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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마을이 잘 보존된 순천 낙안읍성

곳간지기1 2012. 4. 6. 18:41

전통문화와 가옥형태가 잘 보존된 민속마을이 전국에 몇 군데 있다.

아산 외암마을,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제주 성읍 등이 있다.

순천 낙안읍성은 민속촌 등 보여주기 위해 조성된 민속마을과는 달리,

초가집 100여 가구에 직접 생활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세파에 때묻지 않은 인정과 편안함에서 마음의 쉼을 얻었으면 한다. 

 

초가는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만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정감이 넘친다.

남부지방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위의 장독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마당에 각종 봄꽃들이 어울어져,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어린 시절 고향을 연상케 하며, 마당 한켠의 절구통마저도 옛스럽다.

마침 비가 와서 우산쓰고 걸었지만 전통이 잘 보존된 민속마을이 정겨웠다.

 

[낙안읍성의 유래] 

순천(예전 승주) 낙안읍성의 유래는 조선 태조 6년(139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왜구의 침입으로 이 고장 출신 김빈길 장군이 토성을 쌓은 것이 그 시초이다.

인조 4년(1626)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부임 현재의 石城으로 중수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문으로 들어가면 선정을 베풀었던 임경업 군수의 추모각이 세워져 있다.

 

다른 지역 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 길이 1,410m로 동내, 남내, 서내 등 4만1천 평에 달하는

3개 마을의 생활 근거지를 감싸 안은듯 네모 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지난 지금도 끊긴 데가 전혀 없고 웅장하기 이를 데가 없다.

 

지금도 성안에 100여 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고유의 전통마을로

민속적인 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동문과 서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며,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1,410M의 석성 안에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순천 낙안읍성
낙안읍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문(낙풍루)
낙안읍성 안내도
낙안읍성 입구를 지키고 있는 부조물은 전통개인 삽살개
석성을 축성하고 선정을 베풀었던 임경업 장군 추모각
낙안읍성에서 임금님과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을 모시던 객사(낙안지관)
행정과 입법 사법을 관장했던 군수의 집무실(동헌, 使無堂)
사무당 뒷뜰에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 있다.
촉촉히 내리는 봄비를 맞아 벗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동헌 내아(안채) 마당의 장독대가 정겹다.
남쪽이라 수선화도 꽃망울을 맺었다.
봄의 전령사 매화가 활짝 피었다.
낙민루(樂民樓), 남원 광한루, 순천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 3대 명루의 하나, 6.25 때 소실되었다가 1986년 복원했는데 출향인사가 기증했다는 북
촉촉히 내리는 봄비 속에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촉촉히 내리는 봄비 속에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국태민안'을 기원했던 민속신앙의 장승들
목판에 새겨 지게 위에 세워둔 낙안팔경 : 금강모종, 백이청풍, 오봉명월... 동서남북으로 오봉산, 백이산, 제석산, 금전산이 둘러 있는 분지 지형이다.
집 마당에 하얀 배꽃인지 매실꽃인지 탐스럽게 피어 있다.
봄비를 맞은 초가집들은 마음의 고향이다.
각종 봄꽃들이 여기저기서 앞다투어 피어 있다.
초가집 한채에 2~3억원을 호가한다는데 떠나는 가구가 생기면 시에서 인수한단다.
초가집에서 민박을 해봐야 고향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는데...
낙안읍성의 역사를 잘 설명해준 문화해설사 박순이 선생님 감사합니다.

멀리 핀란드에서 한국의 남도를 찾아 홀로 여행을 온 아가씨가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 매료되어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니 기특하기도 하다.

내 카메라에 잡힌 사진을 한국의 정을 담아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I was glad to meet you, Miss Tiia from Finland.

 Someday I want to visit your country, se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