된다면 당장 생계가 걸린 농민에게 생기는 문제는 누가 해결해주겠는가? 돈 주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지 농업 현장을 찾아 주겠는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싶은 인수위가 공무원 감축의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당초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힘없는 농촌진흥청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농민들의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게 들리는 이유이다.
농작물이 생산되어 소비자에게 이르기까지는 좋은 종자, 토양, 기상, 병해충과 잡초를 다스리는 기술, 때를 놓치지 않고 수확하는 기술, 저장․가공하는 기술 등 매우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더구나 농업기술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효과가 나타나며, 여건이 다른 다수의 농민에게 정착되어야만 그 성과가 실현된다. 이처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민간이 투자를 꺼려하고, 국가주도의 연구개발과 기술보급체계가 효율적으로 연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농촌진흥청이 맡았던 이 모든 영농지도업무를 해당 지자체로 이관하겠다? 농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공무원들이 도대체 어떻게 기술지도를 한다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이 농민과 연구원, 지도직공무원들의 땀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간과한 것은 아닐까 의문이다.
한․미 FTA 비준, 미국산 수입쇠고기 개방,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 곡물가격 등 난제가 산적한 가운데 정부조직 효율화를 명분으로 전체 국가예산 250조원 중 5천억원 규모의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1차산업 국가연구기관을 폐지한다는 것은 농민과 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행위이다.
농업 문제는 경제‧사회‧지역정책을 포괄하는 국가정책의 차원에서 긴 안목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쿠즈네츠 교수는 “농업․농촌발전 없이는 선진국에 진입하기 어렵다.”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G7이라 불리는 선진국들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농산물 수출이 200억달러를 넘는 농업강국이다. 농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단지 정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며, 기술농업강국 실현을 통한 사회통합과 선진사회로의 진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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