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구비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오백년 역사에 비각만 남아있네"
비운의 어린 임금 단종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바로 청령포다.
송림이 울창한 육지 속의 작은 섬에 배타고 건너 역사공부를 다시 하게 된다.
영월 청령포는 3면이 물길로 둘러싸이고 뒤로는 육육봉이라고 하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속지 속의 섬같은 곳이다.
1457년 어린 단종임금이 폐위되어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두달간 머물렀던 곳이다.
단종의 유배처(어소)를 중심으로 울창한 수림이 잘 보존되어 있어 찾는 이가 많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있다
다음 해인 1457년 성상문, 박팽년 등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움직임이 발각되어,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영월땅에 유배되었다.
그해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겨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단종이 유배와서 두달간 머물렀던 단종어소 마당에 비각이 세워져 있다.
영월 동강,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육지 속의 작은 섬' 청령포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
왕관을 벗어놓고 영월땅이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아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년세월, 아 애달픈 어린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동강물 맑은 물에 비춰주는 달을 보고 님 가신 뒤를 따라 꽃과 같이 사라진
아름다운 궁녀들의 그 절개가 장하고나, 아 낙화암 절벽에는 진달래 피고 지네.
5분도 안되는 순간에 배로 물길을 건너 단종어소로 가는 길
국가지정 명승 제50호 청령포 안내도
단종이 머물던 본채(단종어소)와 행랑채를 당시 모습으로 복원했다.
행랑채에는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흔적을 재현했다.
슬픈 역사의 현장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단종어소 앞마당 담벼락 위로 소나무가 누워있다.
12세에서 15세까지 왕으로 재위했던 단종이 17세에 유배와 두달간 지내던 사랑방
어소에서 단종을 알현하던 선비의 모습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솔은 옛동산에 우거졌구나"
단묘재본부시유비(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 :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영조 39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해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
청령포에는 울창한 송림(천년의 숲)이 잘 보존되어 있다.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 수령 600년 추정)
단종의 유배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의 觀音松
한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막돌을 주워 쌓았다는 망향탑에 올라
육육봉 절벽과 동강이 내려다 보이며, 망향탑은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유유히 흐르는 동강은 슬픈 역사를 알고 있다.
후일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의 이름을 따서 '노산대'
노산대에 올라 육육봉과 동강을 살펴보며 역사를 더듬어 본다.
영조 2년(1726)에 세운 '청령포 금표비'(출입금지 구역 표지)가 옛일을 전하고 있다.
왕위찬탈과 유배라는 슬픈 역사 '단종애사'의 현장에서 역사의 교훈을 생각한다.
단종은 12세에 왕이 되어 15세에 폐위, 17세에 유배지에서 승하한 비운의 왕이다.
역사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명승이니 한번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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