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이제는 좀 그만 [하늘목장]

곳간지기1 2010. 4. 20. 09:48

 

 

이제는 좀 그만 [Depression]


"사람이란 것에 지친다.

 살아가는 것에 지친다.

 그런 내 자신에 지친다."


우울증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씨의 미니홈피에 쓰여 있던 메모이다.


이제 좀 그만..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충격적인 비보에.. 가족은 물론, 우리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게다가.. 그들을 향한 돌팔매질과 악플은, 또 한번 그들을 죽음으로 몰곤 한다.


물론, 자살이란..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극단적 이기주의적 발상이며, 성경적으로도 죄악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의 자살도.. 미화되거나 합리화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살을 조명하며..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예방할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현재 자살률은, 하루에 평균 35명.. OECD 국가 중 1위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망률 중에, 자살이 4위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살의 이유와 원인 가운데, 우울증이 차지하는 부분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이다.


그동안 몇 번에 걸쳐서.. 우울증에 관하여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학문적인 접근은 배제하려 한다.

다만, 행여라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지체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실제적인 내용을 다루려고 한다.


우울증은, 내부적 혹은 외부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압력이나 충격을 받았을 때, 발병한다.

그리고 우울증은.. 일종의 감기와 같은 병으로,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는 병이며,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

부끄러운 일도, 숨길 일도 아니다.

누가, 감기를 부끄러워하는가?

오죽.. 연약하면, 감기에 걸리겠는가?

마찬가지로, 오죽 마음이 여리고 힘겨우면.. 마음의 병을 얻겠는가?


우울증은, 흔히 말하는 공황장애, PTSD, 울화병, 조울증, 대인기피증.. 등을 포함한다.

개인에 따라,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과 증상도.. 제각각이나 맥은 하나이다.

충격과 상처와 스트레스에 대한, 과도한 압력이다.


그리고, 세부적인 현상으로는..

자신감이 없어지고, 과거의 일들에 대한 회한이 크고, 외롭고, 기분의 기복이 심하고..

감정 변화가 일어나고, 열등감과 대인기피가 생기고, 말수가 적어지거나 갑자기 많아지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현실 도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며,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이유 없는 짜증을 부리며, 삶에 대한 의욕이 저하되고, 식욕부진이나 폭식 거식증을 동반하기도 하며.. 분노와 미움이 사무친다.


이런 현상이 시작될 때.. 전문가를 찾아, 마음을 열고.. 서둘러 드러내는 것이 좋다.

점점, 시간이 흘러.. 이런 상한 감정이 오래 묵으면, 치료 또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문가를 찾거나, 지인에게 조차, 털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을 때이다.

마냥,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세상과 점점 단절하며, 겉으로는 환하게 웃지만..

속으로는 이미 곪아 터진,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게 많다.


최근에 세상을 떠난.. 유명인들이나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청중들 앞에서는..

밝고 환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우울증이 깊어지면.. 어느 정도 그 병에 익숙해져,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의 병을 숨긴 채..

또 다른 자신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실체를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최진영 씨의 죽음을 놓고.. 지인들은 하나같이, 죄책감을 가진 것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고..

자신의 일이 바빠서, 알아차리리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러나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니면.. 뒷바라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 한 영혼이라도 살릴 수 있을까? 싶어, 이 칼럼을 쓴다.


이렇게,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의 특징은..

끊임없이..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나 힘들다"는 신호를 보낸다.

힘들어 죽겠다고 말한다든지, 나 죽고 싶다는 말을 흘린다.

그러나 그 말은.. 나 살고 싶다는 뜻이며, 나를 좀 도와달라거나 힘든 것을 알아 달라는 의미이다.

그런 신호가..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할 때, 비로소 삶의 끈을 놓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그런 마음의 병을 앓고 있거나, 그런 신호를 보낼 때..

너만 힘느냐, 믿음의 사람이 무슨 그런 병에 걸리냐, 기도하면 낫는다, 다 참고 살아라..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너보다 힘든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라거나..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흘려들으면 안 된다.

그 사람의 그 소리가, 세상을 향한 마지막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은.. 진반 농반으로, 여러 채널을 이용하여..

자신의 힘듦을.. 주변에 알리려 하고, 또 인정받으려 한다.


그렇다고,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다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잘 극복하고 감당하고, 이기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분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의 하소연이나, 넋두리가 포착되었을 때, 우리가 할일은 공감과 격려이다.

그 사람의 힘듦과 아픔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끝없이 격려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동성끼리거나, 가족끼리라면.. 진한 스킨십과 허그가 절실히 필요하다.

스킨십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성끼리라면.. 손을 잡아 주거나, 어깨를 다독이며, 천사가 엘리야를 격려하고 공감하였듯이..

그러하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의 아픈 소리, 죽는 소리를, 그대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 된다.

그러면 새싹이 움트듯, 조금씩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한다.

기도는 물론, 병원 치료도.. 병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담고 있는.. 모든 상항 감정을, 누구에게라도 쏟아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담고 있으면, 오히려 병이 악화될 뿐이다.


그러나, 입이 가볍거나 말 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는.. 이런 마음을 너무 쉽게, 오픈하지 않는게 좋다.

내가 믿을만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나, 그룹이나, 전문가에게.. 털어놓는 게 좋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오픈이 상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지한 사람들은.. 이해도 못하지만, 오히려 정죄하거나 판단하기 때문이다.


가장, 힘이 되는 말은..

많이 힘들지, 미안해 힘되어 주지 못해서, 너[당신은]는 해낼 수 있어, 너는[당신은] 재기할 수 있어..

그래도.. 소망을 갖고 같이 살자,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주님이 계시잖니?

등등이다.


마음의 병을 앓는 분들이여..

그래도 가끔은 하늘을 보자.

그래도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살아 내자.

지금도 누군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점점.. 사람이, 무섭고 싫다.

사람은, 실망과 상처만 줄 뿐이다.

우리가 의지하고 붙들어야 할 대상은.. 오직 엘리야의 우울증을 어루만지셨던, 주님 한분 뿐이시다.

아차피, 세상은.. 홀로이지 않는가?

흔들리고 변하는, 사람을 의지함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른다.

사람과 세상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하고 믿을 대상이 아니니.. 붙잡았던 끈들을 내려놓자.

그리고 생명선 되시는, 주 예수님의 손을 부여잡자.


세상 사람은, 몰라줘도..

당신의 시리고 저린 마음을, 주님은.. 알고 계시며, 공감하시며, 격려하시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나의 신음 소리도, 경청하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