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사는 나라가 자기들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나라를 돕는 것을 원조라고 한다.
우리도 6.25 전쟁 이후 초근목피로 생활하던 시절 식량원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전후 미국 공법(Public Law 제480호)에 의한 잉여농산물을 많이 얻어 먹었다.
밀, 옥수수, 전지분유 등이 서민들의 식량이 되고, 학교급식에 많이 제공되었다.
수원국인 우리에게는 배고픔을 해소해 주는 은덕(?)이었지만, 미국 측에는 잉여농산물
재고정리에 큰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은 대학시절 농업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잠비아의 지성인이 아프리카 원조에 대한 문제를 진단하고 원조중단을 주장했다 한다.
어려운 국가나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돕는 방법도 대단히 중요하다.
식량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개발도상국의 농업생산성을 높여줄 기술지원은 중요하다.
아프리카와 개발도상국에서 장기간 근무하면서 농업기술 연구지원에 많은 기여를 했던,
홍종운 박사님(토양학)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후진들을 자문하고 있는데, 진정을 담아서
쓰신 좋은 글이 있어 여기에 소개하니 다같이 한번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빈국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에 대한 기대
요즘 농촌진흥청에서는 다른 나라의 농업기술 발전과 농촌개발을 돕는데에 대한 논의를 매우 활발하게 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졸업한 게 얼마 되지도 않았음과, 또 지금부터 4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의 원조 대상 1 순위에 속하는 나라였었음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살아가는 데에 여유가 있는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들에 대해 배려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어진 마음의 발로(發露)이고 상부상조(相扶相助)는 사람의 상도(常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는다는 일이 말처럼, 또는 생각처럼 쉬운 건 아닌성 싶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나라들을 돕는 것을 흔히 원조(援助)라고 한다. 그런 원조는 역사가 비교적 길다. 따라서 원조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많다. 미국이 2 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재건을 위해 했던 원조(Marshall Plan이라고 통칭됨)가 대규모 국가간 원조의 효시(嚆矢)였고 그 원조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뒤 경제개발원조는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난 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 사이에 사하라 이남의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오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했다. 오랫동안 식민통치를 받아왔던 신생국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취약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빈약했다. 따라서 아프리카를 오랫동안 통치했던 프랑스와 영국은 옛 식민지였던 나라들과의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또 인도적인 면에서 이들 신생국들에 대한 원조를 시작했고, 미국도 냉전구도 속에서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들에 사회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동기와, 인도적 동기에서 신생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 대해 경제개발 원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온지 이제 반세기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원조를 받아온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아직도 빈곤의 굴레(Poverty cycle)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지적돼왔다.
최근에 경제개발 원조라는 관행에 대해 큰 돌멩이를 던진 일이 생겼다. 아프리카 잠비아 출신 Dambisa Moyo가 "죽은 원조(Dead Aid)"라는 책을 펴냈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주목하는 이유는 그 저자가 원조를 받는 아프리카의 한 지성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해온 것은 부국들이고 그 원조에 대해 이런 저런 의견을 제시한 이들의 대부분도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 책은 원조를 받는 입장에 있는 아프리카 사람이 그들의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진단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지닌다고 생각된다. Moyo는 한 마디로 지난 반세기 동안 부국들이 아프리카에 준 원조는 아프리카를 살려온 게 아니라 아프리카를 죽여 왔다고 갈파(喝破)하고 있다. 그는 그의 주장을 매우 조리 있게 펴고 있다. 이제까지 끝도 없이 지속돼온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가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을 원조에 의존하게 만들었고, 자조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으며, 많은 관료들을 부패하게 했고, 아프리카 경제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작용을 해왔다고 지적한다.
그가 원조의 폐단이라고 지적한 것 가운데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국내의 제조업이 빈약한 경우에 원조를 통해 많은 돈이 들어오면 물자에 비해 돈이 많아져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고, 그걸 막기 위해 원조로 들어온 돈으로 물건을 수입하면 자국의 산업이 위축되고, 또 자국의 화폐에 비해 원조를 통해 많은 액수의 외화가 들어오면 자국의 화폐가치가 실속 없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자국 상품의 수출이 위축된다. 원조의 이런 폐단들을 지적하면서 Moyo는 향후 5년 내에 그런 원조는 전면적으로 중단할 것을 제언한다.
유명 인사들 가운데에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인사들도 있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이며 "빈곤의 종말(End of Poverty)"의 저자인 Jeffrey Sachs는 완강한 반대자이고, 가나 출신이며 전 UN사무총장이었던 Kofi Anan은 지지자 가운데 한 분이다. 그러는 와중에 Moyo는 미국 시사주간지 Time지(2009년 7월)가 선정한 2009년 100명의 영향력 있는 인사 중의 한 명이 됐다.
아프리카에 대해 이제까지 계속돼온 개발원조가 Moyo의 제언대로 중단될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원조의 방법은 수정되기라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유 있는 이들이 불우한 이들에 대해 배려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게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인지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는 형편이 나빠 식탁에서 생선을 구경조차 못하는 이에게 구운 생선을 주는 편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일러주는게 미덕이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하물며 이제까지의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가 수원(受援)국들에게 복이 되는 대신 화가 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종전의 관행을 답습(踏襲)하는건 무심한 일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래에 와서 우리 정부는 개도국들에 대한 개발원조(Oversas Development Aid: ODA)를 위한 금액을 늘리고 해외에서의 원조활동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옛날에 우리가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걸 생각해서라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그냥 감성적으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제까지의 원조가 유효하지 못했음이 지적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조금액보다는 원조의 질이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농촌진흥청도 이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농업기술개발과 보급을 위한 사업을 돕기 위해 괄목할만한 행보를 취하고 있다. 나는 농촌진흥청이 금년도에 시작하고 있는 KOPIA(Korean Project on International Agriculture) 사업에 대해 특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원조사업에 있어서 이런 시도는 다소 엉뚱한 면을 갖는다. 내가 보기에는 이 사업은 말하자면 정규전이 아닌 게릴라전의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제 원조는 큰 금액을 드려 하는 건 의미가 없게 됐다. 이제까지와는 색다르지만 효과가 뚜렷한 방법의 원조가 필요하게 됐다. 색다른 일에는 규모가 필수적인건 결코 아니다. 마치 전투에서 게릴라전의 경우에는 규모가 작을수록 효과적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KOPIA는 아주 작은 단위의 실무지원단이다. 그래서 현지에서 행동하기가 자유롭다. 풀뿌리 수준의 문제를 찾아내기도 쉽고 풀뿌리 식 해결책도 찾아낼 수 있다. 거기에서 성공하면 그 사례는 빠르게 소문의 힘을 입어 확산될 것이다. 그런 성공사례는 스스로 증식될 것이다.
이런 사례를 만들어내려면 KOPIA 사람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코피나게 일해야 할 것이다. 나는 KOPIA의 동향에서 그런 조짐을 느낀다. KOPIA는 권위기관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무에 능한 이들이 헌신하는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KOPIA는 유능한 실무진과 실용적인 Think Tank가 함께 일하는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에 있어서 세인(世人)이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것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을 돕는 데에서도 세계가 놀랄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에 그런 걸 가능하게 하는 유전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홍종운 박사/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 국외농업기술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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