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꽃 & 야생화

홍종운 박사님의 애기똥풀 이야기

곳간지기1 2008. 5. 28. 23:58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에서 토양학을 연구하시다 퇴직하신 홍종운 박사님이 계신다. 여러해 동안 공부도 하고 일도 하시면서 외국에서 지내시다 말년에 귀국해 과장을 하고 한참 전에 퇴직하셨다. 분야가 달라 학문세계를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분의 단면을 소개해 본다.

 

그분은 연구자의 정신이 철두철미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셔서 일흔이 넘은 지금도 후학들을 지도하며 일도 도와주고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농담도 잘하시고 구수한 유머와 서민적인 풍모로 쉽게 대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틀리면 가차없다. 

 

영어도 잘하시는데 아는 것이 어찌나 많은지 섣불리 잘못 덤볐다간 본전도 못뽑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구내식당에서 누구든 식판에 음식을 남기면,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혼쭐이 난다. 귀한 음식을 왜 쓰레기로 만들어 낭비하느냐고 꾸짖으면,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며 슬슬 물러나게 된다.

 

이 시대에 그런 원로가 계신다는 것이 후학들에게는 힘이 되고 본보기가 되는데, 요즘도 중요한 고비마다 좋은 글과 사진 등으로 여러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계시니 든든하기만 하다. 근자에 그분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글로 "애기똥풀" 이야기를 해주셨기에 여기에 올려본다.

  

 

 

 홍박사님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복사해 왔더니 잘 안보여서 다시 인터넷백과에서 떠다 붙였습니다.

 

애기똥풀은 그 줄기와 잎과 꽃 모두 고운데 그 이름을 별로 곱지 못하다. 애기똥풀은 대개 우거진 녹음 속에서 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짙은 노랑꽃은 더 돋보인다.

이 꽃은 양귀비과에 속하며 영어 이름은 Asian celadine이고 학명은 Cheldonium maju var asiaticum이다. 학명 중 chelidon은 그리스 말로 제비를 뜻하는데 이 꽃이 제비와 관련 있는 설화(說話) 때문에 그런 학명을 갖게 된 거란다. 
그 설화란 이런 것이다.
 
제비가 알에서 막 깨어났을 때에는 눈을 잘 뜨지 못하는데 어미 제비가 애기똥풀이 잘렸을 때 나오는 노란 젖 같은 액을 입에 묻혀 새끼 제비들의 눈에 발라주면 세끼 제비들이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아무도 그걸 시험을 통해 증명하려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설화란 본래 믿거나 말거나 하는 거니까....
 
나는 애기똥풀과 관련하여 위의 설화보다 10 배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내가 어려서 살던 동네는 그리 크지 않아 누구 집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총속 같이 알고 지낸다. 그 동네에 내 또래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엄마 젖을 먹었다. 그때는 그게 대단한 흉은 아니었지만 조그마한 이야깃거리는 됐다.

내 친구가 어떻게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엄마 젖을 먹게 됐는가 하니...
그때는 아우가 생기지 않으면 아이가 대여섯 살 될 때까지 엄마 젖을 먹으려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 엄마가 젖을 떼게 하는 수단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한 가지가 애기똥풀을 쓰는 방법이었다. 애기똥풀을 자르면 노란 젖 같은 액이 나온다. 그 액의 맛은 그 때 학질(말라리아)에 쓰던 금계랍보다는 덜 쓰지만 어지간히 쓰다. 젖을 떼려는 엄마들은 종종 애기똥풀의 노란 액을 젖에 발라 아이가 더 이상 젖을 찾지 않게 한다. 그런 엄마들의 전술은 대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엄마 젖을 먹던 내 친구 엄마도 그 전술을 써보기로 했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아래 위 이들이 이미 몇 개 나 있던 그 아이는 엄마가 애기동풀 즙을 바른 젖에 입을 댔다가, 쓴맛에 놀라 그랬던지 몇 개 나 있던 이를 공격적으로 사용했다. 엄마 젖을 야무지게 물었던 것이다. 어린아이 이로 물렸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엄마는 아팠다. 하도 아파 젖에 애기똥풀 즙을 쓰는 전략을 즉각 포기했다.
 
키가 제키로 한 길이 되게 클 때까지 아우가 없었던 내 친구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엄마 젖을 먹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학교에서 친구들이 하도 놀려대는 바람에 더 이상 엄마 젖을 먹지 않게 됐다. 엄마 젖을 남달리 오래 먹어 그랬는지 몰라도 그 내 친구는 매우 건강했다.
 
엊그제 초등학교 졸업한 지 58년만에 만났을 때도 그는 여전히 장골이었다. “나도 엄마 젖을 더 오래 먹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도 믿거나 말거나이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내 이야기가 참인지 아닌지 꼬치꼬치 따질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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