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연휴를 맞아 모처럼 여유있게 고향을 다녀왔다.
가는 길 오는 길, 만만치는 않았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여유로운 황금들판과 농촌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아도는 쌀 문제를 생각하면 풍작이 그리 달갑지도 않다.
마침 '농민과 공정한 사회'라는 칼럼이 가슴에 와닿아 가져왔다.
중앙일보 9월 20일자(월), 마침 귀성길에 올랐던 날의 칼럼이다.
필자와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도 있지만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농업과 농민, 농촌문제와 '공정한 사회'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농민과 공정한 사회" [영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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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낟알이 탐스럽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초등학생 때 가을걷이가 끝나면 매년 ‘논바닥 소풍’을 갔다. 전교생이 쭉 늘어서서 논을 훑었다. 여기저기 떨어진 벼 이삭은 개구쟁이들의 포로가 됐다. 금세 몇 말 분량의 이삭이 모였다. 이삭줍기 1등 반은 상을 받았다. 점심시간에 선생님은 도시락 검사를 했다. 쌀과 보리를 7대 3 비율로 섞었는지 깐깐하게 검사했다. 어머니들은 절미(節米)운동을 했다. 밥을 짓기 전에 숟가락으로 쌀을 덜었다. 식구 한 명당 한 숟가락씩 덜 먹자는 운동이었다. 쌀이 부족하고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흰 쌀밥은 최고의 성찬(盛饌)이었다.
쌀은 요즘 천덕꾸러기 신세다. 창고 부킹이 끝나 쌓아둘 곳도 없다. 쌀값은 급락세다. 20만원 가까이 하던 80㎏ 한 가마가 12만원대다. 10년래 가장 싸다. 농약·비료·농기계 값과 인건비는 거꾸로다. 그사이 서너 배 올랐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쌀농사를 짓는 것은 바보다. 그래도 농민들은 바보짓을 멈추지 않는다. 태풍이 할퀴고 간 논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한 톨이라도 더 거두려고 지극정성을 쏟는다. 농민은 정직하다.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일하면서도 누굴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 농민은 그렇다.
쌀은 넘쳐 난리지만 다른 곡물은 모자라 걱정이다. 옥수수 자급률은 1%, 밀은 0.5%, 콩은 8.4%에 불과하다(2009년 말). 쌀을 포함한 전체 식량자급도는 평균 26%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허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논을 절대농지로 묶어놓고 쌀농사만 강요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다. 다양한 대체작물을 심도록 유도하고, 교육하고, 지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쌀 재배면적을 줄이고 부족한 곡물 생산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농민끼리만 사고팔도록 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도 손질할 때가 됐다. 식량안보를 명분으로 논 거래를 꽁꽁 묶어놓는 것은 공정치 않다. 농민에게 희생만 강요하지 말고 재산 가치를 높여줘야 한다. 그게 ‘공정한 사회’다. 모내기 한 번 해본 적 없는 ‘넥타이’ 공무원이 농정(農政)을 하니 농민 심정을 알겠는가.
전국의 농촌 인구는 311만 7000명이다. 이 가운데 60세 이상이 139만 3000명(45%)이다. 20세 이하 40만 명을 빼면 근력 있는 이들은 120만 명(20~59세)에 불과하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다. 농촌은 계속 늙어간다. 10년, 20년 후면 어떻게 될까. 지금도 ‘장례업만 대박난다’는 슬픈 얘기가 있다. 그런 농촌을 찾아 우리는 또 대이동을 한다. 고향은 늘 우리를 반긴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과 형·친구들이 모두 가족이다. 귀경길엔 고향의 정이 듬뿍 담긴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이들이 카메라에 잡힐 것이다. 고향의 마음은 영원한데 도시인은 그 고마움을 금새 잊는다. 올 한가위, 늙은 농촌의 애환을 생각하며 농민 사랑에 빠져 보는 게 어떠신지….
양영유 기자 [yangyy@joongang.co.kr]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2010. 9. 20(월)
* 기사 바로가기 http://news.joins.com/article/471/4467471.html?ctg=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