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농촌진흥청 퇴출은 절대 안된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가진 자, 배 운 자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겸손이란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불과, 1개월여 동안에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의욕 때문에 생긴 말이라는 생각이 들긴 해도, 인수위원회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다.
그 중에서 농촌진흥청의 퇴출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이조 세조 원년(1455)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당한 사육신의 전기《사육신집(死六臣集)》에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하위지의 글 중에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란 말이 나온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천하의 근본이다"란 뜻이다. 옛말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선비 다음에 농부가 있었다는 말과 일치하는 뜻이 아닌가.
언젠가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 '기업천하지대본(企業天下之大本)'이라 하였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설마,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어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했더니, 설마가 농민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서고 있다. 결국, 우리 농민들의 마지막 지존심인 동시에 우리나라 농업기술개발의 최후의 보루인 농촌진흥청을 정부 부처에서 퇴출한다는 말이 아닌가? 정말, 서글픈 생각이 든다.
지난 1995년 우루과이 라운드(UR)의 국회 비준을 앞두고 한 바탕 홍역을 치룬 적이 있다. 이 문제는 이미 1948년 1월에『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조인되면서부터 예견된 것이었고, 가까이는 1986년 9월 남미 우루과이에서 각료선언이 채택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이 때부터라도 정부는 연구와 기술개발을 통해 수입 농수산물의 시장 개방에 대비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는 "우리 농민의 생명선인 쌀만은 절대 개방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해 오더니 어느 날 갑자기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우리도 농수산물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다"는 말 한 마디로 그 당시 허신행 장관의 인책선에서 우리 농민의 사활이 걸린 농업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그 동안 "쌀만은 절대 개방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쳤던 역대 정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1994년 UR의 국회 비준에서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는 덫에 걸려 우리 농어민들은 "수출로 나라가 부흥해야 국민도 잘 살 수 있다"는 애국적인 견지에서 UR의 국회 비준을 동의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결과, 1995년 1월부터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고 세계가 거대한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개방되면서 안전성도 검증되지 않는 값싼 수입 농수산물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면서 우리 농어민들은 고통 속에 해마다 빚만 쌓여만 간다.
그렇지만, 기업은 '기술 개발' 하나로 세계시장을 공략하여 엄청난 부(富)를 창출하여〈주 5일제〉속에 "이번 주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주말을 보낼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지만, 우리 농어민들은 주 7일 동안 죽도록 일만 해도 연명하기 조차 힘든 현실이다. 이제, "우리 농어민들은 천하에 설 자리조차 없다"는 뜻에서 '농자천하불입지(農者天下不立地)'란 말이 우리 농어민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질 않는가.
그래서 농어민들의 고통을 보고 있을 수만이 없다고 판단하여 바다사랑실천운동시민연합(상임의장 최진호)과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회장 박홍수)가 공동으로 지난 2001년 4월 20일 15:00,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1% 생명ㆍ환경운동에 동참합시다"라는 주제로「농어민의 생계 및 강ㆍ바다의 환경대책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최진호 상임의장은 대회사에서 "WTO에서 농수산업이 양보하여 기업이 살게 되었으니 농수산업과 기업의 상생(相生) 차원에서 이제, 해마다 기업이 1%를 출연하여 2조원의 자금으로, 1조원은 농어민의 생계대책에 사용하고, 나머지 1조원은 수출기업에서 오염시킨 환경분담금으로서 각 5천억원씩을 강과 바다의 오염방지와 깨끗한 강ㆍ바다 복원사업에 사용하자"고 제안하여 많은 호응을 받았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함석재 위원장을 비롯하여 국회의원과 정대근 농협회장, 정상욱 수협회장 등도 축사에서 "1% 생명ㆍ환경운동에 동참하자"고 호소한 가운데 박홍수 회장(최근 농림부 장관)이 "기업이 왜 농어민과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라는 발제를 하고, WTO협상연대 장원석 집행위원장(최근 대통령 농수산특별위원장)의 "농어민의 생계대책과 강ㆍ바다 살리기"란 주제발표에 이어 농민단체협의회 김인식 사무총장(현 농촌진흥청장), 바실련 안중기 상임대표, 전어련 황규환 사무총장, 참여연대 유창주 사무국장의 지정토론을 통해 기업이 수출액의 1%를 출연하여 농어민의 생계대책과 강ㆍ바다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자는 방향으로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다.
농어업과 기업의 상생이란 차원에서 이제, 기업이 농어민을 도와야 순리다. 그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가 아니겠는가. 지금도 인수위원회가 '기업천하지대본(企業天下之大本)'이라고 믿고 있는지, 그래서 농촌진흥청을 정부에서 퇴출하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먼저, 이 말에 대한 대답을 하고 나서 농촌진흥청을 퇴출하던지, 아니면 강화하던지 결정해야 마땅하다.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여 노인을 구박해서는 안 되듯이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킨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하고 효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부르고 있질 않는가.
농촌진흥청은 지난 1906년 4월 권업모범장으로 출발하여 1929년 9월 농업시험장으로 개칭한 이후 1946년 2월 미군정청 중앙농사시험장으로 개편되었고, 1962년 4월 1일 농촌진흥청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100년이 넘게 우리 농민과 함께 농촌 현장에서 농업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왔을 뿐만 아니라 WTO이후 범람하는 값싼 수입 농산물에 대항해서 우리의 농촌과 농업, 그리고 농민들에게 꺼져가는 꿈과 희망을 되살리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해왔고 많은 성과를 냈는데도 칭찬은 고사하고 우리 농업을 지키겠다는 꿈마저 포기하는 조치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될 너무나 가혹한 조치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정말, 울고 싶다.
노무현 정부는 논에 골프장을 허가하더니 새 정부는 우리 농민들의 마지막 버팀목인 농촌진흥청을 버렸다는 오명을 남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울러 인수위원회는 명분 있는 개혁은 과감히 추진해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하여 힘없는 농촌진흥청을 퇴출하여 농업을 포기하는 행위는 재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지적하고 싶다. 농촌진흥청의 퇴출은 정말, 명분이 없다.
황금찬 시인은 <보릿고개>라는 시에서 ".../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생각한다/.../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라고 보릿고개를 넘지 못한 죽은 동생을 지금도 생각한다. 배고팠던 그 시절이 눈물로 다가선다.
제공: 먹거리사랑시민연합 상임의장 최진호 [2008-02-11 11:52] 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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