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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에서 전통문화의 향기를

곳간지기1 2009. 5. 23. 19:17

 

일전에 전북으로 가는 길에 전주한옥마을에서 1박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저녁 늦게 갔지만 평일이라 빈방도 있고, 전통찻집은 아직 문닫기 조금 전이었다.

한옥마을 밤풍경도 잠깐 돌아보고 '교동다원'에서 주인장의 전통차에 대한 구수한

이야기도 듣고, 1인당 5천원 하는 황차로 추위에 움츠렸던 서늘한 기운을 달랬다.

약수로 끓였다는 차를 열번쯤 우려내 들이키니 창문을 열어뒀지만 추위를 잊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골목을 다시 보니 그 찻집이다.

 

  

아침에 동네한바퀴 산책하면서 한옥마을을 찬찬히 살펴보고 오목대에도 올라 보았다.

점점 사라져가는 한옥을 전주에서 잘 보존하여 가꾸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서울의 남산골에 있는 한옥마을은 TV와 신문, 블로그에서 보았지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요즘 개발의 논리에 밀려 전통문화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경향에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 어느날 출근하며 라디오를 들으니, 서울에서 한옥이 많은 어느 지역

한옥에서 오랫동안 살고있는 포르투칼에서 온 외국인이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렇게 편리하고 좋은 한옥 문화재를 왜 재개발한다고 철거하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흥분하는 것을 들었다. 외국인도 푹 빠져있는 소중한 문화재를 우리가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 공감했는데, 한옥마을을 둘러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문화의 향기가 오롯이 담긴 전주 교동 한옥마을 종합안내도 

 

 전주명품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명품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듯 하다.

 

 목재 공예점도 그 이름이 아주 멋들어지게 '솟대장승마을'이다.

대문이나 문짝, 기와지붕도 고치고, 간판도 만들어 달고 하는 곳이다.

 

 전통인형같은 장식물을 만들고 판매하는 가게인데, '얼렁뚱땅 쪼물락 공작소'이다.

각종 폐품을 활용하여 쪼물락쪼물락 거리면 얼렁뚱땅 예술품이 되는 모양이다.

 

마을의 주도로도 돌로 포장되어 있어 차가 과속으로 다니지 못하게 하고,

인도에는 물길도 만들어 졸졸 흐르는 물을 보며 산책할 수 있게 배려했다.

 

 오목대로 올라가는 길목의 공동주차장 옆에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도 멋지게 자리잡고 있다.

여기는 시골동네 어귀의 마을을 지키는 장승에 비해 표정도 밝고 인자한 모습인것 같다.

 

 장승 있는 옆에 조그만 물레방아도 하나 만들어 구색을 갖췄다.

 

남쪽으로 보이는 외곽 도로를 따라가 보니 '강암서예관'이 한옥으로 지어져 있다.

바로 앞에는 전주천을 건너가는 다리가 있고, 하천을 개량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가족단위로 한옥에서 민박하면서 생활예절과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담원도 있네요.

언제 시간 내서 한옥민박 소담원에서 소담한 웃음꽃을 피워보세요.

   

 

500년된 은행나무가 여러그루 보존되어 있는 사적 제 379호인 전주향교 명륜당,

세종 23년(1441년) 경기전 근처에 지었다가 전주 서쪽의 화산 기슭으로 옮겼다,

다니기가 불편하자 선조 36년(1603년)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경내에는 공자 등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계성사(啓聖祠),

중국과 우리나라의 훌륭한 유학자 위패를 모신 동무/서무, 유학을 가르치던 명륜당(明倫堂),

그리고 향교 학생의 기숙사로 사용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전주향교 정원에 마음 씻는 곳(洗心, 세심), 우물이었으면 좋았을걸

수도꼭지로 되어 있어 좀 거시기하데요.

 

명륜당 안에 충효교실이 있어 학생들에게 서예와 전통예절 교육을 하고 있답니다.

책상과 칠판이 옛날 시골 초등학교 교실같은 분위기인데 매주 일요일 열린다네요.

 

 고려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목조대왕 이안사가 태어나 살고 풍광을 즐겼다는 오목대 올라가는 길,

아침산책과 연인들 데이트하기에 아주 좋은 코스였어요.

 

 

오목대는 목조대왕이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으로 자라면서 호랑이와 싸웠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고려 우왕  6년(1380년)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가던 길에 이곳에 들러

종친들과 전승축하 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이를 기념한 고종의 친필 비가 서 있다.  

 

 오목대 정상에 우뚝 솟은 정자, 대풍가, 하여가, 단심가 등 액자가 한자와 한글로 여럿 있다. 

다음은 그 중 하나인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등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대풍가(大風歌)

풍운속을 일어섰다 위세 천하에 떨치고 고향에 돌아오니 모두 수그려 우러러맞네

 

정몽주의 단심가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벙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소슬대문이 있는 한옥민박 양사재(養士齋), 이곳은 옛날에 향교의 젊은 유생들이 기숙하던 집이고,

1950년대 가람 이병기 선생이 우거했다는 전통이 있는데, 현재는 한옥민박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숙박을 하면 이와 같이 한식으로 아침밥상을 받을 수 있다.

김제평야에서 가져왔다는 쌀밥과 된장국, 생선구이, 김치 등이다.

 

양사재의 처마에 의미 있는 액자가 하나 걸려있는데, '네덕내탓' 아주 중요한 말이다.

잘되면 내덕, 잘못되면 네탓 또는 조상탓으로 돌리는 세태를 바꿔보자는 거네요. 

 

한옥민박 양사재 마당의 담벼락 뜰에는 예쁜 야생화가 피어있네요.

잘 보존되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가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