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지 못하는 마음이 이미 심판입니다"
우리에게.. 오래된 갈등과, 풀리지 않는 고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의인이 고난 받으며, 악인이 형통하는 것이다.
악인은.. 실제로, 형통한다.
그러나 그 형통이, 반드시 축복이라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형통이 불행이 되고, 형통 자체가.. 심판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고통당함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나만도 못한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봄으로.. 더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내버려 두시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가?
시기와 때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애굽의 바로왕은.. 온갖 부와 명예와 권력을 소유한 제왕이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은, 강팍하였다.
우리는.. 바로 같은 사람, 로마 시대에 네로 황제 같은 사람을, 하나님은 왜 가만 두시는가? 라고, 질문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의 강팍한 마음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고.. 그 자체가 형벌이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후에,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풀의 이슬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깨닫지 못하는 마음[굳어지고, 둔해진 마음]이다.
질병이나 가난이나 고난..등은, 사실 심판은 아니다.
얼마든지..그것이 통로가 되어 돌이킬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마음으로 굳어지면.. 돌이킬 기회가 희박함으로, 가장 무서운 심판인 셈이다.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란..
눈이 멀고, 귀가 가리어져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 즉 굳은 마음이다.
마치.. 간경화 환자가 간[liver]이 굳어 가도, 자각 증세를 모르듯이..
영적으로.. 눈이 멀고, 귀가 가리어져 듣지 못하면,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는,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깊은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래도.. 내가 형통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형통이, 꼭 하나님의 코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요나서에 보면.. 하나님의 선지가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다시스로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마침.. 다시스로 내려가는 배를, 만나게 된다.
요나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 봐라.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구나.
내가 잘못되었으면.. 하나님이 막았을텐데, 이렇게 형통한걸 보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돕고 계시는구나.
아니다.
착각이며, 자기기만이다.
오히려, 막으심이 축복일 때가 많다.
바울은, 하나님의 빼어나신 종이다.
그러나 바울의 길은.. 여러 번 막혔고, 그 막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다.
이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다.
하나님을 너무.. 경히 여기거나, 은혜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면 큰 일 난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형벌로, 심판을 하시기도 하지만..
마음을 강퍅하게 하심으로.. 더 이상 돌아올 기회를 주시지 않는, 형벌을 내리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내버려둠이, 가장 무서운 형벌이다.
우리 주변에는.. 불의를 행하고 악을 일삼는 자들이.. 버젓이 승승장구하거나, 형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형통이 아니라 저주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행할 때, 즉각적인 고통과 징계가 있는 성도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요..
믿음의 사람이란, 증거이다.
그런 면에서.. 의인은 고난이 많고, 악인은 형통하다는 논리는 옳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나 깨달음으로, 존귀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짐승과 같은 것이다.
행여나.. 우리가 탐욕과 야망과, 그 무엇엔가..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가리어지고..
마음이 둔해져서.. 깨닫지 못하면 소망이 없다.
그러므로, 깨닫는 은혜가 참 은혜이다.
깨닫는 마음이, 진정한 축복이다.
깨닫는 마음에는, 성령이 내주하신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바로이며, 네로와 같이.. 자아가 왕인 사람이다.
한번 어두워지거나, 둔해지거나, 가리어지면..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거나, 둔해지거나, 가리어지지 않기 위하여..
늘 각성과, 도전이 머물러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러나 힘들게 살고, 어려움이 있다 해도.. 잘 깨닫는 사람을 본다.
깨닫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마귀는.. 어찌하든,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가리우고, 마음을 둔하게 만들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못하게 하고, 도무지 깨닫지 못하게 하고..
마음이 둔감하고, 강퍅한 자로 살게 한다.
그것은.. 최고의 심판이며, 형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코드는.. 간섭하심과 깨닫게 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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