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태 칼럼】 새해에 쓴 첫 반성문 ‘모든 것이 내탓입니다’
기록적인 폭설이 전국적으로 내린 이틀 후인 지난 1월 8일. 영하 18도의 혹한으로 이면도로는 아직도 꽝꽝 얼어붙어 있던 날 히든기업 취재를 위해 경기도 평택을 방문해야 했는데, 운전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고 서울 지하철 1호선으로 지제역에 하차하여 본사 기자와 만나 히든기업 대상기업을 찾아가기로 했다.
무사히 전철을 타고 앉아가게 되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 것은 정말 기가 막힌 선택이라고 ‘자화자찬’하며 워커홀릭답게 전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업무 정리에 열중했다. 그런데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서동탄역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하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고 보니 필자가 탔던 전철은 병점역에서 환승을 해야 되었던 것인데 SNS에 열중하느라 환승 방송을 듣지 못했던 것. 할 수 없이 종착역에서 내려 환승역까지 되돌아갔다. 그런데 환승역인 병점역에서 또 한번 황당한 일을 경험한다. 병점역에 내려 어떤 노인 분에게 “지제역으로 가려면 어디서 타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노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건너편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하차태그를 해야 했고 다시 상차태그를 하고 건너편으로 걸어 내려오니 방금 열차에서 내렸던 곳이었다. 헛웃음뿐 아니라 욕이 나왔다. 울그락불그락하며 전철을 기다리는데 폭설로 인한 지연 안내방송이 나오며 전철은 계속 연착되었다. 가까스로 지제역에 도착해 만나기로 한 기자에게 여러차례 전화를 하는데 상대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결국 스마트폰까지 방전이 되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됐다.
전철 탑승오류, 연착으로 인한 시간 지연 45분, 지제역 도착한 후 연락불통으로 45분, 도합 1시간 30분을 당초 약속시간보다 넘겨버린 그 순간. 온갖 울분과 자책이 뒤섞여 멘붕이 왔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였다.
거의 1시간 30분 내내 정말 화가 났던 것은 ‘지하철 앱이 언제 병점역에서 환승하라 그랬나. 안내도 제대로 못해 주나?’ ‘노인네는 나에게 왜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알려주었을까?’ ‘폭설이라고 선로 관리를 제대로 안 해 몇 십분씩 연착하는 전철 시스템이란?’ ‘사람 만나기로 해놓고 계속 통화를 하는 사람은 도대체 뭐야?’ ‘폰이 벌써 방전되다니 폰 장사가 폰 팔아먹는 수법이지.’
혼자서 부글부글하다가 결국 내린 결론.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요, 다 내가 잘못한 거잖아’였다.
전철 1호선은 천안 신창방면을 가는 열차와 서동탄을 가는 열차 2종류인데 그걸 몰랐던 것이고, 서동탄행을 탔어도 병점에서 환승하면 되었을 것이고, 노인은 자기 기준으로 엘리베이터를 얘기한 것이고, 폭설로 전철이 연착될 것을 예상했어야 했고, 기자도 일이 있으면 계속 통화를 할 수 있고, 스마트폰 충전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것과 예비 충전기를 안 갖고 다닌 것도 모두 내 탓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가 생기면 주변 탓을 하게 된다. 정작 문제의 발단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 평범한 진리를, 새해를 맞이한 지 정확히 일주일째인 날, 평범한 일상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됐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불원천(不怨天) 불우인(不尤人)’. 모든 것은 오직 내 탓이오. 이 말은 군자(君子)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이미 2500여년전 <논어(論語)>와 <맹자(孟子)>에서 공자와 맹자는 ‘일이 그르치게 되면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고 인정하라고 가르침을 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君子) 구저기(求諸己), 소인(小人) 구저인(求諸人)”이라 하였다. 군자는 잘못을 자기 탓이라하고 소인배는 남 탓을 한다고 했다.
1990년대 고(故)김수환 추기경이 차량 뒷유리에 스티커까지 붙이면서 벌였던 ‘내 탓이오’ 운동이 새삼 떠올랐다.
코로나로 인한 변수가 있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현재 사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국정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처럼 힘든 상황임에도 제대로 역할도 못하는 야당도 책임이 있다.
너나 할것 없이 ‘변명하거나 남 탓 말고 모든 것이 내 탓이니 똑바로 잘 하겠노라’고 다짐하고 고해성사(告解聖事)부터 하는 새해가 되자.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부부 문제도, 가족 간의 갈등도, 직장에서의 문제도 ‘모두 내 탓이니 나부터 잘하자’를 다짐하자.
▲ 박성태 시사뉴스 대표 겸 대기자
△ 배재고등학교 졸업
△ 연세대학교 졸업. 행정학 박사
△ 전 파이낸셜뉴스 편집국 국장
△ 전 한국대학신문 대표이사 발행인
△ 전 서울신문 대학발전연구소 소장
△ 전 배재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 언론사 기자 출신인데, 박사학위를 받고 수년간 대학 강단에서 강의도 하고,
퇴직 후에는 배재대학교 부총장을 하다 다시 '시사뉴스' 언론사 대표가 되어
활동하고 있는 박성태 친구(배재고 91회 동기생)의 칼럼을 한편 데려왔네요.
발로 뛰며 좋은 글 많이 쓰는데 친구들 밴드에 링크되어 있어 공유합니다.
'생활의 단상 > 좋은 글 &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대면 시대 트렌드를 분석한 '언컨택트' (0) | 2021.02.25 |
---|---|
정조대왕의 리더십 '리더라면 정조처럼' (0) | 2021.01.21 |
민족시인 김소월 구글을 통해 전세계에 (0) | 2020.10.22 |
세계에 자랑할만한 우리 민족의 기록유산 (0) | 2020.10.19 |
가족사의 한을 통일염원으로 승화시킨 시집 (0) | 2020.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