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육체의 질병을 고침 받기 위한 처방전

곳간지기1 2009. 4. 20. 10:42

 

"육체의 질병을 고침 받기 위한 구체적인 처방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두 가지 질병 없이 사는 자가 있을까?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는, 이런저런 병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병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도 나타나고, 불신자들에게도 나타나는 공통분모이다.


병중에는..

남이 알도록 드러난 병도 있고, 남이 모르게 고통당하는 병도 있을 것이다.

급성으로 생긴 병도 있을 것이고,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병도 있을 것이다.

약물이나 의학으로 금방 나을 병도 있지만, 의학적으로 접근해도.. 고침받기 어려운 난치병도 있을 것이다.


누구든, 병에 걸리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과 행복은.. 건강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픈 자만이, 아픈 자의 고통을..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다.

아픈 것은.. 어쩌면 형벌이고, 저주일 수 잇을 정도로, 벗어나야 하고.. 치유 받아야 할 과제이다.


병을, 끌어안고 사는 것..

병을, 섬기고 사는 것..

병을, 친구 삼아 동행하는 것..

병에, 종이 되어 사는 것..

만성질환으로, 평생을 고통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우리는.. 질병을 치유받기 전에, 먼저..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잘못된 사고방식부터 고쳐야 한다.

병은.. 죄로 인해 발병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성경적 논리이다.

그리고 병은.. 마귀가 주는, 나쁜 것이다.

물론..

영적인 훈련과 성숙을 위해.. 허락된 병(사단의 가시 - 바울, 욥)도 있지만..

대부분의 질병의 근원은, 죄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병든 자를 치유하실 때, 죄 문제를 끄집어 내셨다.

야고보서에도 보면..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중에 있을 때.. 무조건 고쳐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죄를 살펴..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다.

주님이 병을 얼마나 싫어하셨으면..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는.. 치유의 사역을 이루셨을까?

성경에도 보면.. 여호와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고..

성경 전체를 보아도.. 치유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귀는.. 우리의 건강을 빼앗고, 나쁜 병을 주고, 그 병으로 인해, 삶을 힘들게 하지만..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에 하나는, 병고침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 봉다리를 끌어 안고.. 병을 섬기며, 사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자유함을 얻어야만 한다.

주님이 채찍에 맞아..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심은, 우리의 연약함과 질고를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기도와, 예수 이름의 권세를 활용하여, 병고침을 경험해야 한다.


꼭.. 신유은사를 받은 자만이,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는, 병고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도 부족하지만, 예수 이름으로 병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선포하고, 또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런데.. 마귀가 우리를 속인다.

네 병은, 연단을 위한 거야

네 병은, 오래 되어서 못 고쳐

하나님도.. 네 병은, 어쩔 수가 없어

누구도 봐라, 고침을 못 받았잖냐?

현대의학으로도 안되는데, 어찌 기도한다고 고치겠는가?

이렇게 마귀가 속일 때마다.. 우리는, 단호하게 사단을 대적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우리 속에 의식화된, 잘못된 생각들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할일은, 의지를 활용하여.. 낫고자 하는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마르다에게.. 돌을 옳겨 놓으라고, 요구하셨다.

그렇다.

돌을 옮겨 놓은 것은, 우리의 몫이다.

주님은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실 때, 아무나 다 고치신 것은 아니다.

고침 받기를 간절히 원해서, 주님 앞으로 나온 자들마다.. 고쳐 주셨다.

집안에, 있으면서..

낫기를 원하지도 않는데, 고치신 사례는 없다.

나아만 장군도.. 죽을 병에 걸렸었지만, 이스라엘로 와서.. 엘리사를 만나는 액션과, 수고(의지적 결단)를 했다.

그리고.. 요단강에 들어가는 적용을 통해, 하나님의 치유가 나타났다.


오늘날..

우리에게 병고침의 역사가 안일어나는.. 중요한 이유는, 생각과 마음으로는 낫기를 바라면서도..

실제 행동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냥 고쳐주시면 좋고, 안 고쳐주시면 병원가고, 약 먹고..

그래도 안나으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나?

이런 생각이.. 우리의 병을, 우리 몸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고침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결단(믿음의 표현+행동)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고(하나님의 주파수로)..

둘째는, 마귀가 주는 생각에 동의하지 말고, 대적하는 것이고..

세째는, 믿음으로 날마다, 선포하는 것이고..

네째는, 믿음으로 건강해지는 자신을, 마음의 캔버스에 그리는 것이고..

다섯째는, 내가 병고침 받기 위해.. 주님 앞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한손에.. 약 봉다리를 들고, 기도하면 안된다.

약도 주님이 주신 것이니, 믿음을 따라 먹어야 하지만.. 때로는, 약 봉다리를 내려놓고(버리고)..

온전히, 100% 치료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병이 많거나 오래된 병을 앓고 있으면, 병을 섬기게 되는데 그러면 안된다.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주님뿐이다.


어디가 좀 아파도..

주여, 믿습니다.

나는, 건강해 집니다.

날마다..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화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여, 어디가 아프면..

어이구 큰일났네, 어떤 약을 먹을까

죽을 병이나 나쁜 병은 아닌가?

어떤 병원으로 갈까 부터 생각하는 것은, 치유에 도움이 안된다.

그러면.. 마귀가, 친구하자 다가온다.


치유를 위해.. 중요한 한 가지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 이렇게 말씀하셨사오니, 나을 줄로 믿습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더러운 사단아 떠나가라.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마귀를 대적하고, 병을 대적하고, 믿음을 활용하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나타난다.

분명한 것은.. 끈기와 의지적 결단이다.

그리고..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몇번 기도해 보고, 안되네 하면 안된다.


아무 증상이 없어도

오히려 더 아파도.. '주여 믿습니다' 하면서,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라.

약속의 말씀을 외우며, 크게 선포하라.

그리고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라.


우리는.. 건강하게 살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치유에 역사에..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의 치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이다.

지금은..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은.. 신유대신, 병원을 주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나는 평신도인데, 내가 어떻게 병을 기도로 고치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시기 위해, 모든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의 준비가 부족하다.

우리의 믿음이, 너무 어리고 미숙하다.

믿음에.. 불순물이 많아, 오염되어 있다.


그래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묶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보다, 의사나 약사의 말을 더 신뢰하는, 우리의 믿음이 문제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지적 결단을 통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직접 고쳐 주시든지..

아니면, 의학을 통해.. 고치시든지 할 것 아닌가?

선택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제한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월권이다.


당신에게 지금.. 어떤 병이 있든지, 따지고 분석하지 말고, 주께로 달려 나오라.

달려 올 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나오라.

주님이.. 아픈 당신을, 직접 업고 나오시지는 않으신다.

치료의 강되신 주님께로 나오는 몫은, 우리가 해야 한다.

그때.. 홀연히,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