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식량/식량안보 대응

우주에 차린 한정식 (과학향기)

곳간지기1 2008. 3. 12. 08:23
우주에 차린 ‘한정식’ [KISTI 과학향기 제731호/2008-03-12]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정된 이소연 씨가 4월 8일 오후 8시 우주에 오른다. 이소연 씨가 탄 소유즈 우주선은 이틀 동안 지구를 선회한 뒤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할 예정이다. 이소연 씨는 이곳에서 약 일주일 동안 머물며 미리 준비해 간 장비로 18가지 우주실험을 하게 된다.

ISS의 생활은 지상과 다르다. 사방은 온통 적막하고 고향땅은 까마득한 발밑에 있다. 거주 공간은 협소하며 그나마도 기계로 가득 차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이 밤잠을 설치게 한다. 명예와 보람은 있지만 더 이상 열악할 수 없는 환경이다. 환경이 이렇다보니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음식이 중요해진다. 단기간 체류하지만 이소연 씨에게도 마찬가지다. 소유즈 우주선에는 우리 손으로 만든 우주식품도 함께 실린다.

현재 ISS 우주인의 식단은 러시아식과 미국식이 각각 절반씩 차지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50년의 우주개발 노하우를 비축하고 있고 이는 우주식품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초기에 우주식품은 맛보다 기능을 우선해 개발됐다. 맛이 없는 러시아 우주식품의 단점을 가리기 위해 마늘을 과다 첨가하는 바람에 ‘에어록만 열면 마늘냄새가 진동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150종 가운데 우주인의 식성과 건강을 고려해 80종을 선발해 식단을 짤 정도가 됐다.

이소연 씨의 식단은 러시아 우주식품을 주로 하되 우리 우주식품을 간간히 섞어 구성될 예정이다. 총 4kg의 한국식 우주식품을 가져가는데 이는 그동안 다른 나라 우주인이 챙겼던 분량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ISS의 다른 나라 우주인들도 우리 우주식품을 맛보게 할 생각에서다.

이번에 러시아 의생물학연구소로부터 최종 인증을 받은 우리 우주식품은 김치, 볶음김치, 고추장, 된장국, 밥, 홍삼차, 녹차, 라면, 생식바, 수정과로 총 10종이다. 선정 기준은 안전성, 영양성, 조리의 간편성이었다. 10종을 실패 없이 단번에 통과한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한다. 이번 우주식품은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식품업체 연구소와 함께 개발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주로 동결건조하거나 고온 멸균 상태에서 포장하는 방식으로 우주식품을 개발했다. 동결건조 식품은 뜨거운 물을 부으면 원래 식품에 가깝게 복원된다. 반면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방사선을 쪼여 미생물을 멸균하는 방식으로 우주식품을 개발했다. 부피와 무게는 크지만 지상에서 먹는 음식과 최대한 가깝게 만들 수 있어 우주인의 식욕을 증진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김치다. 한국인의 음식으로 김치는 빼놓을 수 없다. 김치는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은 식품이지만 젖산균이 듬뿍 든 발효식품이라 우주식품으로 개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또 장기간 신선하게 보관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터치 캔 형태로 포장한 ‘우주김치’가 탄생했다. 우선 김치가 최상의 상태로 익었을 때 방사선을 쬐어 멸균해서 캔에 넣었다. 균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익거나 상하지 않는다. 김치 국물은 점성이 없는 액체라 무중력 상태에서 흩어지기 때문에 캔 안에는 국물을 흡수하도록 특수 패드를 부착했다. 덕분에 신선한 김치를 우주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우주식품에서 역시 주목할 만하다. 기본 우주식품용 밥은 동결건조 형태로 물을 부어 먹도록 돼 있다. 간편하지만 찰진 밥을 좋아하는 우리 식성과는 맞지 않는다. 이번에 개발한 밥은 수분을 65% 함유하면서도 식품 기준을 통과해 지상에서 먹는 밥맛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고온에서 살균하는 동시에 포장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대표적인 우리 음식인 된장국은 영양학적으로 볼 때 우주식품으로 매우 적합하다. 콩이 단백질을 보충해 주고, 각종 플라보노이드류 성분 덕에 장기 우주체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심장 기능 이상과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된장국은 동결건조 형태로 만들고 튜브형 용기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붓고 빨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볶음김치도 동결건조 형태다.

주식 뿐 아니라 간식거리도 있다. 라면은 지상과 다른 호화 온도를 해결해야 한다. 호화(糊化)란 라면을 끓이면 면발이 풀어져 먹기 편해지는 현상으로 우주에서는 호화 온도가 지상보다 낮다. 그래서 ‘우주라면’은 70℃에서 5분 만에 호화되도록 개발됐다. 또 국물이 흩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빔 형태로 만들어졌다. 식사가 끝나면 방사선으로 멸균한 생식바, 수정과나 동결건조 형태인 홍삼차, 녹차로 입가심한다.

현재 한국 우주식품은 10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장기간의 우주개발이 진행되면 이보다 더 많은 음식이 필요하다. 우주개발 사업이 꾸준히 확장될수록 우주식품도 계속 진보할 것이다. 언젠가 우주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초청해 제대로 된 한정식을 대접할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