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을, 하나님의 주파수와 맞추라"
어느 깊은 산속에서..
나무꾼이 나무를 하던 중, 호랑이를 만났다.
그러자 나무꾼은, 황급히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피햇다.
그러자 호랑이는, 나무를 흔들어.. 나무꾼을 떨어뜨렸다.
나무꾼은 나무에서 떨어져, 원치 않게 호랑이 잔등에 올라타게 되었다.
그러자 호랑이는, 나무꾼을 잡아먹기 위해 마구 흔들다가..
나무꾼이, 호랑이 잔등이를 꼭 잡고 놓지 않자, 달리기 시작했다.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호랑이 잔등이를 타고 달려가는 호랑이와, 나무꾼의 모습을 지켜보던..
농사꾼이, 푸념 섞인 한마디를 한다.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서 호랑이 잔등이나 타고 다니고
나같은 놈은 팔자가 사나워 이렇게 뼈빠지게 농사나 짓고~ "하면 한숨을 내 뱉는다.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나무꾼과 농사꾼 중에 누가 더 행복한가?
우리는 얼마나..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가치와 기준으로, 스스로를 들볶으며..
'불행하다' 생각하는지, 모른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주의 제자 야고보가 헤롯왕에 의해, 참수로 순교를 당한다.
그러나 그 감옥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무사히 석방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누구는 처참하게 죽게 내버려 두시고, 누구는 살려 주시는가?
'하나님도, 사람을 차별하시는가?'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적인 기준과 가치를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목사님은, 목사 안수 받던 날..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떤 목사님은, 90평생을 사시면서.. 마음껏 주의 복음을 증거하다 소천하셨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로 평생을 헌신하시는데, 평생을 고난이 끝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럭저럭 믿고 사는데.. 평생을 만사형통한다.
의인의 고난, 악인의 형통을,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런 우리의 사고(생각)의 뿌리에는, 인간적인 가치기준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사단에게 오염된, '흑백논리'이다.
오래 살면 복이고, 일찍 죽으면 저주이고..
건강하면 복이고, 병들면 형벌이고..
부자로 살면 축복이고, 가난하면 믿음이 시원치 않은 것이고..
형통하면, 신령하기 때문이고, 길이 막히면 기도가 부족해서이고...등
우리의 기준과 가치는, 이 정도 수준에서 항상 머문다.
이 논리를 따라 행불행, 혹은 믿음의 '큼과 없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것은 '위대한 착각'에 불과하다.
영적인 기준과 가치로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일수 있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우리의 작은 머리로, 광대하신 하나님의 일들을..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도..
세속화된 가치로 흠뻑 젖어있는 우리에게, 사사건건 설명하지 않으신다.
이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가치와 기준을..
영적인 '가치와 기준'으로 바꾸려, 힘써야 한다.
그것은, 치열한 전쟁이다.
너무 오랫동안, 유전되고 학습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큰 교회를 보면, '와~ 대단하다' 라며..
놀라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다 찌그러져 가는, 움막같은 개척교회를 보면, 반응이 시큰둥하다.
또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시는 목회자들을 보면, 와~ 하고 놀란다.
그러나..
산골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달구지 끌고 목회하는 분들을 만나면..
웬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도, 큰 교회를 보면 놀라실까?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시며, 수만명을 목회하시는 분들을 보면 흐뭇해 하실까?
물론 그렇다고, 작은 교회, 무명의 목회자를 보셔야..
칭찬하시고, '기뻐하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치기준이 '세속화'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뼛속까지 세속화되고 오염된 가치관이, 여전히 꿈틀거리는 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은혜는, 언제나 고갈될 것이다.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호랑이 잔등이를 타고 달려가는 나무꾼이, 행복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아니다.
영적인 가치관으로 볼때, 땀흘리며 농삿일 하는 농부가 훨씬 더 행복한 것이다.
호랑이 잔등이 타고 가는 나뭇꾼은 편해 보여도, 그의 생명은 경각에 달려 있다.
그러나, 힘들긴 해도.. 농삿꾼의 생명은 안전하다.
누가 더, 행복한가?
누가 더, 감사한 인생인가?
우리의 문제와 위기는,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뼛속까지 사무쳐 있는, 세속화되고 오염된 가치관의 혼란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일찍 참수로 순교한 야고보나..
이 땅에 남아 미션을 감당한 베드로나, 동일하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인생이며..
사랑하는, '주의 종'일뿐이다.
다만, 인생의 장단과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주권에 속할 뿐이다.
그러니, 어찌 감사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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