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믿음과 신념의 차이

곳간지기1 2009. 5. 18. 14:44

 믿음과 신념의 차이..


세상살이를 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그 시간은.. 하나님에 대한 갈등과 모순이 끓어오를 때이다.

우리는.. 가난도 참고, 핍박이나 질병도 잘 감당하고, 연단도 시련도.. 잘 인내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갈등과 모순이 있을 때, 도무지 견디지 못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과의 갈등이란..

하나님의 약속은 있는데.. 현실은 너무도, 비참한 상황이 펼쳐질 때이다.

그러니까.. 이상과 현실의 갭이 클 때, 우리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무너진다.

분명히 기도하면.. 크고 비밀한 일들을 보여주신다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변한 약속이다.

그러나 기도할수록 상황은.. 더 뒤틀리고, 꼬일 때를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그래도 계속해서 기도를 해야하는가?라는 갈등을 하게 된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만사형통하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성경의 약속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거꾸로일 때가 많다.


믿음으로 살수록, 만사가 뒤죽박죽이고..

영혼이 잘될 때, 오히려 삶은.. 벼랑 끝으로 곤두박질칠 때가 많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같이 나오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단련받을수록 정금은 커녕, 진흙만도 못한 인생으로, 전락할 때가 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성경의 모순됨에, 허탈함을 경험하게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와 같은 갈등과 모순을 겪었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열국의 아비가 되고..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을 이루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아브라함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아내 사라는 임신은 커녕, 주름만 늘어갈 뿐이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이 너무 다름을 인하여, 아브라함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안절부절하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과, 사람의 생각으로..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대한 불신이며, 자기 생각이며.. 믿음이 아닌 신념이었다.

그 결과.. 이스마엘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물론 지금까지도.. 고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과 신념의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생긴 것이고, 신념은.. 내게서 만들어진 것이다.[내 생각의 산물]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할 때, 자기 생각으로 일[?]을 저지르지 말고..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

우리도 어쩌면.. 지금, 하나님의 더디심에 대하여,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대하여, 안절부절하며..

이스마엘을 낳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아니다.

우리는.. 이대로 일생을 마치더라도, 이삭을 기다려야 한다.

임종 직전에.. 그 일이 이루어진다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 우리의 갈등과 혼란을 보게 된다.

얼마나.. 하루 하루가, 갈등의 연속이었을까?

분명히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열방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 약속하셨다.

그 약속만 믿고.. 본토친척 아비 집을, 미련 없이 떠난 것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하나님의 약속과 너무도 거리가 있었다.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세월이 흘러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자..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았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이, 아니라 하신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언제,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신다는 말인가?


우리의 갈등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연단 받으며, 인내하며, 신뢰하며, 좁은 길로 걸어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앞에도 아니 계시고, 뒤에도 아니 계신다.

이런 때를.. 아브라함도 만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우리의 믿음이 신념이 아닌, 실재적인 믿음[영적인 믿음]이 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며, 거기까지 올라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도 힘들지만, 하나님도 고생이시다.

결국..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세가 되었다.

수많은 세월과, 시행착오와, 실패와 연단과 시련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영적인 믿음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아내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고, 아브라함의 나이도 호호백발이 된 때였다.

상식적이고,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모든 가능성이, 끊어진 때였다.

이제.. 아브라함의 몸에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은 0%였다.

그러나 인간의 결론이 하나님의 결론이 될수 없고,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끝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이 말은..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와 방불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 개입하셨다.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은, 더디지만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영적인 믿음의, 열매[결과]였다.


하나님의 속성은.. 거짓말은 못하심이고, 반드시 약속은 성취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우리가 못났어도, 믿음이 없어도, 허물이 있어도..

고치시고, 기다리시고, 새롭게 만들어서라도, 그 일을..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성취하신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잇다.


세월이 흘러.. 백살에 얻은 이삭이, 청년이 되었다.

그런데 홀연히.. 하나님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얼마나 갈등을 했을까?

이 아들을 바치면..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뭔가?

이 아들을 죽이면.. 복의 근원이 되리라 하신, 주님의 약속은 무슨 말씀인가?

주실때는 언제고, 왜 또 달라시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다.

백살에, 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어떻게든 이삭을 살려내시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절대 믿음, 절대 신뢰가.. 아브라함 속에 있었다.

그래서 말도 안되고, 이해도 안되는 하나님의 요구 앞에.. 절대 순종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신념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다.

신뢰는.. 순종을 못한다.

그러나 믿음은, 순종을 낳는다.

안절부절하고, 죽음을 방불한 현실 앞에서.. 두려워하며, 초조해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믿음이다.

그리고, 순종이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고,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신다.

당신을, 정금같이 나오게 하실 것이며..

소중하고 귀하게 쓰실 것이며..

남은 여생을.. 해같이 빛나게 하실 것이다.

그 약속의 성취는.. 우리의 믿음과 순종이 버무려질 때만이, 이루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불가능도 가능케 하시고, 없는 가운데도 잇게 하시며, 백살에도 아들을 낳게 하시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기다려야 한다.

인간적인 방법과 생각으로, 이스마엘을 낳으면 안된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아들은 이삭이다.

그 아들은.. 백살이 되어야, 얻을 수 있는 아들이다.

당신의 힘이 다 빠지고, 모든 인간적인 가능성이 사라지는 때가, 와야 한다.

아직도.. 의지할 것이 있고, 기댈 사람이 있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곳에는, 이삭이 태어나지 않는다.

그곳에는, 이스마엘 뿐이다.

더 이상.. 하나님으로 갈등하고, 하나님의 모순됨을 인해, 서글퍼하지 말고..

백살이 될 때를, 기다려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뒤에서..

이삭을 준비하고 계시며.. 당신을 위해 아름답고, 위대한 일들을.. 조금씩 준비하시며, 이루시고 계신다.

너무 느리고 더뎌..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뿐이다.


인간적인 끈이, 다 끊어져야 한다.

더 많이, 깨어져야 한다.

알량한 자존심이.. 더 많이 부셔져야 한다.

신념이 믿음으로.. 바꾸어 져야 한다.

기다림 마저도.. 기대마저도, 사라져야 한다.


인간의 열심과 신념은, 혼적이다.

혼에는 생명도 없고, 살리는 역사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믿음을 원하신다.

영적인 믿음만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신령한 축복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