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국제곡물회사’ 설립 배경과 계획

곳간지기1 2010. 2. 1. 17:32

‘국제곡물회사’ 설립 배경과 계획

 해외농장개발 → 곡물유통업 진출로

1980년 전국을 휩쓴 냉해로 쌀 수확량이 급감하자 정부는 미국에 쌀 수출을 요청했다. 그러자 대형 곡물메이저인 코넬은 미국 쌀경작자협회(RGA)와 손잡고 시세보다 두배 이상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당시 국제곡물시장에서 전체 중립종 쌀 교역량은 230만 톤으로 우리가 필요한 224만 톤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코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구촌의 무역장벽이 속속 무너지고 있지만 여전히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시장이 있다. 바로 ‘곡물시장’이다. 전 세계 곡물 교역량 중 카길 등 소수의 곡물메이저가 취급하는 물량은 80~90%에 달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곡물 수입국들의 식량안보가 곡물메이저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초식량의 안정적 확보 차원에서 국제곡물유통시장에 뛰어들 방침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추진 배경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6%에 불과하다. 수요량의 74%를 해외에 의존하는 셈이다. 특히 자급률이 100% 안팎인 쌀을 빼면 밀(0.4%), 옥수수 (0.9%), 콩(7.1%)은 사실상 자급기반을 잃었다. 여기에 경지면적은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등 곡물의 수입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지만 곡물을 둘러싼 국제 환경은 불안정하게 흐르고 있다. 기상이변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바이오에너지 등 새로운 수요 증가로 수급은 악화되고, 이를 틈탄 투기자본은 곡물가격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이로 인해 식품산업 등 전후방 관련 산업의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국제곡물시장은 몇몇 곡물메이저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곡물은 △옥수수 900만 톤 △밀 300만 톤 △콩 100만 톤 등 연간 1,300만 톤으로, 대부분 곡물메이저로 구성된 독과점시장에서 구입하고 있다. 국제가격 대비 국내 도입가격이 높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이유다.

그동안 해외농장 개발에 전력을 쏟던 정부가 국제곡물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일본의 젠노(全農·전농)가 자회사인 ‘젠노 그레인’이란 곡물회사를 통해 유통시장에 뛰어든 것을 참고 삼아 aT(농수산물유통공사)를 구심점으로 곡물유통업에 진출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추진 계획
소수의 곡물메이저가 전 세계 곡물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원동력은 ‘엘리베이터’란 곡물 보관창고와 항만시설 등의 유통망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가 해외농장에서 아무리 값싼 곡물을 생산하더라도 엘리베이터를 빌릴 수 없으면 곡물을 못 가져온다.

실제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1981년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이 미국 워싱턴주에 3,300㏊ 넓이의 옥수수농장 개발에 나서 수확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이 옥수수를 해외로 실어 나를 엘리베이터를 구하지 못했다. 유통시설을 곡물메이저들이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기업은 농장경영에서 손을 뗐다. 반면에 1960년대부터 해외농장 개발에 나섰던 일본은 유통망 확보의 중요성을 인식, 현재는 미국에서만 수십개의 엘리베이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단 우리 정부는 ‘농수산물유통공사법’을 개정해 aT의 해외곡물자원 확보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aT가 곡물유통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곡물회사 설립, 독자적 곡물유통망 확보로 해외식량의 안정적인 조달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aT 역시 2월 중으로 곡물회사 설립추진단 성격의 해외자원개발처를 20여명 규모로 꾸릴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자원개발처는 우선 선물시장에 참여해 국제곡물시장에 대한 이해력과 정보력을 높인 뒤 유통망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곡물 주산지에 해외지사를 설립하고 타당성 조사를 거쳐 해외지사를 수출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또 지분 참여를 통한 수출 엘리베이터를 확보하고, 나아가 현지 중대형 곡물유통업체 인수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곡물 매입-항구 운송-수출 및 수입-국내 유통’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겠다는 게 aT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aT·한국농어촌공사·농촌진흥청 등 여러 기관이 나눠 수행하는 해외농업 개발 관련 업무를 통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내외부에서 나오고 있다”면서도 “곡물회사의 설립 또는 인수에 대해 정부 입장이 정해진 것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최준호·김상영 기자  [농민신문] 2010. 2. 1(월).

* 기사 원문보기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170863&subMenu=readcnt

 

[관련기사] 농수산물유통공사 ‘국제곡물회사’ 설립 추진
 
안정적인 곡물 도입체계 구축 일환… “국내 생산기반 확충 병행을”

공기업인 aT(농수산물유통공사)가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카길·벙기·미쓰이와 같은 ‘국제곡물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aT가 1월28일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보고한 ‘2010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따르면 이달 중 aT 내에 ‘국제곡물사업추진단’이 구성된다.

세계 5위권의 곡물 수입국임에도 안정적인 도입체계가 미흡한 점 등을 감안, 대규모 국제곡물회사(곡물메이저)의 영향이 적은 지역과 품목을 중심으로 해외 농업자원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2009년 8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밀가루 공급·유통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데다, 같은 해 11월 농림수산식품부가 aT 안에 국제곡물회사 설립 준비단을 구성하는 내용을 상부에 보고한 것 등이 곡물회사 설립 추진 배경으로 파악되고 있다.

aT가 추진하는 국제곡물회사는 ▲현지 농가에서 해당 곡물을 매집하거나 계약재배를 하는 생산기능 ▲수상 운송 중심의 대규모 유통시설을 확보해 전후방 산업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유통기능 ▲국내 반입·수출·선물시장 참여·가공 등 판매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회사 운영은 현지 수출회사 설립, 지분 참여를 통한 수출 유통망 확보, 현지 중대형 곡물유통업체 인수 추진 등 주산지 및 항구 유통망확보, 경영활성화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aT는 미국 카길이나 일본 젠노 그레인 등 국제 곡물메이저와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곡물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허훈무 aT 기획실장은 “국제 곡물가격이 투기자본이나 투기세력에 의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곡물 공급망을 확보하고 식량자주율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국제곡물회사 설립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학계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국제곡물회사를 만들어 기상이변에 따른 곡물 수급 및 가격불안 등에 대비하는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매우 바람직하다”며 “다만 국영무역을 담당하는 aT가 민간기업의 영역인 곡물유통업에 진출하는 게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고 진단했다.

농업계의 한 관계자는 “식량안보는 곡물의 안정적 도입과 국내 생산기반 확충이 함께 추진돼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국제곡물회사 설립으로 인해 수입은 늘어나고 식량자급률은 떨어지는 현상이 빚어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김상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