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현장에 있었던 자로서 새삼 감회가 깊네요.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던 1980년5월 들불처럼 번졌던 민주화시위가 종결되고,
상황을 지켜보던 참에, 전국의 주요 대학을 중무장한 군인들이 장악했었지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묘한 조직이 정권을 잡고 계엄령을 선포했지요.
아침에 책장을 뒤지다 '광주민중항쟁' 책을 꺼냈더니 빛바랜 쪽지가 나오네요.
1980년 6월 2일 신문에 게재되었던 글인데 제가 또박또박 필사했던 것이네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5월 18일(일) 금남로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40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 이 시를 함께 나눕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엎드린채 누워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나
하나님의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서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서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
* 중략 (사진 참조)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에 게재되었던 김준태 시인의 시]
1980년 6월 2일(월) 언론통제가 심했던 시절 김준태 시인이 목숨걸고 쓴 시
발포명령자 등 진실규명이 부진한데 1990년 5월에 발간되었던 기록물
[광주민중항쟁] 제3부 광주항쟁, 제4부 항쟁, 그 이후
군부독재 18년 이후 혼란의 시대 군부의 패권투쟁
제2부 안개정국, 권력을 향한 신군부의 집념
제3부 광주항쟁,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5월 14~16일 대규모 집회, 5월 17일(토)에는 전국적으로 시위를 멈추고 평온했음.
5월 17일(토) 밤 비상계엄 전국확대로 전남대 등 주요 대학을 공수부대가 장악
5월 18일(일) 새벽 교내에 남아있던 학생들 무조건 체포 구금
18일 피의 일요일, 본인도 교회를 마치고 금남로 진출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보행이 자유롭지 못함)
5월 18일 광주 시내는 점점 늘어나는 시위대와 곤봉을 휘두르는 공수부대의 격돌
5월 18일(일) 오후 학생과 시민 등 시위대와 대검/곤봉으로 무장한 공수부대원 곳곳에서 충돌
본인도 곤봉세례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다 걸음걸이가 불편해 버스타고 곧바로 집으로 귀가
5월 19-20일 시위대와 공수부대의 공방이 벌어지다 5월 21일(수) 드디어 도청앞 집단발포
5월 22일(목) 침묵하던 언론이 "광주사태 닷새째"라며 무장간첩의 소행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
광주는 외부로부터 고립된 상태였으나 도난이나 폭력 등 아무런 사건사고도 없이 완전자치도시
격세지감, "아아 광주여!" 40년만에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도청앞 광장에서 5.18 기념식 거행
심증도 있고 물증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왜곡되고 있는 진실이 하루 속히 규명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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