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쌀이 조금 남아돈다고 연구과제마저 줄이라는 분위기이고,
천덕꾸러기처럼 되었지만, 그래도 쌀은 우리민족 생명의 원천이다.
경향신문 칼럼을 보니 법인스님이 "쌀 한톨의 진짜 무게는?"이라는
제목으로 가슴에 와닿는 글을 썼기에 공감이 가서 여기 소개한다.
"쌀 한톨의 무게는 하늘만큼이다." 법인 스님의 결론이다.
[낮은 목소리로] "쌀 한톨의 진짜 무게는?"
지리산 실상사, 그곳은 천년고찰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생명평화의 꿈을 경작하고 있는 공동체다.
민족의 아픔과 민초의 희망이 어우러져 내려온 산과 들판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접고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삶에 자족하며 새 희망의 터를 다지고 있다.
6월 첫머리, 실상사가 자리한 산내면의 들녘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모내기 시작이다.
실상사 논도 대부분은 기계로 모를 심지만 몇 마지기는 대중이 어울려 손으로 심는다.
스님, 귀농학교 학생, 대안학교인 작은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맨발로 논에 들어가
제법 농부 흉내를 내가며 한 뜸 한 뜸 모를 심는 모습은 서툴러도 정겹다.
특히 도시문명에 익숙한 작은학교 어린 학생들이 노동이라는 삶의 과정에
자연스레 착근하는 풍경은 대견하기만 하다.
생산의 모든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는 이 아이들에게 곡식 한 알은 결코 예사롭지 않으리라.
예전에는 돈 주면 살 수 있는 것으로 여긴 쌀이 실은 흙과 물과 바람의
바탕 아래 농부의 손길을 88번 받아야 된다는 것,
여덟 팔(八)자가 맞붙여져 쌀 미(米)자가 된 이치를 맨발의 몸으로 익혔을 것이다.
도시에서 실상사 농장으로 한 달간 자원봉사를 온 20대 총각·처녀는
흔히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 했는데 너무도 철없는 말이었다며 부끄러워했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깨달음에 도달했을까. 뙤약볕 아래 땀 흘리며 몸을 쓰는 일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예사로이 먹는 밥이 곧 농부의 정성을 먹는 일임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88번의 손길을 준 농부의 정성
세속의 내 막내누이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평생 자식들에게
자애롭던 어머니가 단 한번 노하셨던 기억을 지금도 안고 산다.
도시에서 자취하던 여중생 시절, 한 달에 한 번 시골집에 왔다갈 때면
어머니는 쌀과 잡곡, 감자, 고구마를 챙겨 머리에 이고 간이역까지 딸을 배웅하셨다.
한 달치 식량이었다. 그러나 세련된 여학생복을 빼입은 사춘기 소녀로서는
촌스러운 보따리를 들고 대도시를 걸어갈 일이 생각만 해도 창피했다.
그래서 딴에는 에둘러 말했다. “엄마, 무겁게 들고 갈 것 없이 팔아서 돈으로 주세요.
제가 도시에서 곡식으로 바꾸면 편하고 좋지 않겠어요?”
그 말에 어머니는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한참을 가만히 계시다가 드디어 입을 열어 하시는 말씀이
“얘야, 이것들은 그냥 쌀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란다.”
누이는 잘못을 깨닫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금방 용서하셨을 어머니가 그때만은 끝까지 마음을 푸시지 않았다.
자식의 입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등이 휘는 노동을 달게 여기며,
더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고 나온 것들을 ‘편리’라는 이름과 쉽게 바꾸려 했다는
죄스러움에 누이는 지금도 목이 잠긴다고 한다.
함민복 시인은 ‘긍정적인 밥’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따뜻한 밥이 된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쌀은 곧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수천대라도, 제아무리 값비싼 최첨단 전자기기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단순한 이치를 생각하면 쌀 한 톨 앞에 경건해진다.
그러기에 농업은 언제 어느 곳에서도 오래된 미래이고 가장 진보적인 현재진행형이다.
한 톨의 쌀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기에 농부가 흘린 땀은 그냥 땀이 아니라 피땀이다.
그렇게 농토에 무수히 흘린 피땀을 뭇사람이 외면할 때 농부의 가슴에는 피눈물이 고인다.
환산할 수 없는 하늘만큼의 무게
30알 달걀 한 판이 4300원. 5000원짜리 커피 한 잔 앞에 달걀 한 판이 서글프기조차 한 오늘날,
1000원짜리 공깃밥을 반만 먹고 남겨 누가 뭐라고 하면 겨우 500원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쌀 한 톨의 무게가 얼마일 것 같으냐고.
일미 칠근. 쌀 한 톨의 무게는 일곱근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적 우리 어른들은 밥을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겁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쌀을 짓는 그들에게 쌀 한 톨은 일곱근을 넘어 하늘만큼의 무게였던 것이다.
쌀 한 톨의 무게는? 하늘이다.
[법인] / 조계종 교육부장 bbwind48@hanmail.net
ⓒ 경향신문 & 경향닷컴, 2010. 6. 5(토) 오피니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6041800455&code=99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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