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 받아온 한국농업
한국농업은 식량자급률이 25%대로 떨어져 OECD 국가 중 자급도가 가장 낮을 만큼 무기력하다고 비판 받고, 또 한편에서는 한국보다 작은 네덜란드와 뉴질랜드는 농산물 수출 대국이 되었는데 한국농업은 수입을 막는데만 급급할 만큼 무능력하다고 끊임없이 구박받아 왔다.
그런 비판과 구박 끝에 드디어 작년 ‘농업 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 의해 정부가 중요 식품의 자급률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고, 곧 뒤이어 올해부터 농업의 수출산업화가 현 정부 농정의 중요 목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 정부는 자급률 제고와 수출산업화라는 서로 엇갈려 보이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농업에 대한 자급론자의 비판과 수출산업화론자의 구박은 다 같이 한국농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동색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국농업과 세계 최강이라는 네덜란드 및 뉴질랜드의 농업을 비교해 보자.
한국농업의 놀라운 성과
한국은 농경지 면적이 뉴질랜드의 절반이고, 네덜란드보다도 20%나 적다. 이렇게 적은 농경지를 알뜰히 가꾸어 정말 많은 농산물을 생산한다. 곡물은 뉴질랜드의 7.3배, 네덜란드의 3.7배를 생산한다. 채소는 뉴질랜드의 10배, 네덜란드의 2.8배를 생산하고, 과일도 뉴질랜드의 2.6배, 네덜란드의 4배를 생산한다. 육류까지도 뉴질랜드의 1.2배, 네덜란드의 70% 이상을 생산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농업 생산액이 뉴질랜드의 4.2배, 네덜란드의 1.7배나 된다. 이렇게 생산액이 많은 것은 국경보호로 한국의 농산물 가격이 높기 때문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국제가격으로 평가하더라도 단위 면적당 생산액은 뉴질랜드의 3.8배가 되고, 놀랍게도 네덜란드보다 적지 않다.
한국농업이 가야 할 길
한국은 인구가 네덜란드의 3배, 뉴질랜드의 13배가 되어 국민 1인당 농경지 면적이 뉴질랜드의 1/27이고 네덜란드의 1/3.7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농경지에서 그렇게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였기에 사료곡물과 소맥 이외의 대부분 농산물을 상당 수준 자급할 수 있었고, 뉴질랜드와 네덜란드보다 10배가 넘는 농업종사자가 소득을 얻어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를 위하여 화학비료를 많이 쓰고 축산분뇨를 다량 배출한 결과 면적당 질소 초과 수준이 OECD 평균의 3배가 되고, 인산 초과량은 4배나 된다. 단위 면적당 농약 사용량은 OECD 평균의 14배이고 에너지 사용량은 37배나 된다.
이러한 환경적 과부하가 언제까지 용인될 것인가? 어떻게 이 이상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여 자급률을 높일 것인가? 어떻게 이 이상 더 많이 생산하여 수출산업화 될 것인가?
더 이상의 환경적 과부하 없이 자급률을 높이려면 아마도 1킬로그램의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 5-13킬로그램의 곡물을 소비하는 축산업을 상당부분 포기하고 축산물은 수입에 의존해야 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더 이상의 환경적 과부하 없이 한국농업이 수출산업화가 되려면 아마도 우량 농경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논에 수출 농산물을 심고 그 대신 쌀도 상당부분 수입에 의존해야 할지 모른다. 네덜란드와 뉴질랜드도 일찍부터 그들의 기본 식품인 소맥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수출농산물을 생산하였기에 수출대국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인가? 식량자급률 제고를 주장하는 사람도 농업의 수출산업화를 꿈꾸는 사람도 한국농업의 현실을 정확히 그리고 솔직히 드러내 놓고 겸허히 국민과 더불어 갈 길을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