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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한우고기를 먹는 일은 고사하고 한우를 구경조차 할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발표로 소값이 급락하더니, 최근에는 미 쇠고기 수입협상 결과로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번지고 있다. 이에 따라 쇠고기 소비 전체가 위축되면서 한우의 사육기반이 무너져버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가 당선되고,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확고히 장악하게 되는 경우에는 자동차와 쌀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때문에 쌀도 쇠고기처럼 휘둘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비록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근원적인 문제부터 시작하는 일본의 화우(和牛)와 쌀에 관한 정책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그들은 자국 소의 전수조사에서 얻은 자료를 이용해 2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관철시켰다. 쌀에 관해서는 문화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쌀이 단순히 공복을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닐 뿐 아니라, 경제적 득실이나 정치적 문제로 봐서는 안된다는 상징적 중요성을 국내외적으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쌀을 통해 표현되는 일본인의 세계관과 자기인식이다. ‘자기’로서의 쌀, ‘우리 국토’로서의 논 등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은 일본인들에게 쌀과 논이 일본의 역사·문화·전통과 절대 분리될 수 없다는 민족 정체성을 이해시켰다. 이는 오늘날 외국의 쌀이 일본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쌀은 단순히 사고파는 하나의 상품이기 이전에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정기를 길러준 생명의 원천이다. 쌀은 우리들의 꿈이자 소원이었으며, 부(富)의 척도이자 생명의 젖줄이다. 쌀은 또한 우리에게 자연이고 문화다. 수천년의 역사 속에 논은 홍수를 방지하고 지력을 유지시켜 우리의 삶을 지켜왔다. 김치·고추장·된장 등과 함께 밥상을 이루는 쌀은 고유가와 고곡물가 시대에 우리 식생활의 안전을 담보하는 안전판이고, 쌀농사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즐겼던 풍물소리와 장단은 우리 전통문화의 근원이며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최근 소득향상에 따른 식생활과 생활양식의 세계화로 육류와 과일 소비가 늘어나는 대신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내 쌀 가격은 국제 가격의 4배에 달하지만 고령화에 의한 가족농의 은퇴 탈농으로 벼농사를 기피하고 있다. 앞으로 무역자유화 혹은 FTA 등으로 값싼 외국 쌀이 수입되고 국내 쌀 가격이 더 하락할 경우 과연 우리나라에서 쌀 생산이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최근 우리 쌀 농업이 처한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한국쌀문화재단(가칭)의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쌀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기고, 쌀밥 중심 식문화의 건강성을 새로이 인식하며,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발전 및 쌀 중심 문화유산의 보전과 관리, 국가간 교류협력을 강화해나가려고 한단다. 더 늦기 전에 나서는 사람들이 고맙고 아름답다. 돌아가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좋은 시기다.
jsseo@chonnam.ac.kr
[농민신문/ 최종편집 : 2008/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