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젖병을 물고 사는 사람들 [하늘목장]

곳간지기1 2010. 10. 30. 22:13

 

 

 

젖병을 물고 사는 사람들 [신앙점검]

  

오늘날 교회 안에는.. 젖병을 물고 있는 교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초신자들이야, 당연히.. 젖병을 물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석 같은지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런데 문제는.. 장성한 사람들이 아직도.. 젖병을 문채 다고~ 다고~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한 영혼, 한 영혼이, 신속히 젖병을 떼고..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가는 것이며..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부모의 마음도.. 자녀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큰 불효는.. 남들 자랄 때 자라지 못하고, 청년이 되고 장성한 후에도..

여전히.. 젖병을 문채, 이기적 울음으로 보채는 것이다.

 

갓난 아이는, 배고프면 운다.

그리고, 젖병을 물리면.. 울음을 그친다.

갓난 아이가.. 엄마를 찾는 이유는, 엄마와의 친밀함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받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 자체를 원하고, 엄마와의 친밀함을.. 나누려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더 성장하게 되면..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엄마를 이용하지 않게 된다.

거기서.. 더 자라게 되면, 엄마와 분리되어 살지만.. 연합을 이루며, 하나됨의 비밀을 경험하고 살게 된다.

 

교회는.. 젖병을 문 초신자들을,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나도록.. 도와주는 생명 공동체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람은.. 성숙이다.

성숙은..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하며,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치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날마다 조금씩 성화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회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직분이 중직자일수록 혹은 사역자일수록, 모태교인들일수록, 열심이 특심한 기독교 가문의 성도들일수록..

겉으로는.. 흠이 없고, 칭찬 받을만한데..

속사람은.. 여전히 젖병을 물고 다니며,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 하고..

인간을 의지하려 하고, 작은 일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극히 이기적이며, 조금만 불편하거나 손해를 보면 죽는 줄 알고..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고, 상식을 지키지 못하는지 알 길이 없다.

물론.. 다 그런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먼저된 자들 중에도, 나중된 자들도 있지만.. 나중된 자들 중에도, 먼저된 자들도 많기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오래 믿은 사람들 중에서와, 기독교 가문에서도.. 보석같이 예수의 마음을 품고, 날마다 쑥쑥 자라가는..

작은 예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밖에서는... 신령한척, 고상한척, 우아한척 하지만.. 집안에서는, 혹은 가족들에게는..

이중적인 삶을 살며, 주변 사람들을 피곤케 하며, 성질을 못참고, 조금만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난리가 나는, 사람들이라면..

그는 분명.. 직분이 어떠하든, 경력이 어떠하든..

젖병을 물고 다니는 갓난아이에 불과하거나, 믿음이 가짜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 믿는 목적도, 기도하는 목적도, 단순히 소원 성취나, 자신의 욕구 충족일 경우가 많다.

그저 입만 열면.. 내 건강, 내 문제, 내 가족, 내 자녀가.. 단골 주제이다.

 

주여..

집, 팔리게  해 주세요.

병, 고쳐 주세요.

내 아이, 대학 보내주세요.

내 남편, 승진시켜 주세요.

나, 결혼하게 해 주세요.

나, 좋은 직장 주세요.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부흥을, 주세요.

돈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문제를, 속히 해결해 주세요.. 등등

 

그러다..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실망하고 사람들에게도 자주 상처를 받는다.

물론 기도는 무엇이든 구해야 한다.

그러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거나  내 뜻을 관철시키려..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거래하려 해선 안 된다.

 

갓난아이들은.. 오직 엄마로부터, 주어지는 젖만 생각한다.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배부르면 웃고, 배고프면 보챈다.

엄마와의 교제, 엄마를 배려하는 마음, 엄마와의 친밀감은.. 관심도 없다.

오직.. 엄마는, 자신의 생존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교인들 중에도, 이런 식으로 젖병을 물고 사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심지어는, 사역자들 중에도... 이건 아니다 싶다.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종교생활과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생명의 문제이지, 철학이나 이념이나 수양의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얼마나, 자라고 있는가?

얼마나,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가?

얼마나, 변하고 있는가?

얼마나, 주님과 친밀함 속에 거하는가?

얼마나, 주님의 음성에 민감한가? 라는 문제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교회가.. 탁아소미아보호소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길러내는 훈련소이자,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어 내는.. 용광로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젖병 물고 있는 갓난아이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을 철저히 점검하고..

궤도를 수정하여..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가며, 하나님의 강한 용사로 세워졌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부르심에 합당한, 예배자로 살았으면 좋겠다.

 

부흥이란.. 또 하나의 탁아소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탁아소가 훈련소로 바뀌는 것이며..

성장이란.. 하나의 젖병을 물던 교인이, 또 하나의 젖병을 더 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랫 동안.. 물고 있던 젖병을 떼고, 스스로.. 단단한 밥을 먹음으로, 삶의 동력을 삼는 것 아닐까? 

  

내가, 화려한 조명 속에서 말씀을 전하며..

박수갈채를 받고, 많은 청중들에 관심과 사랑을 받고, 안주하려는 이 순간에도. .

지구상 어디에서는.. 복음을 듣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

교회는 다니지만.. 구원의 감격과, 예배의 맛을 느끼지 못한 채, 탈진한 심령들을 생각하면..

얼른 그곳으로 달려가..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예배의 축제를 회복하고 싶다.

내 삶이 조금은 불편하고, 내 삶이 조금은 손해를 볼지라도..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교회.. 상식이 통하는 교회..

좋은 예배를 갈망하는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중보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