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09. 3. 16(화) 22면]
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다. 전근대사회에선 백성들의 삶 자체였다. 예부터 쌀 미(米)자를 팔십팔(八十八)로 분해해 읽고 벼가 쌀이 되기까지 88번이나 손품이 든다며 쌀을 아주 귀한 작물로 여겼다. 일본 스시집에서는 식초 간을 한 흰 쌀밥을 부처의 몸에서 나왔다는 뜻으로 샤리(舍利·사리)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시장개방화의 물결과 더불어 쌀에는 정치적 재화의 성격마저 더해졌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진행되던 1992년 대선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쌀 시장 개방반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고, 농민은 물론 도시민에 이르기까지 쌀 시장 개방만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다. 당시 국내 쌀값은 국제시장의 8배에 이르러 쌀 시장 개방은 곧 우리 농업의 죽음을 말했다.
그렇지만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쌀 시장 개방 이슈가 포함된 UR협상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국은 2004년까지 10년간 쌀 관세화 유예조치를 겨우 얻어냈다. 그리고 2004년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당시 노무현 정부는 도하개발라운드(DDR) 협상에서 쌀 관세화 추가 유예조치를 얻어내려고 안달을 냈다. 한국사회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으나 쌀 개방압력은 이전보다 훨씬 거셌다.
“최근 국제 쌀값 폭등, 원화가치 폭락으로 국내외 쌀값 격차가 크게 줄었다”
UR협상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관세화를 유예받았던 일본, 대만이 각각 1999년, 2002년에 관세화로 돌아선 사실도 우리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까지 관세화 추가 유예조치는 얻어냈으나 혹이 따라붙었다. 이른바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이다. 2005년 22만5575t을 시작으로 매년 10%씩 수입 물량을 늘려 2014년에는 40만8700t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조건이었다.
MMA물량 중 10%는 밥상용 쌀을 수입해야 하며 그 비율은 30%가 되는 2010년까지 매년 4%씩 늘어난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밥상용 쌀 의무 수입물량은 8만t, 2014년엔 12만2610t으로 늘어난다. 최근 쌀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를 감안하면 2014년 밥상용 쌀 수입 규모는 국내 소비량의 1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최근 국제 쌀 시장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2008년 초부터 시작된 국제 곡물값 상승과 원화가치의 폭락으로 국내외 쌀값 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우리가 주로 먹는 캘리포니아산 중립종 쌀값은 지난해 초 t당 600달러에서 9월엔 1119달러로 폭등했고 올 1월에도 110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원화가치는 1년 전에 비해 60% 이상 폭락했다. 단순계산으로 국제 쌀값과 환율이 각각 배로 오른 셈이니 국내 수입을 전제로 할 때 국제 쌀값은 4배나 오른 셈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달 '쌀 관세화 전환, 빠를수록 국익에 유리'란 제목의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연구원은 향후 중립종 가격이 t당 500달러, 원·달러환율 900원선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용해서 분석해봐도 관세화 전환이 추가 쌀 수입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관세화 전환과 동시에 MMA물량은 그해 수준에서 동결되기 때문에 2010년 관세화로 전환하면 향후 10년 동안 1800억∼3700억원의 의무 쌀 수입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여기에는 관세화 전환과 함께 수입 쌀에 부과하는 관세상당치 협상을 감안해야 한다. 관세상당치는 협상을 통해 결정되겠지만 대략 390∼450% 정도로 예상한다고 연구원은 밝혔다. 어차피 2014년 이후에는 쌀 관세화 전환이 불가피한 만큼 관세화를 앞당겨 추진하면서 관세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가는 게 바람직하겠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