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조직 개편안 중 특히 농촌진흥청 폐지, 출연기관화에 대한 반대여론이 비등하는 가운데 농업인 이외에도 각계각층의 많은 인사들이 인수위에 하소연해도 집권세력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조직개편에 대한 토론 자체를 외면하는 주요 일간지를 제외한 정론지와 인터넷을 통해 활발한 의견개진을 하고 있다. 많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희망제작소 박원순 대표가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국화꽃 피우는 데도 천둥이 울거늘" 이라는 칼럼에서 새정부 출범의 급박성을 담보로 졸속으로 밀어부치는 정부개편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니, 바른 의견은 귀담아 들을줄 알아야 하는데...
국화꽃 피우는데도 천둥이 울거늘
정부조직 개편에 관한 논의가 막바지에 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마련한 개편안에 대해 언론과 여론의 논란이 간단찮다. 그런데 이제 새정부 출범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여야의 막판 협상으로 판가름이 나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로 묻고 싶다. 두 정당의 대표 몇 사람이 모여 이 거대한 문제를 밀실거래 하듯이 담판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가? 196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정부개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정부 개편인데, 제대로 한번 심도 있게 논의도 못한 상태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인가?
사실 개편안에 나와 있는 많은 사안들이 복잡하고도 다양한 상황들을 내포하고 있다. 교육부 개편, 통일부와 과기부, 해양수산부, 여성부, 농촌진흥청과 국립박물관의 폐지·흡수, 과거사위원회들의 통폐합, 인권위와 방송위의 위상 재편 등의 문제들이 하나같이 중대한 일들 아닌가. 너무나 많은 이해 관계인들이 있고 이것 때문에 정부 정책의 근간이 바뀌고, 그 변화로 말미암아 사회적 영향이 크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미래가 좌우된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고 새 정부가 구성되면 많은 정책이 바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집권세력과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선거공약에 따라 정부 부처의 개편과 새로운 정책의 채택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운 것처럼 작은 정부를 향한 노력은 시대적 필연이기도 하다. 너무 비대해진 일부 부처를 폐지·축소하고 기능을 조정하거나 공직자들을 감축하겠다는 것은 국민 지지를 받을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정책의 변화나 기구 개편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정부 부처의 개편은 이전에 그것이 생겨날 때도 역시 많은 논의와 논쟁을 거쳤던 것이다. 해양수산부와 여성부, 과기부 등이 모두 나름대로 그 당시 필요하다는 사회적 여론과 시대적 당위성, 상당한 기간을 통한 논쟁과 여야 갈등과 조정을 거쳤던 것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소쩍새도 울고”, “천둥도 먹구름 속에서 우는” 것인데 법률이 하나 탄생하고 정부 조직이 생겨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인수위원회에서 한 달 작업해서 정부의 큰 뼈대를 다 뜯어고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전문가들을 모아서 논의를 거쳤다고 해도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 겨우 한 달 아닌가. 더구나 인수위원이나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극소수다. 그들 외에도 다양한 식견과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도 많다. 더구나 이해 관계자들이나 국민들조차 이번 개편에 자신의 의견을 낼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그 개편안들이 가진 오류도 적잖게 발견되고 있다.
문제는 지금 급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 정부 출범이라는 급박성을 담보로 해서 밀실 담판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일반 법률도 제안이 되면 공청회를 거치고 이해관계인들의 의견을 묻고 다양한 사회적 여론 수렴과 논의를 거친 뒤에야 국회의 의결로 가는 것이 통상적인 입법절차인데, 이렇게 중대한 정부조직 개편안이 많은 것들이 생략된 채로 끝난다면 실수할 가능성도 많고 정당성을 갖추기도 어렵다. 오히려 일부 불가피한 것만 개편하고 새 정부 출범 후 운영을 해 보면서 여전히 개혁해야 할 내용들을 가지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처리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얻기에 훨씬 유리하지 않겠는가.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 * 출처 : 한겨례신문 2008년 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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