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경영 정보/농업 이야기

한국형 국제곡물유통회사 설립 [임정빈]

곳간지기1 2010. 5. 7. 08:44

 

"한국형 국제곡물유통회사 설립이 필요한 때"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WTO출범 이후 전면적인 농산물 시장개방 흐름에 따라 농업부문에서도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우리나라의 식량 대외의존도는 더욱 높아져가고 있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식량자급률은 26.7%에 불과하다. 특히 쌀을 제외한 밀, 옥수수, 콩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향후 우리나라 식량자급률 하락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5위권의 곡물 수입국이면서 전체 식량자급률이 27%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불균형한 국제곡물 수급구조와 곡물생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언제든지 발생 가능한 국제곡물가격 급등 현상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국제적인 곡물가격 급등 현상은 물가안정을 해치고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복병이 될 소지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방안 마련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농업정책 과제이다.

 

 특히 국제곡물무역의 특징은 수출은 미국, 호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반면, 수입은 다수의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점적 체제로서 주요 수출국의 공급 여건 변화에 따라 국제 가격이 변동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생산량에 비해 교역량의 비중이 낮아 단기적인 국제 수급 불균형에도 국제 곡물가격이 불안정하게 급등 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곡물무역의 또 다른 특징은 카길, 벙기, ADM, 드레퓌스, 앙드레와 같은 다국적 곡물유통회사, 일명 곡물메이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5대 회사는 명실상부하게 세계 곡물업계를 지배하는 회사들로서 세계 곡물 교역량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곡물메이저는 풍부한 자금력과 시장정보를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서 다량의 곡물을 매입한 후 정부와 기업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다. 이들은 곡물매매의 중개 및 소유곡물의 수송과 가공, 하역, 선적, 저장시설 등 유통과정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어 다른 소규모 곡물회사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농업생산자단체인 젠노와 종합상사인 미스비시 등이 해외곡물유통업에 뛰어들어 효과적으로 해외곡물을 조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이들이 국내외에 설립한 곡물유통회사를 통해 전체 곡물 수입량의 30%이상을 자체 공급라인을 통해 공급함으로써 최소한의 안정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며, 국제교섭력도 유지하고 있다.

 

 세계 5위권의 곡물 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해외식량조달체계가 미흡한 우리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일본과 같이 우리도 한국형 국제곡물유통회사의 설립이 요청된다. 한국형 국제곡물유통회사 설립을 통해 국제 곡물시장의 정보 수집력과 유통교섭력을 향상시켜 불가피하게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곡물을 좋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에 효과적으로 구매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 의해 언제 창설될지는 모르지만 한국형 국제곡물유통회사가 향후 카길, 벙기, ADM, 드레퓌스 등과 같은 세계적 곡물메이저의 하나가 되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할까? 한국형 국제곡물유통회사가 지닌 높은 정보력과 교섭력을 바탕으로 현재 일부 국가로 집중되어 있는 곡물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현물거래 의존도가 높은 현행 곡물 수입방식에 선물시장거래를 적절히 활용하며, 곡물 수출국과의 공동생산이나 장기구매계약 등 구매방식을 다각화해 나가고, 현재 활발히 추진 중인 해외농업개발과의 연계강화 등을 통해 보다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식량 확보가 가능한 상황을 상상해 본다. [농수축산신문 2010.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