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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곡물유통업 진출한 일본을 배우자 (김한호)

곳간지기1 2008. 5. 30. 08:26

 

국제 곡물유통업 진출한 일본을 배우자

 

[동아일보] 2008년 5월 9일,  
GSnJ 연구위원 김한호(서울대 교수)

 

 

  국제 곡물가격 급등과 주요 곡물 수출국들의 수출 규제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해외 식량기지 건설 방안을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곡물 자급도가 낮고 부존자원이 한정된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는 하지만 생각해볼 점 또한 많다.

 

정부가 투자 주체로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아 민간이 주체가 되고 정부는 간접 지원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민간 자본의 경우 성격상 진출 단계는 물론 외국에서 생산한 것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도 상업적 원리가 지배할 것이다. 그게 바로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통상 환경이다.

 

더구나 위기가 닥치면 요즘 일부 국가처럼 투자 대상국이 얼마든지 수출을 규제할 수도 있다. 외국 자본이 생산한 물량이라고 해 예외적으로 국외 반출을 허용할 가능성도 낮다.

 

이런 불확실성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생산→물량 확보→국내 반입이라는 모든 과정에 투자자의 통제력이 미친다면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일찍이 해외 식량기지 건설을 시작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일본의 예를 살펴보자.

 

일본은 생산기지 투자에서 국제 곡물 유통단계 진출로 전환해 왔다. 여기에 사료곡물의 최대 수요자 단체인 일본 전농(우리나라의 농협중앙회)이 중요한 주체가 됐다. 일본 전체 사료곡물 수입의 30%는 전농이, 나머지 70%는 미쓰비시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 상사가 담당한다. 주목할 점은 전농은 1970년대 말, 미쓰비시는 1990년대 초부터 철저하게 통상 환경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미국에 진출해 산지 매집과 수출항까지 보내는 단계, 수출항에서 선적과 수출을 담당하는 단계 등 두 단계의 국제 유통 부문에 진출해 왔다는 사실이다.

 

현재 미국 옥수수 주산지 인근 미시시피 강변에는 170여 개의 엘리베이터(곡물창고)가 있다. 이 곡물창고들은 옥수수를 매집해 뉴올리언스 수출항까지 보내는 산지 매집회사들이 소유하고 있다. 그중 세계적 곡물 메이저인 카길이 30여 개를, 일본 전농 소유의 현지 매집회사가 약 30개를 보유해 양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산지 매집회사가 확보한 곡물은 뉴올리언스 항에 있는 또 다른 전농계열 자매 수출회사에 판매 수송되고 수출회사는 이를 일본 국내 전농에 수출 판매하는 방식을 취해 선적함으로써 국내 반입 절차가 마무리된다.

 

미쓰비시 역시 미국 내에서 지역만 달리할 뿐 산지 매집에서 국내 반입까지 두 단계 유통부문에 진출한 것은 전농과 같다. 미국과 남미 등에 진출한 다른 일부 상사도 역시 생산 기반보다는 국제 유통 부문에 진출해 있다.

 

일본 사례가 주는 교훈을 보면 해외 산지 매집부터 국내 반입에 이르는 모든 유통 영역에 대한 통제력의 확보, 국제 통상 환경이 안정적인 국가 위주로의 진출, 실수요자가 해외 진출의 주체가 된 점 등이다. 그리고 이들 현지 회사는 장기간의 국제 곡물가격 침체기 때 경영위기를 겪었지만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끝으로 이런 형태의 해외 식량 확보 진출이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 및 진출 환경 조성의 결과였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험은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