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포구에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량진 포구에 한국최초(1816년)의 '성경전래지'가 있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은둔의 나라 조선에 선교사로 첫발을 디뎌,
커다란 업적을 남긴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기념관이 거기에 있었다.
한국에 공식적으로 파송된 첫 선교사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였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두 선교사가 함께 인천항에 첫발을 디뎠다.
아펜젤러는 감리교, 언더우드는 장로교 선교사로서 파송을 받았다.
그들은 쇄국정책의 어려운 환경에서 교육과 의료사업을 먼저 시작했다.
아펜젤러는 1885년 우리나라 신교육의 효시가 된 배재학당을 세워
교육사업을 시작하였고, 나중에 정동제일교회 설립, 독립활동 지원,
신약성경 한글번역 등 한국교회 초기 역사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1902년 6월 어청도 해역에서 선박충돌 사고로 요절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장소가 군산 앞바다에 있는
오식도로 알고 있었는데, 서천 앞바다에 있는 어청도(일본발음 오세이도)
라는 사실이 새롭게 검증되어(마량리에서 약 48km, 군산에서는 약 72km),
그곳을 육안으로 전망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육지에 기념관이 세워졌다.
조선말기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개화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고,
다음해 조선 정부는 민영익, 홍영식, 서광법 등 개화파 정치인들을
미국으로 파견해 보빙과 서양문화 시찰의 사명을 수행하게 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연한 기회에 미국 선교사가 한국에 파송되게 되었다.
이상한 옷차림의 한국사절단에 호기심과 관심이 생긴 가우처 박사는 이들에게
말을 걸게 되었고, 동양의 은둔국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그 후 본격적인 실행계획을 추진해 아펜젤러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다.
영어학교로 출발해 고종황제로부터 '배재학당(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집)'
교명을 받았고, 교훈은 "欲爲大者 當爲人役"(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1885년 최초로 설립된 미션스쿨 배재학당에서 본인도 세례를 받았다.
수영을 잘하던 아펜젤러는 혼자 살 수도 있었으나, 동행했던 조한규와
방학을 맞아 귀향하던 정신여고 학생을 구하려다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조선을 사랑했던 그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린 인간애'를 실천했다.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서천군 서면 마량리 251-1), 방문안내 041-952-2224
"하늘이여, 바다여, 파도여, 님은 이 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셨는데..."
* 김석영 지음, '처음 선교사 아펜젤러'(도서출판 kmc, 2011) 참고
홈페이지 : http://www.kmcmall.co.kr, http://www.kmc.or.kr
의미있는 지역의 역사성이 잘 보존되어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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