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시니어·직장선교

아름다운 사람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곳간지기1 2013. 8. 10. 10:53

"아무도 밟지 않은 툭 트인 바다 밑 묘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묻힌 무덤 속에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는 잠들어 있다. 그는 그의 품에 영혼을 안고 천국에 들어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놀라게 한 것은 큰 소리나 대포의 연기도 아니며,

폭풍 위의 거친 숨결도 천둥도 아니다. 다만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 그리스도의 목소리 뿐"

- 군산시 내초동 새만금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펜젤러 순교기념교회 기념비에서 -

 

쇄국정책으로 굳게 닫혀 있던 은둔의 나라 조선에 1885년 인천항으로 첫발을 디딘 아펜젤러,

20대 젊은 청년이 복음 들고 한국에 와서 배재학당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출판선교와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한국을 사랑했던 그는 무덤도 없이 서해바다에 잠들어 있다.

선박 충돌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서해바다 서천 마량포와 군산에 그의 순교 기념교회가 있다.

작년 서천에 있는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을 방문했는데 이번 여름휴가 때는 군산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사람 아펜젤러 순교기념교회 홈페이지"  http://appenzeller.co.kr 

 

복음 들고 은둔의 땅을 찾아와 죽도록 사랑했던 한국의 서해바다에 선박사고로 수장된 아펜젤러 순교기념교회
복음 들고 찾아온 아펜젤러 무덤도 없이 서해바다에 잠들다. (그에게 바치는 헌시)
아름다운 사람 아펜젤러 & 노블 기념관 (전북 군산시 내초동 109-16번지)
순교자의 발자취를 더듬어 찾아온 순례객들이 진지한 자세로 설명을 듣고 있다.
순교기념교회 임춘희 목사님의 사모님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신교육의 발상지' 배재학당을 세워 교육사업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하다.
아름다운 발걸음의 흔적을 찾아...
한국최초의 공식 파송선교사였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인천항에 첫발을 디뎠다.
초기선교사들의 전도여행
아펜젤러가 심혈을 기울였던 성서번역과 안타까운 최후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의 육필 원고
성경번역 회의차 배를 타고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중 군산과 서천 앞바다에서 충돌사고
이 땅에 빛과 자유를 전파했던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바치는 헌시
1885년 4월 5일 부활절날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인천항(제물포)에 첫발을 디디다.
수영을 잘하던 아펜젤러는 혼자 살 수도 있었으나 동행자를 구하려다 불의의 사고
아펜젤러의 가족 사진
헨리 G. 아펜젤러의 문서
기념관의 전시물들
쇄국정책으로 문을 굳게 닫고 있던 조선에 교육과 의료사업으로 선교의 문을 열다.
조선의 마지막 왕가 고종과 순종의 가족에게도 복음을 심다.
배재학당에서 배출한 인재들...이승만 초대대통령, 한글학자 주시경, 독립신문 발행인 서재필, 민족시인 김소월 등...
해난사고 현장인 군산앞바다 어청도, 서천에서 가장 가까우나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군산에 속했다. 독립운동을 지원해 일제에 눈의 가시였던 아펜젤러를 겨냥한 음모가 있었다는 추측도 있다.
배재학당 앨범, 기독신보 등 당시의 문서
아펜젤러 선교사 연보
옛날 교회당(내초교회) 건물에 한국선교역사관을 설치했다.
내초교회(1972-1990) - 온누리교회(1990-2006) - 아펜젤러 순교기념교회(2007-현재)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기획전시회, "파란 눈의 선교사가 전해준 선물" 기획전시회는 다음편에 다시 소개합니다.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에서 새만금 가는 대로변 오른쪽에 있어 찾기 쉬우니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 참고 : 서천군 마량포 동백정교회에 있는 아펜젤러 순직기념관 http://blog.daum.net/psp727/7714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