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텃밭 & 주말농장

홍박사의 배추와 붕소 체험기

곳간지기1 2009. 11. 28. 10:06

김장 하셨나요? 한해동안 열심히 가꿔왔던 우리집 주말농장 가을걷이가 끝났다.

지난 주말 내가 출타한 사이 한파가 몰려와 주말농장 김장채소 수확이 끝나버렸다.

아쉽게도 그동안 공개했던 주말농장 이야기에 실을 수확장면 사진이 없게 되었다.

대신 배추를 동생과 처형네 등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을 집에서 몇장 찍어두었다.

 

'꿩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마침 우리청 게시판에 토양학 권위자인 홍종운 박사님이

자신이 정성껏 가꾸고 있는 주말농장에서 배추가 '붕소' 결핍으로 잘 자라지 않아

여러가지 수단방법을 모색한 끝에 문제를 해결했던 체험담이 있어 여기에 올린다.

주말농장을 하고 있거나 내년에 시작하실 분들을 위해 소중한 정보가 될 것이다.

 

올해 주말농장은 김장채소 수확이 끝나고 몇몇은 간이로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시금치, 마늘 등 월동초를 가꾸는 일 외에는 더 이상 작물을 가꾸기 힘들어졌다.

내년봄을 기약하며 다음에는 무슨 작물을 심을까 궁리하면서 겨울을 날 것이다.

주말농장을 시작하고자 하는 분들은 관심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참고] 홍종운 박사의 '배추와 붕소' 체험기

 

나는 4년째 주말농장에서 배추를 길러왔다. 3년 동안은 배추를 별 문제 없이 길렀다.

그런데 금년에는 문제가 발생했고 그걸 통해 공부도 많이 했다.

지난 3 년 동안은 농사를 지어 오던 밭에서 배추를 재배했는데 별로 문제가 없었고,

올해는 건축공사 하는 데에서 남게 된 산흙을 옮겨다가 성토(盛土)해서 만든 밭에서

봄에는 상추를 기르고, 여름에는 아욱, 쑥갓, 고추, 토마토, 가지 같은 것을 기르고

가을에는 배추와 국화를 길렀다. 다른 작물들은 별문제 없이 길렀는데 배추에만 문제가 있었다.

이제까지 농사를 짓지 않던 산흙으로 만든 밭인 것을 생각해서 작물을 심기 전에

가축 똥으로 만든 유기질비료와 인산비료도 넉넉하게 주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봄 작물들과 여름 작물들은 작황이 다 좋았다. 그런데 배추에는 문제가 있었다.
8월 20일에 종묘상에서 좋은 배추 묘를 사다가 심었다. 물론 밑거름을 주었다.

21-17-17 복합비료로 질소를 300평당 질소 12kg에 해당하는 양을 주었다.

배추 밭 일부에는 배추 사이사이에 국화를 심어 모양을 내었다.

배추를 정식한 뒤 한 열흘 정도는 배추가 잘 자랐다.

그런데 그 뒤에는 배추가 거의 자라지 않는 것 같았다.

특히 배추의 고갱이 부분이 자라기를 멈춘듯 했다. 부랴부랴 여기 저기 물어보았다.

인터넷도 검색해보았다. 붕소가 모자라는 거라는 감이 잡혔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채소전문가(운무경 박사)에게도 알아보았다.

붕소가 모자라는 게 확실하다는 답을 얻었다.

 

붕소가 부족한 배추


그런데 그에 대한 대책이 쉽지 않았다.

책에는 이런 경우에는 붕사를 물에 타서 배추 잎에 주는 것이 좋다고 쓰여 있다.

 그렇게 하는게 쉬워 보이지 않았다. 잘못하면 붕사를 너무 쓰게 되어 농사를 그르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용하지 않기 위해 붕소가 1ppm 정도가 되게 붕사를 물에 타서 잎이 젖을 정도로 배추 잎에 뿌려주었다.

아무래도 너무 적게 준 것 같아, 다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붕소가 100 ppm 쯤 되는 용액을 만들어 잎이 충분히 젖고 표토도 흠뻑 젖을 정도로 주는게 좋다고 했다.

100ppm은 너무 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50ppm 용액을 만들어 배추잎도 젖고 흙도 젖을만큼 뿌려주었다.

한 주일쯤 지나니 배추가 회복되기 시작하여 정상에 가깝게 자랐다.

이웃 밭에서 주말농장을 하며 배추를 기르는 분들에게도 나처럼 해보라고 권했다.

내가 권하는 대로 한 분들은 배추농사를 어느 정도 잘 지었다.

 

붕소부족증으로부터 회복된 배추

내가 기른 배추는 기를 때 질소비료를 과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길렀기 때문에
배추포기가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배추들처럼 중압감을 느낄 만큼 크지 않다.
그러나 시장의 배추들보다 맛은 좋다. 수확할 때 배추 잎의 질산이온 함량이 낮기 때문이다.
수확할 때 배추 잎에 질산이온이 적게 들어 있으면 배추 잎에 당분이 많이 들어 있다.
배추가 붕소가 모자라는 증상을 겪고 회복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흥미있는 사실에 대해 배웠다.
배추가 붕소 부족에 시달림을 받을 때 배추 밑둥치에 새 가지가 생기는 걸 볼 수 있었다.
배추재배에 대한 경험이 많은 분이 그걸 액아(腋芽: 겨드랑이 싹)이라고 부른다고 일러주었다.
 
배추가 마치 가지를 친것 같아 보인다. 아래 쪽에 있는 게 액아다.

배추의 원둥치를 잘라내고 보니 숨어있던 액아가 확실히 보인다.

어떤 포기는 어떤 것이 원둥치이고 어떤 것이 액아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여러 개의 액아가 생겨 서로 거의 같은 크기로 자랐다.


배추의 경우 붕소부족 때문에 생장점이 잘 자라지 못하면 배추의 밑둥치에서 새싹이 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대를 잊기 위해 작게라도 자라기 위함이라고 설명해 줬다.

배추는 꼭 붕소가 부족하여 생장점이 잘 자라지 않을 때에만 액아가 생기는게 아니라,

어렸을 때 우박 같은 것을 맞거나 해충의 피해를 입어 배추의 생장점이

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액아가 생긴다는 설명도 그분이 해주었다.

생물이 대를 이으려는 안간힘은 참 대단한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금년 배추농사를 통하여 한 가지 중요한 걸 더 배웠다.

흙에 작물이 이요하기 쉬운 붕소가 적은 데에 가장 민감한 작물이 배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밭에서 재배한 상추, 아욱, 쑥갓, 토마토, 무, 갓, 파, 당근, 고추, 가지,

고구마, 오이, 호박 등의 작물들에서는 붕소부족증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배추에서만 붕소부족증이 일어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야겠다.

금년에 내가 수확한 배추는 파치까지 합치면 약 예순 포기쯤 됐다.

단 두식구가 아파트에 살다보니 그걸 다 김장에 쓸 수 없었다.

이웃에 나눠주려 했지만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모두들 절인 배추를 조금 사다가 김장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애써 기른 아까운 배추를 밭에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디 출가시킬 만한 곳이 없을지 두루 생각하던 끝에 식당을 하는 아는 분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외교적인 표현을 모두 동원하여

 내가 기른 배추를 밭에 버리지 않게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러겠노라 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배추를 잘 다듬어서 넘겨주었다.

혼기를 넘긴 아이를 좋은 가정에 출가시킨 기분이었다.

잘 자라던 배추가 갑자기 자라기를 멈췄을 때의 난감함,

붕사를 주어 배추가 회복도던 때의 안도감,

틈이 날 때마다 밭에 나가 배추의 변모를 보던 즐거움 같은게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올해 배추농사를 지으면서 참 많은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