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불꽃처럼 타오르는 성도

곳간지기1 2009. 1. 2. 09:05


 "불꽃처럼 타오르는 성도"


레위기 6장 13절에 보면, 불은 꺼지지 않게 하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불은 에너지이다.

불은 원동력이기도 하다.

불은 열심이다.

'열심'이란 말의 뜻은,'마음 중심에 열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불은 열정이기도 하다.

'열정'이란 뜻은, '감정에 열이 끓어오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자동차의 엔진에 불이 붙어야, 자동차가 움직이듯이..

우리의 마음에, 불이 붙어야 열심을 낼 수 있고..

몸이, 민첩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무얼 해도, 열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꺼진 불은, 무기력하며 오히려, 재만 남아 지저분하기만 하다.

꺼진 불로는, 라면도 못 끓여먹고, 불이 없는 곳에는, 세균이 득실득실할 뿐이다.

요즈음처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때에는, 불이 최고이다.

누구나 불을 그리워하고, 가까이 하려 한다.


요즈음과 같은 추위엔..

불이 없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하기 그지없다.

수일 전에, 외롭게 사시는 할아버지가..

불꺼진 방에서 주무시다가, 생명을 잃으셨다는 보도를 보았다.

'불은 타올라야'.. 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라면, '물은 흘러야' 제몫을 다하는 것이다.

꺼진 불이나 고인 물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손해를 가져온다.


요즈음같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밖에 있는 수돗물은, 반드시 잠그지 말고.. 열어 두어 흐르게 해야 한다.

흐르는 것이 멈추면, 수도는 동파된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다.

활활 타올라야 할 불이 꺼져 재만 남은 성도의 가슴은 동토와 같다.

그곳에는.. 생명도, 활력도, 에너지도, 생기도 없다.

냉기와, 사기(死氣)로, 충만할 뿐이다.


신앙은, 현재이다.

예전에, 아무리 용광로와 같은 은혜를 받아,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주님은, 현재.. 타오르고 있는가?'를 묻고 계신다.

그러므로, 뜨거운 은혜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정한 고온을, 지속하는 은혜이다.

이미, 꺼진 아궁이에..

지푸라기나 낙엽을 넣고, 아무리 부채질을 하고, 애를 써 보아도..

장작 하나를 태울 수 없고, 오직 연기만 날 뿐이다.


신앙의 핵심은, 불에 있다.

기독교는, 불의 종교이다.

불꺼진 교회, 불꺼진 목자, 불꺼진 성도는, 연기만 날뿐이다.

연기는.. 본인도 괴롭히지만, 남도 못 살게 만든다.

성도의 가슴에 불 꺼지면, 연기(smoke, 煙氣)로 가득하게 되고..

그때부터 신앙의 모든 행위는, 연기(acting, 演技)로.. 충만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들을, 영안(靈眼)으로 들여다 보라.

얼마나, 연기로 자욱한가?

겉으로 보기에, 아궁이는 휘황찬란하고 웅장한데...

차마, 눈을 뜨지 못할 만큼..

칠흙같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충만하다.


그뿐인가?

얼어버린, 수도관처럼..

이미, 흐르지 않는 물같은 영성을 붙잡고 사는 성도는, 얼마나 많은가?

은혜가 졸졸 흐르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콸콸, 솟아오르는, 성도가 있다.

반면에, 철철 차고 넘치는, 성도도 있다.

어쨋든 은혜는, 흘러야 하고.. 불은 타올라야 한다.

'흐르지 않는 은혜',' 타오르지 않는 불'은, 이미 그림의 떡이다.


주님은 계시록에서,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말씀하셨다.

불꺼진. 성도를 보라.

겨우 겨우. 근근히.. 목숨만 연명할 뿐이다.

마치 중환자실에 누워, 산소마스크로.. 생명을 이어가는 환자처럼..

아무, 기력이 없다.

일주일에, 겨우 예배 한번만 드리는 것도, 버거울 뿐이다.

머리는 움직이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흐름을 멈춘, 성도들을 보라.

냉기만, 감돈다.

말도, 행동도, 마음도, 이미 동토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배도, 기도생활도, 경건의 능력도, 꽁꽁 얼어붙어 있는 성도는..

얼음조각상, 같을 뿐이다.

형상과 모양은 있는데, 그 안에 아무런 생기나 야성은 없는 것이다.

얼어붙은 영성과 마음은, 오직 불(성령)로만 녹일 수 있다.

불은 일생에, 일회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불은, 매일 순간마다.. 받아야 한다.


시골 아궁이에 불을 계속 지피려면..

누군가는 계속해서, 나무를 넣는 수고와, 바람을 불어넣는 고생을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령한 불을.. 우리의 가슴에서, 계속 타오르게 하려면..

그리고, 은혜를 지속적으로 흐르게 하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루어야 하고..

값을, 지불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거저 되는 일도 없다.

그 일이 귀한 것일수록, 치루어야 할 대가와 지불해야 할 값은..엄청난 것이다.


40년의 광야생활 없이, 어찌 모세가 될 수 있었을까?

13년의 타향살이와 감옥생활 없이, 어찌 요셉이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

소나무 뿌리를 뽑는 수고 없이, 어찌 하늘이 열리며

옥합이 깨어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향기를 발하며

야곱의 환도뼈가 성하고서야, 어찌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을까?

주님이 십자가를 피하셨다면, 어찌 인류구원의 목적을 이루셨을까?

산모가 잉태의 고통과 산고 없이, 어찌 생명을 얻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꺼지지 않는 불을, 원하는가?

멈추지 않는 은혜를, 갈망하는가?

희생과 수고와 대가를 치루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내일로 미루지 말라.

불꺼진 난로는, 금난로라 할지라도 영향력과 유익이 없다.

그러나 철난로라 할지라도, 불붙은 난로 곁에는..

수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에너지로 충만한 것이다.


금으로 만든, 수도 파이프면 뭐하랴.

얼어버린 파이프는, 고철에 불과하다.

그러나 쇠파이프라 할지라도..

졸졸 물이 흐르는 수도관은,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불꺼진 제철소보다는, 불붙은 화로가 낫고..

'고여 있는 웅덩이'보다는,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 낫다.

냉냉한 교회, 냉냉한 성도, 냉냉한 사역자가, 희귀한 시대에..

살아감을 깊이 통찰하며..

미지근함으로, 주님의 입에서 토함을 당하지 않기를, 먼저 구하라.

불은 energy이며, 에너지는 synergy effect며, 시너지는 blessing이며..

화력(火力)은, 곧 영력(靈力)이다.

 

 

♣ 꺼진 불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법 ♣


* 게으름을 박차고 부지런을 떨어라.

 불 꺼진 성도의 특징은, 만성적'게으름'이다.

 만사를, 다 귀찮아하며, 오늘 할일을, 내일이나 다음으로..

 미루기를 밥먹듯이 한다.

 세상 사람들을 보라, 얼마나 부지런한가?

 '영이 살아야, 부지런을 떨지'라고 말하지 말라.

 부지런을 떨면, 영은 살아난다.

 부지런히, 말씀을 들어라.

 말씀이, 보약이다.

 은혜가 안 되어도, 들어야 산다.

 '밥맛이 없다고 굶는가?'


* 경건한 지체들을 만나, 교제권을 형성하라.


* 무엇이든 작은 일에도, 감사를 표현하라.

 칼럼 묵상 후에도, 꼬리말(댓글)을 달아, 주께 영광 돌리라.

 칼럼 묵상도, 타성에 빠지면 약발은 없다.

 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꾸 귀찮고 수고스런 일들을 해야 한다.

 세상 칼럼을 보라. 글 하나에 댓글이, 수십 수백 개이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밥 먹은 후에 잘 먹었다는 말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가?

 모든 은혜는,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을 때 더하신다.

 내가 하기 힘든 일... 하기 싫은 일도, 해내야 한다.

 신앙은 훈련이다.

 은혜 받음을, 고백하고 선포하고 표현하여.. 마귀를 궤멸하라.

 귀찮아도, 해야 한다.

 이 작은 것에서, 치유와 회복은 시작된다.

 치유와 회복은, 아주 작은 것을 적용함에서부터 시작된다..


* 숨어서..은밀히, 신앙생활을 하려 하지 말고, 드러내 놓고 하라.

 당신이 숨으면, 하나님도 숨으신다.


* 힘잃고 지친, 영혼들을 찾아내어, 중보해 주며..전화 한통, 문자 한통 넣어주라.

 그것이 선교이며, 그것이 섬김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일어난다.


* 기도가, 막히거나 안되면..찬송을 많이 듣고, 많이 불러라.

 찬송하는 곳에,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그렇다.


* '힘 주셔야 무얼 하지', 말하지 말라.

 기어서라도 주와 복음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할 때.. 힘주시는 것이다.

 필자는, 매번 칼럼을 쓸 때, 쓰고 싶지 않고..

 쓰기가, 어려운 상황과 여건을 만난다.

 그러나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전진할 때, 하나님은 힘을 더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