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먹는 칼로스
GSnJ 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교수)
UR의 후속협상 결과 쌀 시장이 추가 개방되면서 소비자들이 직접 소비할 수 있는 식탁용 쌀이 정식으로 수입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이나 중국, 호주, 태국산 쌀들이 국내 식탁에 오를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들이 수입쌀들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이들이 국내 식탁을 어느 정도 지배하게 될 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특히 밥맛이 좋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장미, 칼로스(Calrose)의 등장에 국내 농민들은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부 농민단체들은 칼로스의 수입을 저지하기 위한 항구봉쇄 등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칼로스가 수입되었으나, 국내 입찰 결과가 매우 저조할 뿐만 아니라, 국내시장에 유통된 칼로스를 시식해 보니 “에계!” 하는 안심어린 반응과 “무슨 흑막이..?” 하는 의문이 일만큼 칼로스의 밥맛은 기대 밖이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농민출신 민노당 국회의원이 직접 확인한 만큼 분명 칼로스는 우리 식탁을 위협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국영무역을 통한 국내 수입절차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고, 실제로 미국은 수입절차나 입찰과정 등에 이의를 제기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대형유통업체들이 수입쌀 취급을 꺼려하기 때문에 아직 일반 소비자들의 평가를 얻지 못했다고 빠른 판단을 유보하기도 한다. 그러나 칼로스의 본토인 캘리포니아에서 먹어 본 소감은 국내에서 의심받고 있는 칼로스의 밥맛에 “이유 있음”이다.
필자는 지난 1월부터 연구년을 맞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 Davis)에 체류하면서 직접 쌀을 사서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는 주부 아빠였다. 농업경제학자로서 필자의 관심은 당연히 캘리포니아 쌀의 품질이었다. 아마 그 기간 동안 먹은 쌀은 국내에 수입된 쌀과 비슷한 시기에 생산되고 도정된 쌀일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요약하면 우리가 막연히 알고 두려워하던 칼로스가 더 이상 국산 쌀보다 우수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조그만 대학도시에는 여러 대형 수퍼마켓과 함께 조그만 한인 마켓이 있다. 대형 수퍼마켓에서도 우리가 먹는 중립종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쌀이 있지만, 대부분 저렴한 가격의 중간 정도 품질의 쌀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아시아 계통 소비자들과 한국과 일본의 맛을 경험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인 마켓에서는 다양한 품질의 쌀을 취급하고 있다. 그 중에는 필자가 과거 10년간 미국에 거주하면서 먹었던 정말 좋은 미국 쌀로 각인되어 있던 국보를 비롯하여 씻어나온 쌀(무세미), 완전미 등 고급 쌀 등이 있다. 작은 가게지만 많은 고객들과 그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김밥과 캘리포니아 롤 등으로 쌀의 유통회전율은 매우 높은 편이었고, 실제로 매주 새로 도정된 쌀이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제일 먼저 집어든 쌀은 국보(Kokuho Rose)였다. 통일벼를 먹던 시절에 미국 유학 가서 처음 접한 국보는 쌀과 밥에 대한 필자의 인식을 단번에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국보의 소매가격은 5파운드(2.25kg)짜리가 3.99달러로 그 가게에서는 별로 비싸지 않은 쌀이다. 그러나 시식해 본 결과, 과거 내가 기억하는 맛이 아니었다. 밥맛과 향취도 그렇지만, 밥을 해놓고 10분만 지나면 벌써 퍼져서 떡이 지기 시작하기도 했다. 혹시 그 쌀만 유통기간 중에 문제가 있었을까 하고 그 다음에도 같은 브랜드를 골랐으나, 여전히 실망스러웠다(쌀의 포장지에는 정확하게 명기된 유통기한도 없었다). 그때는 1월이었고, 날씨와 저장기술을 고려하더라도 거의 신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쌀을 자세히 보니 싸라기나 깨진 쌀, 변색된 쌀 등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보였다.
그 다음 번에는 동일한 가격의 금(錦, Nishiki)을 골랐다. 주로 일본식 초밥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한다는 그 쌀도 여전히 내 입맛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이제 칼로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과거의 호감은 어느덧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미국 쌀의 품질이 과연 실제로 별로인 것인지, 아니면 아직 제대로 된 미국 쌀을 먹어보지 않은 것인지.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가? 내가 너무 주관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인 아닌지 등등.
그 다음으로 주인의 추천을 받아 그 집에서 가장 좋다는 아키타오토메(Akitaotome)를 골랐다. ‘최고급단립정미’와 ‘빨리 씻은 쌀(quick rinse rice, 輕洗米)’이라는 설명이 붙은 이 쌀은 포장도 레이언지에 세련된 디자인을 하고 있었으며, 가격은 국보에 비해 매우 높은 5파운드당 5.99달러였다. 그러나 맛이나 식감이 국보에 비해 대단히 월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 낫다는 정도의 평가 이상을 주기 어려웠다. 여전히 깨지거나 싸라기들이 적지 않게 보여 완전미와는 거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쌀은 캘리포니아 고시히카리 단립종으로 ‘한정계약농가직송’이라는 설명이 붙은 전목미(田牧米, Tamaki Gold) 였다. 이 쌀은 질소 세척한 경세미로 은박 포장지에 진공 포장하여 5파운드당 5.99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이 쌀은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먹어 본 중에 가장 좋은 쌀이었다. 밥의 냄새도 좋고, 식감도 훌륭했다. 맛도 있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캘리포니아의 칼로스를 만났다. 그런데 이 쌀이 내가 한국에서 먹어보던 좋은 쌀에 비해 대단히 우수하다는 평점을 주기 어려웠다. 필자가 농장장을 하면서 생산하던 고려대 부속농장의 자운영쌀에 비하면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가 국내에서 먹어보았던 최고급 쌀들은 결코 칼로스에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우수한 브랜드들도 있었다.
필자는 식품과학자나 전문적인 식미감정가가 아니기 때문에 밥맛에 대해 과학적인 평가를 하지 못한다. 다만 오래 동안 쌀을 먹어온 소비자로서, 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을 기준으로 한 평가에 의하면 한국에 수입된 칼로스에 대한 저조한 평가가 단지 수입절차 상의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칼로스의 품질과 맛이 한국시장을 강타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지난 6개월간의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우리는 칼로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기대를 할 필요가 없다. 칼로스의 품질도 우리 쌀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시장에서 팔릴 만한 최고급 쌀의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필자가 경험한 최고급 쌀 전목미를 80킬로로 환산하면 소매가격으로 213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0만원이 넘는 비싼 쌀이다.
그러나 칼로스의 잠재력을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미국 쌀 산업의 품종개발과 시설투자를 통한 품질향상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과거 그렇게 맛있었던 칼로스의 품질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빠졌을 리 없다. 다만 국내 쌀의 품질이 그간 생산자와 정부, RPC 등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월등하게 좋아졌기 때문에 칼로스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불만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 한국 쌀 시장은 품질을 향한 무한경쟁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쌀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 우리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할지 모를 일이다. 오늘날의 그 칼로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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