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 달콩 잘~살면 뭐해"
우리 주변에 보면.. 믿는 자 중에, 지옥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이 너무도 많다.
반면에.. 하나님 없이도, 알콩 달콩 사는 이들도.. 적지 않음을 보며, 우리는 종종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혹자들은.. 오랫만에 동창들을 만나고 돌아와, 깊은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꼴사나운 일(?)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때.. 나보다 못난 친구가, 그것도 예수도 안 믿는 친구가.. 잘나가는 삶을 사는 꼴
공연히..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심통을 부린다.
그 친구네는, 50평이래..
이번에 래미안으로 이사했대..
차도 바꿨대 3천cc래..
나는 이게 뭐야..
괜실히.. 죄없는, 강아지만 걷어찬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래서.. 인간 아닌가?
나도.. 고난 없이 잘 나가는(?) 목사님들을 보면, 가슴 한켠이 아리고 저린데.. 여러분들이야 어떨까를 짐작하게 된다.
나는 학창시절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해일같은 은혜의 맛을 경험했다.
그때..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동지들이 있었다.
주님을 목놓아 부르며, 주를 위해 헌신하겠다던.. 믿음의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물론 개중에는.. 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좋은 직장 구하고, 좋은 신랑(아내) 만나, 토끼같은 자식 낳고, 평벙하게 알콩 달콩 살고 있단다.
그들에게서.. 종교(기독교)생활을 빼버리면, 저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부하고, 직장 얻고, 돈벌어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좋은집 장만하고, 좋은 차 마련하여, 캠핑가고...
아주 평범하고, 우아하게 즐기며,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저들의 알콩 달콩한 삶속에, 하나님의 생명+비전이 없다면.. 불신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알콩달콩 사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란 말인가?
우리가 그렇게.. 알콩 달콩 살게 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는 말인가?
우리를... 저주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목적이, 그렇게 낮은 차원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아니라고 굳게 생각한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 우리를 택하신 목적.. 우리에게 은혜를 맛보게 하신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저.. 애 낳고, 직장에서 연봉 올리고, 진급하고, 아파트 평수 넓히는 것이, 생의 가치요, 의미라면..
무엇하러..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그런 삶이.. 인생의 목적이며, 가치라면.. 오히려 불신자들이, 훨씬 더 앞서가고 잘 산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땅에 왔고, 그분의 목적을 이루고 살다가, 그분 앞에 언젠가 설 것이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 공부하고, 결혼하고, 좋은 신랑(신부) 만나고, 자녀 키우고 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 이상으로.. 우리에게는 감당해야 할, 목적과 거룩한 비전이 잇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시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 이다.
여기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당신의 삶의 수준이.. 아무리 최상류 층에, 형통한 삶을 산다해도..
그 삶은.. 모래 위에 세운 집일 뿐이다.
그 삶은, 잘못 사는 삶이다.
미혹 당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성실하게 살고, 가정을 보살피며, 자녀들 잘 키우고, 교회생활 잘 하는 것으로..
합리화 하며, 안주하며.. 스스로에게도, 속는 것 같다.
아니다.
그것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다른 무엇인가.. 할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미션이다.
그것은, 영혼을 살리고, 섬기는 일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비전이다.
가령, 여기에..
하루 하루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삶을 사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몸은 종합병원이고, 경제력은 빈곤층이고, 자녀들은 웬수덩이리이고, 남편은 술 고주망태라 하자.
그런데.. 이 자매의 영혼 속에는,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으로 충만하다.
날마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날마다 주님을 만남으로.. 그분의 위로를 마시고 산다고 하자.
그 광경을 본.. 이웃들이, 하나둘씩 감동을 받고, 예수께로 귀향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이 사람의 삶은.. 결코 잘못 사는 삶이 아니다.
육의 관점으로 보면.. 알콩 달콩 부부생활하며, 토끼같은 자식들과, 예쁘게 장식된 동화같은 집에서..
별탈없이, 형통하고 부요하게.. 사는 사람이, 훨씬 복받은 사람이라.. 의심 없이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관점으로 보면.. 반대이다.
우리는 여기서.. 소유나, 환경이나, 조건을 가지고, 복과 저주를 따지자는 차원이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의 삶속에, 누가 주인되어 사느냐?
또한..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사느냐? 를, 묻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고 있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다.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는..
부요나 궁핍이나, 건강이나 질병이나, 실패나 성공이나, 평탄한 삶이나 굴곡 있는 삶이나,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 뜻을 이루고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이다.
반대로..
내 뜻만을 이루며 사는 삶은, 못 사는 삶이다.
한사람은.. 알콩 달콩한 삶을 통해, 자기가 드러나고 있고..
한사람은.. 지옥 같은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있다면,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있는 사람의 삶이, 옳은 삶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라.
성경은.. 형통하고 부요한 애굽왕 바로에 대하여, 칭찬하거나 영광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고난 속에 도망다닌 다윗 왕에게는,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성경은..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에 대하여, 불행한 인생이라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니, 하는 일마다 형통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바울의 삶도 다르지 않다.
감옥살이 하고 있는 요셉을 향하여, 하나님은 형통이라 하신다.
우리 인간의.. 세속적이고 오염된 가치 기준과는, 전혀 다른 평가이시다.
바울의 삶은.. 하루하루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굴곡 많은 삶이었다.
몸에, 가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삶을, 불행하다고 평가하지도 않지만..
바울 자신도.. 순교를 앞두고, 후회 없는 선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왔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의 굴절되고, 세속화된, 가치와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무얼 해도 불행하고, 세상을 다 소유해도 만족할 수 없다.
노숙자 같은 삶을 살아도..
초가삼간에 살아도..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있다면, 잘 사는 삶이며.. 선한 길을 달려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궁궐에 살아도..
왕같은 삶을 살아도.. 나를 통해 내가 드러나고, 내 만족과 영광만을 추구한다면..
그 삶은.. 잘못 사는 삶이며, 악한 길로 달려가는 사람일 것이다.
알콩 달콩 살아도, 예수 없는 삶은 지옥이지만..
지지고 볶고 살아도, 예수 있는 삶은.. 천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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