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의 신패러다임과 국가의 지속」 강원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오상집 교수 「식량안보」(food security)라는 용어가 세계 경제에 등장하게 된지도 어느덧 반세기가 지나고 있다. 물론 그 동안 식량안보의 의미도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지는 식량안보의 의미는 초기 식량안보라는 용어가 등장할 시점에서의 의미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위협요인이 단순 경제 성장으로는 전혀 해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들 위협 요인을 해소하는데 가장 바람직한 대응책은 하루빨리 한 지역이나 국가의 R&D 역량을 상기 위협요인을 해소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특히 이들 관련 기술은 국가간 거래나 공여가 가능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나 지역이 그 여건과 환경에 맞게 독자적으로 수립하여야 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리더쉽의 방향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IPET)] i-Webzine Vol. 21, 2010. 6. 3(목)
2010년 현재에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용어 사전은 식량안보를 ‘인구증가, 천재적 재난, 전쟁 등을 고려하여 항상 얼마간의 식량을 확보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개최되고 있는 대부분의 식량안보 관련 학술 심포지엄에서 조차 식량안보를 대부분 식량자급률이라는 물량적 관점에서만 조명하는데 머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식량안보를 가장 우선시해야 할 우리나라가 오히려 이 명제에 둔감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구태에만 머물러있는 식량안보관은 과연 현재의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견지해도 될만한 패러다임일까? 왜 우리보다 경제성장 면에서 앞서 가고, 물량적 식량자급률이 높은 나라에서 식량안보의 패러다임을 끊임없이 혁신시키고, 이를 국가의 최대현안으로 상정하고 있을까? 따라서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재 식량안보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이렇게 변화된 식량안보관이 한 국가의 경쟁력과 그 사회의 지속에 미치는 파장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식량안보의 의미는 지난 50여 년간 많은 변천을 거듭하여 왔다. 식량정책분야에서 저명한 맥스웰 교수는 식량안보란 용어가 1975년~1991년 사이에만 무려 32개의 서로 다른 의미로 정의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이렇듯 다양한 정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바로 식량안보와 경제성장의 역학관계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고 부연하였다.
그렇다면 최근 식량안보의 의미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까? 식량안보라는 용어가 최초로 등장한 2차 대전 직후, 식량안보의 의미는 단순히 식량의 양적 공급 가능 여부에 국한되었었다. 즉, 우리나라에서도 아직도 정의되고 보편화되어 있는 ‘최소한의 식량자급률’로 함의되는 수준이었다. 그 이후 1970년대 들어 식량안보는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의 안보라는 의미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서는 구성원 전체에 취약 층이 없는 사회적 안보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식량안보의 의미 변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식량의 지속적 공급을 위한 생태 환경 영역에서의 안보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변모된 식량안보의 패러다임과 그 영향력은 이제 우리나라의 정책 우선도 결정과 R&D 역량 집중 분야 선정 메커니즘에 큰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를 간단히 예를 들어 생각해보기로 하자. 만약 식량안보의 의미를 식량의 물량적 안보와 이를 조달할 수 있는 경제력의 안보 수준으로만 인식할 경우 그 식량안보는 경제성장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이에 따라 정책과 국가 R&D의 우선은 경제성장 역량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리고 한정된 재화와 역량 하에서는 가장 경쟁력이 높고 효율적인 분야에 투입해야 한다는 원론에 따라 그 시점에서 경제 성장능력이 상대적으로 높거나, 나아가 경쟁력이 높은 부문에 국가적 역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보다 합리적으로 선택하기 위하여 리더쉽은 경쟁력의 확보 유무, 세계 최초, 블루오션과 같은 평가기준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제 변화된 세계의 수준에 맞추어 식량안보의 패러다임과 파급력을 사회적 안보와 생태적 안보로 확대하여 보자. 이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의 식량안보는 국가나 사회의 경제적 성장이나 재력만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즉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식량안보란 그 국가나 사회의 식량 관련 환경생태의 지속가능 능력이 안전하게 담보된 수준을 의미한다. 이를 보다 단순화하면 한 국가의 ‘식량수급 관련 생태 환경의 지속가능 역량’이 곧 그 국가의 식량안보의 바로미터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이제 우리나라도 변화된 패러다임으로 식량안보 수준을 재평가하고, 이에 따라 국가 정책과 R&D의 우선과 집중을 판단해야 할 시점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적 의미의 식량안보는 국가적 정책과 R&D가 집중된다고 하여도 쉽게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비하여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요인도 상당히 많아졌고, 그 피폭 능력은 더욱 막강해 졌다. 그 중 주요 위협요인을 열거해 보면, 생산과정에서의 석유에너지 과다 의존, 지속적인 생물 다양성의 파괴, 생태 환경의 지속력 약화, 식량의 상품화 심화, 식량 생산시스템의 지적 재산권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더군다나 이제 전 세계의 리더쉽이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는 ‘지속가능’의 의미도 2005년 UN 정상회의에서 공감한 바와 같이 경제지속, 사회지속, 환경지속이란 세 집합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이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들 중 환경의 지속정도가 경제지속과 사회지속을 포함하고 지배하는 대집합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환경생태 지속의 수준이 대응기술 역량이라는 함수에 따라 주도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의미하는 대응기술 역량이 바로 해당 분야 국가 R&D 역량의 결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식량안보의 신패러다임도 생태환경 영역에서의 안보를 의미하고, 국가와 사회의 지속도 이제 환경 지속을 최우위 영역으로 인식하는 시점에 우리나라도 서 있다. 국가와 사회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리더쉽의 본연이라 할 때 이를 위하여 국가의 정책과 R&D가 집중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지속을 위하여 무엇이 가장 우선적인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미 신패러다임이 제시하는 식량안보가 국가 지속의 확실한 가늠자가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리더쉽이 이를 달성하는데 그 대응능력을 가장 극대화 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농업분야 R&D임을 절실히 깨달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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