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하늘목장의 가을 찬가[讚歌]

곳간지기1 2009. 9. 14. 09:09

지난 주말에 비가 조금 내리더니 제법 쌀쌀해 졌습니다.

매년 엄벙덤벙 하다 가을도 못느끼고 겨울이 되곤 했는데,

이번 가을만큼은 선선한 바람도 느끼고, 단풍도 즐기고,

황금들판도 둘러보면서 풍성한 가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자연의 넉넉함, 여유로움을...

 

가을 찬가[讚歌]


사무실에 우두커니 고개 여민 선풍기가 머쓱해짐을 보니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섰나 봅니다.

오늘 새벽에는 배고픈 사람 허겁지겁 밥 먹듯이 가을을 마셨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바람도 시려서 마실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지 않게 주어진 누림의 시간들이 아까워 마음부터 분주해 집니다.

유난히도 무덥던 여름이 우리도 모르게 슬며시 고개를 떨구고,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고개를 수줍게 내밉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코발트 하늘을 보고, 울창하던 나무들도 보고,

풀들을 보노라니 어느새 내 마음도, 동심처럼 맑아짐을 느낍니다.

이것이 자연이 베풀어 주는 넉넉함인가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연의 넉넉함 한 복판에서 오늘 하루도 부대끼며 살아내야 합니다.

자연에 대한 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말이죠.


그렇게도 여유 없이 힘들었던 여름은 벌써 저만치로 가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예배당 창밖에서 헤집고 들어오는 햇살의 조각들이

싫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는 영락없이 간사한 인간일 뿐입니다.


늦은 밤이면 예배당 한켠에서 귀뚜라미 애절하게 울어 댑니다.

어쩌면, 저놈(?)은... 가을을 어떻게 알고, 변함없이 나타나는 건가요?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이때까지 뭘했나' 하는 상념에 속이 울적해 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만남(귀뚜라미와 나)은, 해마다 그렇듯이 우연이 아님을 새삼 느낍니다.

하찮은 미물인 귀뚜라미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이 매미는, 이제 퇴장하고 귀뚜라미는, 입장하라고 말씀하셨을 겁니다.

저들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저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고난은 퇴장하고, 축복은 입장하라'고 말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덥다는 핑계로 자연도 잊고 하늘이 이렇게 시리도록 푸른지도 모르고 지낸 것이,

여간 억울한 게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지마는 높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는 강퍅한 마음도 인색한 마음도 넓어지고 순해짐을 보면

자연의 힘은, 하나님을 닮았나 봅니다.


매미 울음소리 밀어내고, 귀뚜라미 울어대듯 반팔 민소매가 머쓱해지고,

제법 무게 나가는 두툼한 옷들을 준비해야 두어야 하듯

하나님도 우리에게 슬그머니 응답으로 찾아 오셨으면 합니다.

태풍도 폭염도 한 시름 꺾이고, 천고마비의 계절로 위로하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의 풍랑과 혹독한 훈련의 시름을 덜게 하시고

성숙과 열매와 훌쩍 큰 성장으로 격려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시간에 홀연히 가을의 뜨락에 서있듯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의 응답과 충만의 뜨락에 서있기를 애절히 소망합니다.


가을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바램으로 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것이 자연의 힘입니다.

물러갈 때를 알고, 물러간 여름이나 와야 할 때를 알고, 제때에 와준 가을이나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안에 속한 일입니다.

만일에 우리의 힘으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오게 한다면

그것은 천지창조 보다 불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계절을 바꾸시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평범한 일입니다.

그와 같이 이 가을에는, 교우들에게도 특별한 일들이 평범한 일들로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계절의 변화가 찾아왔듯이 우리의 고난도 제때가 되면 멈추고 물러갈 것이며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청명한 영적인 가을도 때가 되면 밀물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이듯, 이것 또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할 뿐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실수 없으신 때를 알고 기다릴 뿐입니다.


낙엽 떨어짐을 보면서 인생의 황혼을 배우듯이

우리는 자연을 통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더워도 때가 되어야 물러가는 더위처럼.. 아무리 사모해도 때가 되어야 다가오는 선선함처럼,

불볕 같고 숨 막히던 고난도 그렇게 물러갈 것이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선선함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파란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보아야 할 것이며

코스모스 그림자위에 드려진 잠자리의 그림자를 보면서 응답의 그림자를 떠 올려야 할 것입니다.


차창 밖에서 스며드는 자연의 공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 혼자 마시기에 아까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혼자이고 싶을 때가 이런 때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의 응답도, 성령의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스며들 것입니다.

이제는 에어콘이 아니라, 자연의 바람으로 충분하듯이

성령의 바람으로도 충분한 하루 될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 두셔야 됩니다.

창문 닫아 두어 오래 되지 않을, 포근하고 싱그러운 바람을 놓치면

그냥 또 추운 겨울 오듯이 우리의 영혼의 창문을 닫아 두어

또 다시 살을 에이는 겨울을 만나면 안될 것입니다.

그것처럼 우행은 없습니다.


풀잎 사이에 살포시 숨어 소리 내는 여치를 보며 우리는 주님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등허리에 조각되어 내리 쬐는 햇살들을 통해 우리는 내 영혼의 햇빛 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진녹색의 옷을 벗고 누런색으로 갈아입을 울창한 숲을 보며

우리도 끝없이 그리스도의 새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도 진솔한 가을에

이렇게도 풍성한 가을에

이렇게도 푸르른 가을에

우리 교우들에게도 풍성한 가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