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나!

곳간지기1 2010. 9. 18. 15:29

 

다음 주가 한가위 명절인데 여전히 무더운 여름씨다.

가을맞이 교회대청소를 하고 점심먹고 사무실에 나왔다.

많은 교우들이 나와서 합력하여 땀을 흘리니 깨끗해졌다.

선교회별 역할분담으로 교회 구석구석을 맑끔하게 닦았다.

[* 말아톤님 블로그 http://blog.daum.net/shc77/173]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른가?

멋~진 사진과 함께 하늘목장의 신앙칼럼을 한편 올린다.

내안의 중심을 내가 지배하는지 주님이 주관하시는지...

여전히 내가 왕노릇하고 있지 않은지...돌아보게 된다.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나!" [하늘목장]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는 것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르다.

착하고 성실하다는 것과, 믿음으로 산다는 것 역시 다르다.

목회[사역]를 잘 한다는 것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 역시.. 전혀 다른 차원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교제]가 친밀하다는 근거도..

내가 죽고, 주님이 내재하심으로.. 나를 주도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직도.. 순간순간, 시퍼렇게 살아 역사하고 드러나는..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놀라게 된다.

 

조금도 손해보려 하지 않고, 조금도 배려하려 하지 않으며, 조금도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여전히.. 계산적이고, 까탈스럽고, 깐깐하고, 잘 따지고, 결벽증 비슷한 반응을 보일뿐 아니라..

누가 조금이라도, 자신에 대하여 공격을 하거나, 억울한 말을 하기라도 하면.. 분노를 참지 못한다.

 

이런 삶을 살면서도. 겉으로 드러난 종교생활과, 은사와 사역과 성실한 자신에게..

철저히 기만당한 채, 스스로 오만과 자만에 빠져 사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계셔야 할 자리에, 내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 역사함으로..

불신자만도 못한 언행을 일삼는 위선자, 혹은 이중인격자들이, 교회안에서 검증 없이 활개를 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주님이 사신 것이라는 말씀이, 실제의 삶에서 나타나야 하는데..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다 말았으므로, 이제 주님이 사신 것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무슨 열매와, 평안과, 기쁨과, 하나님의 나라와, 영향력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만족과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 꿈틀대고..

영혼 구원을 위해, 목회와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론.. 여전히 큰 교회를 세우는 야망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구원 받은 자처럼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사는 삶의 방식을 누리는 것이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사역을 대단하게 하고, 은사가 강력하게 나타나고..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은, 믿음과는 무관하다.

믿음으로 살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사역을 잘 감당하게 되고, 착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착하고 성실하며, 교회 일에 열심이 있고, 목회를 잘한다고 하여..

그 사람이.. 반드시 믿음이 좋다라는 논리는, 성경에 맞지 않는다.

사역과 은사와 열심과 성실은.. 열매이지, 그것 자체가 믿음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점진적으로 내가 죽는 것이다.

내가 죽은 만큼, 주님이 일하시고 드러나시기 때문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서,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불과한 것이다.

황소고집도, 부정적인 사고와 언어도, 못된 혈기도, 까탈스런 마음도, 이기적인 생각도.. 차츰 죽어야 한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고는.. 무슨 선함과, 대단한 사역과, 엄청난 은사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님과는 무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죽고, 영[성령을 좇아]으로 행한 것들만.. 계수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칭찬하기를..

그 사람 대단한 은사가 나타난대.. 그 집사님 아주 성실해.. 이런 칭찬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런 칭찬은, 마귀가 주도하는 칭찬일 수 있다.

우리가 들어야 할 칭찬과 칭송은 이런 것이다.

그 사람 180도로 달라졌대.. 많이 변했대.. 아주 새사람 됐대..

주변인들로부터.. 이런 칭찬과 인정을 들을 수 없다면, 아마 당신의 믿음은 가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서.. 음식에 이물질이 나왔을 때, 주인을 불러 난리법석을 떨던 사람이..

조용히, 이물질을 걸러낸다든지..

내 차 앞으로.. 누가 갑자기 끼어들었을 때, 큰소리로 얼굴을 붉히던 사람이..

오히려, 넉넉한 마음으로 양보해 준다든지..

택시비 100원, 콩나물 값 100원 때문에, 울그락 불그락하던 사람이..

온화하고, 넉넉하게, 사랑을 베푼다든지..

누구에게 손해 본다든지, 지고는 못 살던 사람이..

손해를 보고도 즐거워하며, 지고도 속상해하지 않는다든지.. 이런 식의 삶의 변화 말이다.

 

내가 죽은 사람은, 어떤 일에도 반응이 없어야 한다.

칭찬, 비난, 손해, 미움, 오해, 누명, 억울함에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아직 덜 죽었거나, 내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내 힘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노력과 의지로, 스스로 죽을 수는 없다.

주님이 주도적으로 내 마음에 임재하심으로, 성령이 주체가 되어.. 나를 바꾸어 주셔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시퍼렇게 살아있던 내가.. 점진적으로 죽고, 하나님이 시퍼렇게 사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내가 시퍼렇게 살아 역사하니...

참 부끄럽고, 송구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