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단상/하늘목장 칼럼

그래요 맞아요 당신맘 다알아요

곳간지기1 2009. 12. 28. 22:02

“그래요 맞아요, 당신 맘 다 알아요”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구할 만큼 힘겨워 할 때..

하나님은, 천사를 급파하여.. 엘리야를 어루만지신다.

여기서, 어루만지심이 공감이다.

죽기를 구할 만큼 힘들었던 엘리야는.. 천사의 공감을 통해, 새 힘을 얻고 일어나.. 뛰고 달리게 된다.


사람은.. 힘들어서 힘듦이 아니라, 공감을 얻지 못함으로.. 힘들어한다.

하나님은.. 차라리 생명을 거두어 달라는 엘리야를 추궁하거나, 다그치거나, 외면하지 않으셨다.

충분히, 공감하셨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엘리야를 추궁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추궁과 채찍만이, 능사가 아님을 아시는 하나님은, 잠잠히 엘리야를 힘듦을 공감하셨고..

그 결과.. 기진맥진하던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 사명자로 쓰임 받게 된다.


현대인들은 탁월할 만큼..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야무지고, 영악하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이.. 오히려, 공감보다는 추궁과 정죄의 칼을, 휘두르게 한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작은 마을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의 질곡들과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주님은..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기 까지.. 온갖 고초를 다 겪으셨다.

그 목적 중에 하나는, 공감을 위함이다.

그래서 주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이 긴장되지 않으며, 경직되지 않고.. 따뜻해진다.

공감의 힘이다.


주님은 우리의 어떤 허물과, 단점과, 실패도, 어루만지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하여는 관대하면서도, 남에 대하여는.. 선생 되어 사는가?


누가 힘들다 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누가 아프다 할 때, 어떤 마음의 동요가 있는가?

누구의 실패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누가 힘들다 할 때, 그래 얼마나 힘들겠니..내가 너라면 더 힘들어 했을 것이다.

누가 아프다 할 때, 그래 얼마나 아프겠니.. 나는 아마, 못 견뎠을 거야.. 그런데 너는, 참 잘 견디는구나.

퇴근하는 남편이 피곤하다 할 때,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뭐가 피곤하냐고, 당신만 직장 다니느냐고, 그렇게 반응하는가?

 

아니면, 맞아요. 얼마나 피곤하시겠어요. 얼른 올 갈아입고 씻고, 우리.. 맛나게 저녁 먹자구요.

내가 당신 위하여, 준비했어요.

집에 있던 아내가, 퇴근하는 남편에게 힘들다고 말할 때..

집안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힘들다 하느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가?

아니면..

그래 맞아, 직장보다 집안 일이 더 힘들 것 같아, 당신은 참 대단해.. 라고 반응하는가?


이와 같이 우리는.. 똑같은 일에,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래 맞아, 아 그렇구나, 내가 당신 마음 다 알아..

이런.. 짧은 한마디의 공감이, 상대방을 살게 하고, 춤추게 하고, 새 힘을 얻게 하고.. 소생시킨다.


그러나 반대로..

무반응, 무감동, 외면, 거절, 냉소적 반응은.. 상대방을 죽이고, 기를 꺾고, 힘을 빠지게 하는.. 자원이 될 뿐이다.


공감은.. 많은 돈이 드는 것도, 많은 희생과, 시간이 소요되는 일도.. 아니다.

공감은, 마음을 알아주는 일이다.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이다.

처진 어깨를, 토닥여 주는 일이다.

젖은 손을, 잡아 주는 일이다.


주님이 우리를 공감해 주었듯이..

우리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의 아픈 사연과 소리를, 공감해 주며, 처진 어깨를 토닥여 주며..

젖은 손을 잡아 주며, 더 많은 고개를 끄덕여 주자.

이것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까?

그리고, 그 크리스마스는.. 일년 365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